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비 개인 오후, 뜻밖의 달팽이처럼

박재숙 시인

  • 박재숙 시인
  •  |   입력 : 2023-08-13 19:30:34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왔다. 해가 쨍하다가도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내리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이날도 장대 같은 비가 땅에 꽂히더니 오후가 되자 멈추었다. 그 사이 분리수거를 하고 집으로 다시 들어오는 길에 조그마한 달팽이 한 마리를 만났다. 느리게 기어가고 있었다. 어디서 왔을까. 사람들 발에 밟히기 쉬운 현관 앞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천하태평 기어가는 달팽이의 목적지가 궁금해졌다.

달팽이처럼 등을 둥글게 말고, 쪼그려 앉아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는 거니? 그렇게 천천히 가다가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발에 밟혀 죽을 수 있어.” 하지만 달팽이에게 내 말은 안중에도 없었다. 묵묵히 가던 길을 가고 있을 뿐이었다. 지켜보고 있으려니 그 작은 아이는 보도블록 사이에 나 있는 풀 한 포기를 향하고 있었다.

문득, 나 살기도 바쁜데 달팽이의 생까지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할 수 없다. 네 운명에 맡겨야지 어쩌겠니’. 그냥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나는 다시 달팽이에게로 향했다. 힘없이 부서질 것 같은 작은 아이가 나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에이, 왜 하필 내 눈에 띄어 가지고…, 여기 있으면 위험해 나랑 같이 집에 들어가자.” 손바닥에 작은 것을 올려놓으니 물컹한 것이 느껴졌다. 아이는 쉼 없이 더듬이로 내 손바닥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어디가 좋을까!” 얼마 전 어느 시인한테서 선물로 받은, 잎이 풍성한 나팔꽃 화분 안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를 집게손가락으로 다시 들어 올렸다. “안 되겠다.” 이러다가 화분에서도 탈출해 바닥을 돌아다니면 위험해질 것이 뻔했다. 녀석이 습도가 높고 비가 자주 내리는 날을 좋아하다 보니, 겁도 없이 아파트 화단을 이탈해 현관 앞까지 기어 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조심스레 엄지와 검지로 작은 아이를 들어 올렸다. 불안했는지 패각 속으로 몸을 숨긴 아이를 손바닥에 올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아파트 화단으로 데려갔다. “습한 곳에서 좋아하는 풀 마음껏 뜯어먹고 건강하게 지내야 해?” 작별 인사를 하고 아이를 화단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작은 아이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네 일이나 걱정해’라는 듯이 또다시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미련하리만큼 묵묵히,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느린 것도 용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을 잃고 홀로 헤매는 달팽이를 보며,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바둥거렸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본다. 나의 도시에서의 첫 사회생활은 아찔했고, 차가운 시선 속에 겁에 질려 있었던 시절이었다. 의지할 곳도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 앞에서 나는 느렸고, 수시로 무기력해 있었다. 만원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초점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방향을 잃고 도착지를 놓치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외딴섬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연극 또는 콘서트 등을 통해 그 시간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얼마 전 나는 싸이 흠뻑쇼에서 사람들과 뒤엉켜 노래와 춤과 물에 젖어 맘껏 즐겼다. 앞만 보고 열심히 걸어온 사람들이 돈과 맞바꾼 한 장의 티켓으로 눈치 보지 않고 고단함을 씻어 내리는 시간과 공간이었다.

누군가는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말하면서도 이 넓은 세상에 설 자리가 없다고 말하며 절망하기도 한다.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가꿔 나가지만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길에 당도해 있을 때가 있다.

‘꽃은 가장 절박할 때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 위기가 닥치면 절망하기도 하지만 극복을 잘하면 전화위복이 되기도 한다’는 어느 라디오 디제이의 말이 떠오른다. 철학자 마크 롤랜즈의 말을 빌리자면 ‘고통은 삶의 본질’인 것이다. 삶이 얼마나 아프면서도 기쁜 건지 우리는 매일 이 견고한 세상의 벽을 타고 오르면서 느끼고 있다. 비 온 뒤 뜻밖의 달팽이처럼 묵묵히 나의 길을 걷기로 한다. 반복인 것 같지만 다르게 찾아온 오늘을 반긴다. 차분하면서 가치 있는 하루가 되길 희망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3. 3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4. 4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5. 5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6. 6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7. 7부산행 KTX 하부 패널 파손…승객 300명 열차 갈아타
  8. 8부산국제영화제 11년 만에 ‘관객 20만’ 재돌파
  9. 9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10. 10[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1. 1[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2. 2[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3. 3이 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담아내야" 국회에 개헌 논의 촉구 (종합)
  4. 4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5. 5이헌승 "국제신문 실질적 대주주 조사 미흡" 질타에 부산노동청장 "다음주 면담"
  6. 6李대통령 지지율 39%, 하락세 멈췄다…민주 36% 국힘 27%
  7. 7李대통령 “국무회의 비공개 동의못해…할말 못하는 국무위원 없다 확신”
  8. 8이혼소송 중 주소 노출…서울고법원장, 아내 살해 공무원 사건에 “제도개선”
  9. 9李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수록 개헌, 국회가 나서달라”
  10. 10이 대통령, 김지용 첫 출근에 "피아구별 없이 엄중 수사하길"
  1. 1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2. 2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3. 3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4. 4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5. 5‘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6. 6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7. 7부산 9월 취업자 9000명 늘었지만…'경제허리' 40·50대 3만명↓
  8. 8모건스탠리 “고물가 고착화 위험에 한은 내달 금리 올릴 듯”
  9. 9부산항에 석유 보세구역…북극항로 선박연료 생산·공급
  10. 10AI 투자 회의론 고개…글로벌 반도체주 ‘먹구름’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3. 3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4. 4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5. 5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6. 6부산행 KTX 하부 패널 파손…승객 300명 열차 갈아타
  7. 7고성서 세계적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등산축제
  8. 8“장림항 레저보트 철수명령 정당” 대법 확정
  9. 9예고 임용강사·학원장 겸직, 전국서 부산예고 가장 높아
  10. 10부산 금정구, ‘야생화 및 국화 분재 전시회’ 개최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귀 기울일 것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은정이라는 이름
다시 영화의 시간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초대 중수청장, 내편 네편 아닌 국민편에 서라
지자체, 현수막 법 준수하고 실태부터 파악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