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 앞에선 걸음이 느려진다. 살던 옛집을 지나듯 기웃대고 오밀조밀 진열된 상품을 눈요기한다. 그곳은 대체로 비좁다. 문구가 사방 벽을 채운 그곳은 주로 노년인 어른이 지킨다. 골목이발소처럼 꿋꿋하게 동네 이정표를 자처하며 그곳을 지킨다.
가끔 문구 플라자에 간다. 문구 화방 전산 공예 가전 뷰티 등이 층층이 구분되어 있지만, 발길 가는 곳은 늘 문구류 층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필기구는 필수품이다. 심 굵기 별, 색깔별, 용도별로 진열된 볼펜이 눈을 호린다. 포스트잇이나 메모지류, 필기구도 용도별로 각양각색이다. 몇만 원쯤 지출하면 쾌청한 가을 하늘처럼 기분이 둥실둥실 달뜬다. 기껏 사봐야 아주 작은 것들, 똥이 나오지 않는 글 교정용 빨간 젤리펜이나 플러스펜 정도이지만. 때로 메모용 앙증맞은 카드나 예쁜 봉투, 견출지도 채택된다. 이런 소박한 소비 결과물을 들고 올 때면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온다. 정신을 충족하기에 이만한 가성비가 없다.
어른이 되어서도 문구가 당기는 이유가 뭘까. 어릴 적에 내 것을 못 가져본 후유증이 아니랴. 빈곤한 시절에 언니나 오빠와 형으로부터 크레용 같은 학용품뿐만 아니라 입던 옷과 책상까지 물려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연필부터 쓰던 걸 물려받아 썼다. 오롯한 내 것이 있을 리 없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우수한 성적으로 받은 스프링노트가 온전하게 내 것인 첫 학용품이었다고 기억한다. 학용품 애착을 부추긴 어릴 적 사건이 있다. 오빠는 20리 거리에 있는 읍내 중학교에 다녔는데 오빠 전용인 나무 책상이 가보처럼 가난한 방을 빛냈다. 오빠 물건에 손대는 행위는 암묵적 금기였다. 겁 없는 아이가 이 금기를 깼다. 비밀공간인 책상 서랍을 열고 말았다. 각 맞춰 정리한 볼펜과 연필, 자 같은 학용품 몇 개를 만지작거리곤 제자리에 넣어뒀다. 까칠한 주인이 서랍 속 미세한 변화를 감지했던가. 왜 만졌느냐며 쪼그만 아이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오빠가 아버지보다 무서운 존재였지만, 그 다음 날도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이번에도 놓인 각도가 달랐을까. 귀신같이 알아차린 오빠로부터 더 세게 맞는 재앙을 겪었다.
맞은 기억은 불쑥불쑥 솟구쳤다. 오빠에게 오래 서운함을 품었다. 문구에 갖는 애착도 심화했을 터다. 당사자는 다 잊었을 일을 은밀하게 품고 있다가 얼마 전에야 스스로 풀었다. 내가 중학생이던 때 아버지 생신날이었다. 마을에 사는 큰집 작은집 가족이 다 모였다. 이날 부엌일을 거든다며 뜨거운 미역국을 나르다가 하필 오빠 발등에 쏟고 말았다. 그때 들었던 오빠의 비명이 왜 이제야 떠오른단 말인가. 오빠는 발을 씻을 때마다 덴 흉터를 봤을 것이며 나를 떠올렸을 테다. 그에 비하면 학용품 만진 대가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가와 이토의 소설 ‘츠바키 문구점’, 일명 ‘동백꽃 문구점’은 대필도 해주는 문구점이다. 공책 지우개 컴퍼스 자 매직펜 풀 연필 가위 압핀 등, 전형적인 문구만 있는 작은 가게다. 이곳 주인 20대 후반의 아가씨인 소설 속 나는 가나가와현 가무쿠라시에 산다. 선대(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오래된 일본 가옥에서 혼자 살며 간간이 찾아오는 이들의 부탁을 대필한다. 바다와는 꽤 떨어진 산 쪽이지만 주위엔 사람 기운이 느껴져서 그리 외롭진 않다. 없으면 아쉬운 이 츠바키 문구점에 다양한 사연을 대필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소설 문장을 따라가는 내내 떠오른 한 장소가 있다. 가끔 머릿속을 헹구러 가는 그곳은 동백꽃 문구점 같은 곳이다.
지난여름 숨 막힌 더위에 그곳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볼펜꽂이에 꽂힌 많은 볼펜 중에서 딱히 잡히는 게 없는 걸 보니 그곳에 갈 때가 된 게다. 색색의 플러스펜과 붓펜을 사야지. 밑줄을 그을 때도, 메모할 때도, 꼭 검은 색으로 하란 법은 없잖은가. 기분 따라 골라 쓰는 맛도 있어야 읽는 맛도 나지 않겠나. 알록달록 단풍색 볼펜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 뛴다. 백화점에서 얻지 못하는 정신의 충만감을 주는 곳. 머릿속을 말갛게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동백꽃 문구점에 가듯, 부산대 앞 문구 플라자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