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아버지의 우산

이정임 소설가

  • 이정임 소설가
  •  |   입력 : 2023-09-03 19:36:56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십여 년 만에 또 이러고 있다. 대학병원 의자에 앉아서 머리 위 대형 모니터에 아버지의 이름이 떠오르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 왔지만 처음 와 본 병원의 첫 진료라서, 아버지와 나는 좀 헤맸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물어보고, 번호표를 뽑고, 수납하고, 다른 병원에서 받아온 검사 결과지와 CD를 등록하고, 대기했다. 한참 후 만난 의사는 수술이 힘든 경우라며 다른 과로 옮겨서 진료를 받아보라 했다.

우리는 다시 원무과로 가서 번호표를 뽑고, 당일 진료 접수를 하고, 다른 과의 의사를 기다렸다. 집을 나선 지, 네 시간째였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마침표는 나오지 않는 무한 ‘그리고’의 상태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엄마와 다른 대학병원에 다니던 때가 떠올라 심란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썼다. 수술이 힘들 것 같다는 말 때문인지 옆자리의 아버지는 더욱 긴장한 듯했다. 음료도 마다한 채 시무룩하게 앉은 아버지 모습을 보니 온몸이 축축하게 젖는 기분이었다. 큰 병원 가보라는 말을 듣고 혼자 씩씩하게 병원을 찾아가 여러 검사를 받았을 아버지가 결국 그러고 있어서. 아내를 요양병원에 보낸 아버지의 서사가 이렇게까지 극적일 필요가 있나, 싶었다. 지금 우리에겐 주목받지 않아도 소소하게, 명랑하게, 길게 연재되는 이야기가 필요한데. 좀 외로웠다.

둘이 앉은 의자는 병원 로비의 넓은 공간을 향해 있었다. 사십이 년 인생에 아빠와 단둘이 이리 오래 있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기운을 주려고 애썼지만 잘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시작되자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로비에 모여들었다.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이야기가 나오던 시기였다. 그러고 보니 접수증을 받던 각 과 간호사들도 노조가 외치던 구호를 명찰처럼 가슴에 달고 있었다.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발언하고 구호를 외쳤다. 음악을 켜기도 했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자신이 했던 노조 활동 이야기였다. 중년의 아버지는 대학병원 청소 일을 오래 했다. 청소 반장이었던 시절, 그곳 노조에서 활동하며 이룬 일들을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면서 아버지는 쾌활해졌다. 그래 아버지, 우리에겐 이런 이야기가 필요한데.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이야기. 함께 잘 살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 그리하여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 소설가 딸도 이럴 땐 다, 소용없다. 진료를 받고 나오니 비는 그쳤다. 아버지는 그날 긴 우산을 들고 왔다. 편의점에서 파는 투명우산이었다. 우산은 병원 안을 분주히 이동하던 나와 아버지의 두 손을 오갔는데 그때마다 우산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늦은 점심으로 국밥을 먹고 밖에 나오니 비가 다시 쏟아졌다. 서로 가야 할 곳이 반대 방향이라 식당 앞에서 우리는 인사했다. 아버지가 우산 손잡이의 버튼을 눌렀다. 비로소 펼쳐지는 저 투명한 지붕! 거추장스러운 것도 제때를 만나면 소중해진다.

식당 처마 아래에 서서 먼저 떠나는 아버지의 우산을 다시 봤다. 이은주 시인의 시 ‘우산(雨傘)’이 떠올랐다. ‘우산 속에는 사람들이 참 많이도 모여 살지/이마를 부비며 서로를 받쳐주는 일에/ 깃발을 걸고 무동까지 타면서 말이야 //먹장구름 속일수록 더 단단히 모여들지/이렇게 우리가 우산처럼 모여 산다는 것은/다함께 수직에 맞서 둥글어지는 일이야’(긴 손가락의 자립, 신생, 42쪽).

아버지의 삶이라는 우산 속에서 아버지와 연결된 사람들을 생각했다. 최근 아버지의 병을 알고 난 뒤, 동네 친구들은 아버지를 챙겼다. 과채 주스를 직접 갈아 주거나 공원 산책을 함께 했다. 내가 모르던 시절까지 거슬러가면 아버지 우산 속 사람은 무척 많을 것이다. 역시,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는 ‘단단히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다. 아버지의 등을 보며 잠시 빌었다. 아버지가 외로워지는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던 우산 속 사람들이 꼭 나타나는 이야기가 생기길. 물론 나부터 누군가의 우산에 연결되어야 하겠지.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쓰기만 할 게 아니라, 사람 살리는 이야기를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볼 일이다.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둥근 이야기가 팟, 하고 펼쳐졌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 돼지국밥 톱3 ‘민락동 수변최고·신평동 영진·용호동 합천’…미식 열기 펄펄
  2. 2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3. 3“통합 진에어, 처음 취지대로 부산 이전해야”
  4. 4시민공원 인근 또 오염토 나왔다…이번엔 중학교 이전 부지
  5. 5금감원 공공기관 재지정되나…쇄신안 수위 부산이전 분수령
  6. 6고향사랑기부금 왜 받았나…한 푼도 활용 않는 기초단체들
  7. 7박철우 서울공소청장 “李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 검토한 적 없다”
  8. 8“‘재정빨대’ 사과 바라시니 사과” 秋 순직 소방관 빈소 발언 파장(종합)
  9. 9북항환승센터 ‘3.3m 단차’ 갈등, 법원 조정안 확정으로 봉합 수순(종합)
  10. 10지역사회 ‘국제신문 회생인가’ 법원에 탄원
  1. 1“통합 진에어, 처음 취지대로 부산 이전해야”
  2. 2박철우 서울공소청장 “李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 검토한 적 없다”
  3. 3“‘재정빨대’ 사과 바라시니 사과” 秋 순직 소방관 빈소 발언 파장(종합)
  4. 4퐁피두 중단에 국힘 박수영 1인 시위…시민사회 “토건 논리 부활 시도” 반발
  5. 5[속보] 강화도 해안서 '北 유실 추정' 대인지뢰 또 발견…이달에만 4번째
  6. 6이 대통령 지지율 3주만에 반등한 37.3%…민주 36.2%·국힘 40.9%
  7. 7李 “부마와 5·18정신, 헌법에 담아야” 국회 논의 촉구
  8. 8[속보]‘재정 빨대’·사과 논란 추미애, 국감서 소방관들에게 재차 사과
  9. 9국힘 박수영, 퐁피두 백지화에 1인 시위…”도시 경쟁력 높일 기회 날려“
  10. 10김민석 ‘조희대 탄핵’ 밀어붙이나…국힘 “강행 땐 李 마지막 날”
  1. 1부산 돼지국밥 톱3 ‘민락동 수변최고·신평동 영진·용호동 합천’…미식 열기 펄펄
  2. 2금감원 공공기관 재지정되나…쇄신안 수위 부산이전 분수령
  3. 3북항환승센터 ‘3.3m 단차’ 갈등, 법원 조정안 확정으로 봉합 수순(종합)
  4. 4돌아온 ‘캪틴큐’, 한정판 위스키…편의점 취향저격 ‘酒목’
  5. 5국제선 유류할증료 또 인상
  6. 6[뭐라노] ‘가덕’ 공사비 상향 문서화 갈등…11월 착공 불투명
  7. 7리밸런싱 유예 ‘부메랑’…국민연금 100일새 182조 증발
  8. 8우리 아이 가을 옷 고민 끝…신세계센텀, 키즈웨어 팝업
  9. 9‘AI 드론’으로 참치떼 찾는다…수산업 AX 대전환 본격화
  10. 10기후부 지원금 다른 잣대…변전소 되고 발전소 안 되고
  1. 1시민공원 인근 또 오염토 나왔다…이번엔 중학교 이전 부지
  2. 2고향사랑기부금 왜 받았나…한 푼도 활용 않는 기초단체들
  3. 3지역사회 ‘국제신문 회생인가’ 법원에 탄원
  4. 4경남도, 추가 교육지원청 신설 대신 제2청사로
  5. 5동남권 최초 외국교육기관, 19일 명지서 착공
  6. 6“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7. 7부산 북구, ‘숙등 공유어울림파크’ 내년 4월 개관… 지역 랜드마크 도약 기대
  8. 8부산 서구 산복도로 노후 주택가 주차난 환경개선 3곳 추진
  9. 9[한 손 뉴스] 12·12 때 숨진 김오랑 중령, 고향 김해에 추모공원 조성
  10. 10해임 억울해 모금한다더니…초등제자 성추행 벌금 납부(종합)
  1. 1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2. 2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3. 3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4. 4‘통산 최다안타 3위’ 손아섭, 두산에서 방출…선수 생명 이어갈까
  5. 5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6. 6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7. 7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8. 8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9. 9[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10. 10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발가벗겨진 사우디
“난 짜장”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LCC 통합 때 약속한 부산 허브 구축, 정부가 이행하라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무색, 제도적 미비점 보완 시급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