2
부산메디클럽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달’ 대신 ‘손가락’만 보세요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  |   입력 : 2023-07-06 19:48:42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실학의 원조가 반계 유형원이라면 1681년생인 성호 이익은 중시조쯤 된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당쟁의 본질은 ‘밥그릇 싸움’이라면서 예를 들어 설명한다. 밥 한 그릇을 놓고 여러 명이 둘러앉아 먹으면 왜 말투가 그러냐, 왜 팔을 치느냐, 시선이 곱지 않다는 등 여러 이유로 반드시 다투게 되지만 실제 원인은 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선은 시험의 나라였다. 1800년 정조는 순조의 세자 책봉을 축하하는 의미로 특별과거 시험을 이틀간 치른다. 여기에 응시한 사람은 21만5000여 명이었다. 조선이 망할 때까지 나라에서 녹을 주는 관직의 수는 고작 3000을 넘지 않았다. 이 엄청난 불균형은 필연코 죽기살기식 당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밀어내지 않으면 자신과 자식의 자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과거 합격을 위해 당연히 온갖 비리와 꼼수가 동원되었다. 시험과목인 ‘사서오경’의 족보집과 기출문제집이 나돌았고 대리시험도 예사였다. 1800년, 21만 명이 넘게 응시한 시험에서 제출된 답안지는 7만여 장이었다. 하지만 채점은 믿기 어렵겠지만 겨우 반나절 만에 끝났다. 응시장에는 입장했지만, 답안지는 내지 않은 나머지 14만 명의 역할은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 묘사에 따르면 과거장에서의 좋은 자리 잡기와 대필, 커닝, 대리시험 등이었다. 참으로 익숙한 풍경이지 않은가?

2022년 사교육비는 26조 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학생 수는 계속 줄어들었는데도 1인당 지출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올 1/4분기에도 3.2%가 또 올라 역대 기록을 경신했다. 사교육비 물가상승률은 10년 만의 최고 기록이었다. 이것이 수능 킬러 문항과 사교육 카르텔 때문일까?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지 않고 명료하게 본질을 지적하는 ‘성호사설’ 식으로 이야기하면 이렇다. 사교육비 증가는 수능 난이도 때문이 아니라 ‘밥그릇 싸움’ 때문이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한 번 비정규직이면 영원한 비정규직의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첫차를 놓치면 다음 버스는 오지 않는다. 2003년 32.6%였던 비정규직 비율은 2021년에는 38.4%, 2022년에는 37.5%로 높아졌다. OECD 기준을 적용해도 전체 임금 노동자 중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28.3%(2021년 기준)로 OECD 평균 11.8%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일본 15%, 독일 11.4%, 영국 5.6%에 불과하다. 정규직이 되어도 고용 안정성은 대단히 낮다. OECD 통계에 따르면 나라별 평균 근속연수는 프랑스 10.8년, 독일 10.9년, 이탈리아 13년이지만 한국은 고작 5.8년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5월 공부도, 취업도, 취업을 위한 직업훈련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청년들이 지난해보다 10% 늘어난 35만7000명에 이른다. 2021년 기준으로는 OECD국가 가운데 3번째로 높다. 학문적 용어로는 ‘일자리 미스매치’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하면 눈높이를 낮춰 중소제조업으로 가봐야 돈도 안 되고 평생 골병들고 개고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대기업 노동자 평균소득은 월 563만 원인데 비해 중소기업은 절반도 안 되는 266만 원에 불과하다. 산재라도 당하면 더 큰 일이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김용균의 산재보상금은 1억3000만 원이었다.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은 기침 이명 어지럼증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2021년 산재 보상금 44억7000만 원을 받았다. 이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치자. 그렇다 해도 대기업·정규직 12%에의 진입 여부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한국에서는 ‘아빠 찬스 없는’ 보통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취업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이 될 수도 없고 자녀에게 중산층이 될 기회나 가능성을 제공할 수도 없다. 이 게임의 키 포인트가 수능이다. 구해근의 ‘특권 중산층’에 따르면 이른바 ‘번듯한 일자리’에 취업한 졸업생의 대부분은 10개 상위권 대학 출신이었다고 한다. ‘교육과정 내 수능 출제’는 모든 정부의 다짐이었다. 교육부 담당국장이 면직되고 교육평가원장이 옷을 벗었지만 6월 모의고사에서 킬러 문항이 많았다고 지적된 국어 과목 만점자는 지난해보다 4배나 많았다. 자율형사립고와 특목고는 그대로 두면서 사교육비를 때려잡는 것이 가능할까? 노동시장의 개편 없이, 임금 격차에 대한 고민 없이, 계층사다리에 대한 고민 없이 수능 시험에서 오직 킬러 문항만 출제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달을 보려는 사람에게 손가락만 보라고 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이 요구하는 것은 지식 암기력과 오지선다형 문제 풀이 요령이 아닌 융합과 창조력을 갖춘 인재이다. 당연히 ‘과목융합형’ 문제와 ‘국어 비문학’ 문제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외국의 유사 시험들도 그렇다. 2022년 9월, 교과 과정에서 벗어난 킬러 문항 출제를 금지하는 법안이 민주당 발의로 국회에 제출되었다. 그때 교육부 차관은 ‘이미 (수능 출제 범위는) 공교육 과정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법안 발의까지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수능 만점자에게 '부산대 진학' 권했다 당한 무안…기고문 화제
  2. 23년 밀린 주차위반 고지서 14억 원치 무더기 발송…진주시 '뒷북 행정'
  3. 3이낙연, 신당 창당 가속화 하나? …“이준석, 시기 되면 만나겠다”
  4. 4수능 수학 1등급, 자연계열 97%… '문과침공' 거세질 듯
  5. 540년 이상 노후 학교 리모델링에 5년간 8조 투자
  6. 6사금융에 내몰린 가구…대부업서 '급전' 빌린 차주 4년 만에↑
  7. 7부산 강서구의회 지역 최초 수산물 방사능 안전 조례 제정
  8. 8'과장 광고'로 수험생 현혹한 학원들…공정위 제재 확정
  9. 9부산항 올해 물동량 2275만 TEU '사상 최대' 전망
  10. 10윤 대통령 "반도체는 한-네덜란드 협력의 중심축"
  1. 1이낙연, 신당 창당 가속화 하나? …“이준석, 시기 되면 만나겠다”
  2. 2윤 대통령 "반도체는 한-네덜란드 협력의 중심축"
  3. 3野 병립형 회귀 '현실론'과 맞붙은'명분론'…원심력 커지나
  4. 412월 임시국회 시작되지만…예산·청문회에 특검·국조논란 등 여야 대치 고조
  5. 5‘위안부 피해자 승소’ 판결 확정…日 상고 포기
  6. 6한미일, '새로운 대북 이니셔티브' 추진, 北 군사협력 금지 재확인
  7. 7[오늘의 운세]띠와 생년으로 확인하세요 (2023년 12월9일)
  8. 8경남도의회 예결위, 2024년 경남도 예산안 수정가결
  9. 9한미일, '대북 신이니셔티브' 추진
  10. 10[정가 백브리핑] 장제원 앞에서 尹에 ‘불쑥’ 송숙희 추천…사상구 미묘한 파장
  1. 1사금융에 내몰린 가구…대부업서 '급전' 빌린 차주 4년 만에↑
  2. 2'과장 광고'로 수험생 현혹한 학원들…공정위 제재 확정
  3. 3부산항 올해 물동량 2275만 TEU '사상 최대' 전망
  4. 4고의로 청산 미루는 재개발·재건축조합 대해 법적 처벌 가능해져
  5. 5해수부, 올해 부산항 인근에서 바다 쓰레기 1059t 건져 올려
  6. 6자금난 겪는 원전 기자재 기업에 '계약금 30%' 미리 준다
  7. 7연말 앞두고 맥주·소주 물가 '껑충'…올 초 이후 최고 상승
  8. 850인 미만 사업장 94% "중대재해처벌법 준비 안돼"
  9. 9한국중소조선협동조합, 스마트 혁신 사업 설명회
  10. 10정부 "국내 차량용 요소 비축량, 3.7→4.3개월분으로 확대"
  1. 1수능 만점자에게 '부산대 진학' 권했다 당한 무안…기고문 화제
  2. 23년 밀린 주차위반 고지서 14억 원치 무더기 발송…진주시 '뒷북 행정'
  3. 3수능 수학 1등급, 자연계열 97%… '문과침공' 거세질 듯
  4. 440년 이상 노후 학교 리모델링에 5년간 8조 투자
  5. 5부산 강서구의회 지역 최초 수산물 방사능 안전 조례 제정
  6. 6'UN 파견 의사인데 같이 살자' 로맨스스캠 전달책 실형
  7. 710일 부산 울산 경남 기온 따뜻한 가운데 흐린 날씨 전망
  8. 8거제 저도 북쪽 해상서 모터보트 침몰…인명피해 없어
  9. 9진주시, 취약계층에 인공지능 활용 돌봄서비스 반려로봇 보급
  10. 10지체장애에도 헌혈 300회한 공무원, 최고명예대장 수상
  1. 1두산 포수 박유연, 음주운전 적발 숨겼다 들통…구단 중징계 예상
  2. 2부산 아이파크 통한의 역전패…수원FC에 2차전 패배로 승강 불발
  3. 3수원FC 5-2 부산 아이파크…부산 1부 리그 승격 불발
  4. 4비기기만 해도 1부 승격…아이파크 한걸음 남았다
  5. 5물 오른 손흥민·황희찬, 불 붙은 EPL 득점왕 경쟁
  6. 6김하성 “공갈 협박당했다” 국내 야구후배 고소 파장
  7. 7이정후·김하성, 빅리그 한솥밥 가능성
  8. 8이소미, LPGA Q시리즈 공동 2위
  9. 9오현규 시즌 두 번째 멀티골…셀틱 16경기 무패행진 견인
  10. 10거침없는 코리아 황소…결승골 터트리며 8호골 질주
우리은행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세계유산에 대한 오해 풀기
‘싱가포르다움’을 위한 그들의 선택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수학의 점과 물리의 점
아무도 모르는 카르텔에 갇힌 韓 R&D 투자 철학
국제칼럼 [전체보기]
‘지식 콘텐츠 챌린지’에 도전하기
기고 [전체보기]
대전환의 시대, 북극 협력 새로운 길 모색하다
잊고 지냈던 나림 선생과의 재회…깊고 넓은 숲의 울림이 찾아왔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김해외국인노동자센터 예산삭감 재고를
교권회복 시킨다더니…교육부, 교사 집단연가에 으름장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이재명 대표께
꼰대세상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안고 죽는다
‘달’ 대신 ‘손가락’만 보세요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연례행사 노벨상에 유감 있다면
양말 뒤집어 신기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전통음악 교육 활성화를 기대하며
예술과 공간이 만난 신개념 방중악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2035 재도전 합리적 검토를
노인을 위한 공연장은 없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무자녀 세금
정보경찰 축소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밤과 몽블랑
참새구이와 어묵
사설 [전체보기]
소득 저축 바닥권 부산, 양질 일자리가 해법이다
울산 대규모 정전…한전 전력관리 점검 서둘러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부산 해사법원 설치 더는 미룰 수 없다
웃음은 의외로 강력하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국가 정치가 절실한 이유
실손의료보험 청구간소화와 의료민영화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저무는 11월에 - 턴 투워드 부산
환대에 대한 생각들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독일을 보면서 곱씹어보는 교훈
골짜기 세대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중세 고려의 소와 소고기
사라진 낙동강 뱃길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오! 홍범도
야만의 과학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펫팸족과 신성장동력 펫코노미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진짜 ‘영남 스타’가 되려면
잼버리 파행을 부산엑스포 전화위복으로!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처음이란 무엇인가? 조지아 와인
사랑의 묘약,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부산의 위대한 도전은 계속 된다
수산업 몰락 재촉하는 후쿠시마 방사능 선동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미니멀 음악
12음기법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윤재 이규옥의 ‘고진감래’
화가 장욱진이 온다
CEO 칼럼 [전체보기]
호모 프롬프트 시대와 부산 MICE 산업
스타트업정신으로 무장한 창업가들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