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피아노와 콩나물

조미형 소설가

  • 조미형 소설가
  •  |   입력 : 2023-08-27 19:22:47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

우물이 있는 마당, 안채와 아래채가 있는 기와집에는 열 명이라는 대가족이 부대끼며 살았다. 나는 맏이도, 막내도 아닌 중간이었다. 엄마는 종종 내 이름을 까먹기도 했다. 둘러앉은 밥상에 내가 없어도 모를 정도였다. 존재감이 미미했던 내가 피아노를 사 달라고 졸랐을 때 웬일인지 엄마는 흔쾌히 “그러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가 피아노를 준다며 나를 불렀다. 엄마가 준비한 피아노는 건반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엄마가 말했다.

‘손가락에 힘을 주고 꾹꾹 누르는 연습을 해라. 손가락에 힘이 붙고, 눈을 감고도 칠 수 있으면 피아노를 사 줄게’.

나는 엄마 말을 믿고 종이 건반을 꾹꾹 누르며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반복했다. 내 옆에서 엄마는 달력 한 장을 떼어내 뒷면에 그림을 그렸다. 콩나물을 세워 놓은 것 같은 그림이었다. 맨 앞의 동그라미는 콩나물 머리를 똑 떼 놓은 것 같았다. 콩나물 꼬리가 하나 나온 거, 두 개 나온 거, 세 개 나온 거, 새가 날아가는 모양, 길쭉한 달팽이 모양, 재밌는 그림이었다. 밥풀로 그림을 벽에 붙이고 내게 외우라고 했다. 파리채 끝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이름을 알려주었다. 높은음자리, 쉼표, 4분음표, 온음표 등은 아무리 봐도 헷갈렸다.

다음 해 나는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느 날 음악 시간, 선생님이 칠판에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이 물었다. ‘선생님이 그린 그림이 뭔지 아는 사람?’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어깨를 펴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콩나물 대가리입니다’.

선생님 입에서 풋 하는 웃음이 터졌다. 선생님은 한참을 웃으시고는 알려주었다. ‘음표라고 한단다. 음표는 온음표. 2분음표, 4분음표, 8분음표, 16분음표…’.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알고 있던 ‘콩나물 대가리’가 ‘음표’라 부르는 음악 기호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분명 ‘콩나물 대가리’라고 불렀다. 엄마의 조기 교육은 음표 이외에도 조선왕조 계보 순서 외우기, 사육신과 생육신 이름 외우기에 태양계 순서까지 외워야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종이 피아노를 눌러야 했다. 종이 피아노가 너덜너덜해질 때쯤 우리 집에는 진짜 피아노가 생겼다. 의자보다 높이가 낮은 작은 피아노는 건반이 24개 정도였다. 피아노 주인은 내가 아니고 큰언니였다. 나는 언니가 없을 때면 피아노 뚜껑을 열고 건반을 꾹꾹 눌렀다. 맑고 투명한 소리가 어찌나 크게 울리는지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어떤 놀이보다 피아노 치기가 재밌었다. 칠 수 있는 곡이란 학교에서 배운 ‘학교 종’과‘나비야’가 전부였지만 한동안 피아노에 푹 빠져 지냈다.

몇 해가 지나고 고장 난 피아노는 고물상 수레에 실려 갔다. 그 후로 집에는 피아노가 없었고, 나는 여전히 피아노와는 먼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음악적 재능이 없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때 나는 엄마로부터 통합교육을 받은 건 아닐까? 콩나물과 피아노를 결합해서 상상력을 키워준 거잖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때때로 피아노곡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을 주고 탁자를 꾹꾹 누르고 있다.

여름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안동 과수원에 연락해 청사과 한 상자를 엄마 집으로 보냈다. “굵은 사과가 왔다. 돈 많이 준 거 아니냐. 비쌀 텐데 뭣 하러 한 상자나 샀느냐”며 타박하는 엄마 목소리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제 다리 힘이 떨어져 외출하기도 힘들다 말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종종 엄마의 스무 살과 서른 살, 마흔 살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책 한 권 없던 시골 농가에서 그림으로 콩나물 대가리(음표)를 외우라고 했던 엄마의 모습이 그립다. ‘엄마, 사과는 하루 하나만 드시고 밥을 챙겨 먹어야 해. 덥다고 누워만 있지 말고…’.

내 말이 길어지자 엄마는 ‘잘 먹을게’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쩐지 엄마가 조금 귀엽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3. 3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4. 4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5. 5“끝내 알 수 없었던 어머니 마음…그 알 수 없음이 인간이죠”
  6. 6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7. 7“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8. 8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9. 9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10. 10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1. 1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2. 2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3. 3李 “집값 놀라울 정도로 하락…통계 제대로 알려야”
  4. 4정계 “지역언론 독립·공공성 훼손없게 계속 관심을”
  5. 5시의회 상임위 제한 폐지 논란일자 결국 심사 보류
  6. 6국힘 신임 부산행복연구원장에 오경은 전 구의원
  7. 7“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8. 8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9. 9국힘 “가덕 건설 의지 없는 정부…공사비 증액 확약해야”
  10. 10정치권 “능인선원 경영능력 불합격…국제신문 회생 동의를”
  1. 1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2. 2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3. 3“부산 해양수도·북극항로 육성, 선원 역할 중요”
  4. 4[증시와이드] 불확실성 커진 증시…우량주 중심 냉정한 대응을
  5. 5한진칼 주식 더 사는 조원태…호반과 지분경쟁 2R
  6. 62050년 중간저장시설·2060년 영구시설…정부, 방폐물 관리 3차 계획안 여론 수렴
  7. 7‘반도체 소부장’ 원익 공채에 1만2000명 몰려
  8. 8석유류·공업제품값 ‘고공 행진’ 지속…부산 10월 물가상승 4개월만에 최고(종합)
  9. 9한양증권도 털렸다…고객·임직원 정보 일부 유출
  10. 10주가지수- 2026년 11월 3일
  1. 1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2. 2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3. 3“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4. 4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5. 5해군 3600t급 디젤잠수함 ‘서희함’ 진수
  6. 6에코델타에 유치원·초·고교 추가 신설
  7. 7141개 시민단체도 노동계도 ‘국제신문 회생’ 인가 촉구
  8. 8역삼동 연쇄방화 77세 이명수(종합)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4일
  10. 10면세유 23억 원어치 빼돌린 유통업자 집유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3. 3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4. 4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5. 5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6. 6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7. 7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8. 8[뭐라노] 롯데가 스마트 야구를?
  9. 9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10. 10동의과학대학교,‘제1회 부산지역 전문대학 유학생 축구대회’ 준우승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등골 프로텍터
바이낸스 턴 북한 해커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제신문 정상화에 여야 한뜻…능인선원 결단하라
대통령 순방 정보 유출…국가 보안체계 전면 점검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일상으로의 초대
SNS라는 광장,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있는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