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준비된 작별

김담이 동화작가

  • 김담이 동화작가
  •  |   입력 : 2023-08-20 19:49:29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나는 아직도 아버지 기일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봄이었는데, 봄볕이 따뜻한 날이었는데 대관령을 넘는 길은 뼛속까지 아릴 정도로 추웠다. 그래서 몸은 그날을 겨울이라고 기억하고 있었고, 나는 봄이 되면 언제나 몸이 아프다.

아버지는 암이었고, 이미 마지막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꿈을 꾸었다. 꿈에서 할아버지가 나타나 오늘 아버지가 죽는다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울며 악을 쓰다 잠에서 깼다. 꿈 때문에 온종일 우울했다. 귀가 시간을 늦추려고 필요하지도 않은 운동화를 사며 친구들을 길에 잡아두었다. ‘이젠 집에 가야 해’라는 친구들 말에 새 운동화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에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병원으로 빨리 와’.

메모지를 손에 들고 깜깜한 현관에 오도카니 있다가 운동화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오래 아주 천천히 새 운동화에 끈을 꿰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얕은 숨을 겨우 쉬고 있었다.

“봐요. 막내가 왔어요.” 옆에 서 있던 이모가 아버지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아버지는 안간힘을 쓰며 사그라지는 시간을 늦추고 있었다. 어머니는 물끄러미 새 운동화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장례 기간 내내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우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졸려서 눈을 뜰 수 없었다. 나는 평소에는 서너 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친척들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나를 보고 수군거렸고, 졸다 깨다 반복하는 나를 향해 오빠는 거칠게 소리쳤다. “야, 정신을 차리든가, 들어가서 자.” 친척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오빠의 날 선 말에도 졸음은 달아나지 않았다.

발인이 있던 날, 날은 화창했다. 날이 좋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대관령은 지독하게 추웠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렸다. 화창한 날씨,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 그리고 침묵. 비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장지에서 돌아온 가족은 방에 흩어져 잠들었다. 잠깐 잠에서 깨었던 것 같은데 무엇을 먹고 무엇을 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언니는 대학 기숙사로 돌아갔고,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고, 오빠는 과실에서 작업하느라 밤을 새웠다. 어머니는 빈집에 홀로 앉아 있었다. 오빠가 방에 있는 언니와 나를 부른 것은 장례식이 있고 난 뒤 몇 주일 후였다.

“안방에 좀 가봐. 엄마가 이상해.” 안방으로 건너가니 어머니가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하고 있었다. 원피스를 꺼내 입고, 다홍색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있었다. 평소에 화장도 잘하지 않았고, 원피스도 즐겨 입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어머니 옆에 가서 앉았다.

“엄마, 뭐 해?” “어. 일하러 나가려고.” 직장을 다니던 사람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해가 진 저녁이었다. “엄마 지금은 저녁인데. 봐. 해가 졌잖아.” 어머니는 창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어깨가 스르륵 가라앉았다. 어머니를 다독여 잠자리에 들게 했다. 시간은 또 괜찮은 것처럼 지나갔다. 별일 없이.

무더운 여름 새벽이었다. 잠에서 깼다.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슬퍼서 견딜 수 없었다. 가슴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빠. 아빠.” 베개를 입에 물고 길고 긴 울음을 토해냈다. 그때 알았다. 슬픔이 모두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라는 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은 통점을 무디게 만든다는 걸. 통점이 회복되면 슬픔은 말을 건다. 많이 힘들지.

우리 가족은 이미 아빠가 죽게 될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지만 짐작하고 있는 것과 실제 하는 것은 다르다.

세상에 준비된 작별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1년 새 담당 12명 교체…‘무한 민원’ 공무원 번아웃
  2. 25㎞ 출퇴근 길도 관용차로 모신다? 부구청장들 의전 논란
  3. 3금융권 덮친 AI發 무차별 해킹…같은 IP 여러 곳 침투(종합)
  4. 4나가기 싫은 부캉이…市 구조 멈추고 관찰키로(종합)
  5. 5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6. 6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7. 7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8. 8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9. 96일 개막 BIFF도 ‘암살자(들)’ 후폭풍…레드카펫·무대 행사 줄취소
  10. 10재학생 48명 영도 절영초 통폐합 또 무산
  1. 1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2. 2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3. 3국힘, 장외집회로 정부·여당 압박…민주 “張, 북치고 고함만”(종합)
  4. 4[단독]서지영 “기보, 본사는 부산에 두고 부산 기업은 심각한 홀대"
  5. 5'좌아하게'? 다시 논란 부른 이 대통령 SNS 정치
  6. 6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7. 7[속보]민주당, 국힘 집회에 “극우 유튜버들 박수 세례에 중독된 장동혁”
  8. 8與 “조희대, 국감 출석 불응 의사…불출석은 국회법 위반”
  9. 9영화 '암살자(들)' 논란 속 장동혁, 고(故) 육영수 생가 방문
  10. 10'광대극' 조소 이어 미사일로 응답한 北. 좁아진 청와대 입지
  1. 1금융권 덮친 AI發 무차별 해킹…같은 IP 여러 곳 침투(종합)
  2. 251억 예상 임대수입 다시 계산하니 29억? 사업성 검증 논란
  3. 3‘직원용 시스템’ 등 빈틈 공격…現 보안체계론 AI해킹 무방비
  4. 4부산의 혁신 기업들, 지역발전 동맹 결성
  5. 5CU ‘리센느 빵’ 보름만에 60만 개 판매
  6. 6나들이객 마음에 쏘~옥…유통가 의류·와인 행사 가을대전
  7. 7신세계 센텀시티서 부산 대표 미식 브랜드 팝업
  8. 8해운대 노을 보면서 명상…파라다이스호텔 오션힐링
  9. 9부산銀, 산업 전문성 더해 지역기업 금융 강화
  10. 10“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69건
  1. 11년 새 담당 12명 교체…‘무한 민원’ 공무원 번아웃
  2. 25㎞ 출퇴근 길도 관용차로 모신다? 부구청장들 의전 논란
  3. 3나가기 싫은 부캉이…市 구조 멈추고 관찰키로(종합)
  4. 4재학생 48명 영도 절영초 통폐합 또 무산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5일
  6. 6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7. 7기장 병산저수지 때 아닌 녹조…악취 진동
  8. 8[한 손 뉴스] 1400년 역사 동래온천지구…전국 네 번째 온천도시 지정
  9. 9“누이센터·대봉산 휴양밸리 등 준비해 온 사업, 완성할 차례”
  10. 10돔 최상층 ‘스카이홀’ 길이 600m 컨벤션 場
  1. 1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2. 2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3. 3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4. 4“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5. 5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6. 6‘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7. 7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8. 8[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9. 9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10. 10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국제칼럼 [전체보기]
배지의 실력행사
개헌 말하려면 헌법 준수부터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상표권 알박기
민원인(들)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가덕도신공항 공사비, 법 개정 앞서 정부가 힘 실어야
AI 해킹에 노출된 금융권 보안체계 재점검 시급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드골 대통령과 군복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