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예매 불발이다, 역에서 표를 사야 한다. 택시에서 내려 허둥지둥 서둘러 매표창구를 향한다. 자동발매기들이 매표창구 절반을 가리고 있다. 철도청 직원이 앉은 창구는 몇 개 안 된다. 기계 대신 사람에게 표를 사기로 한다. 외국인 두 명, 어르신 한 명. 내 앞에 줄 선 사람 합이 셋, 기다릴 것도 없이 곧 창구직원 앞에 선다. 카드를 먼저 꺼낸다. KTX 열한 시 서울역 한 장 주세요. 매진입니다. 창구직원이 단숨에 준비된 말을 건넨다. 그럴 줄 알았어. 원망할 사람 없이 속으로 나를 향해 투덜거린다. 열두 시 전에는 좌석이 없습니다. 약속은 오후 두 시. 늦어도 열한 시까지는 부산역에서 탑승해야 한다.
입석 드릴까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창구직원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입석이요? 네, 입석표 드릴까요? 되묻는 내 말에 창구직원이 질문으로 쐐기를 박는다. 입석표가 있다. 기차표 매진이 아니라 좌석표 매진이다. 주세요. 앞뒤 잴 것 없이 그의 제안을 덥석 받아 문다. 홀린 듯 카드를 카드리더기에 꽂는다. 입석 좌석 가릴 처지가 아니다. 초고속열차 KTX에 입석표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만시지탄이다. 비둘기호에도 무궁화호에도 새마을호에도 입석이 있었다. 완행이든 우등이든 특급이든 입석표 승객이 복도를 채웠다. KTX에 입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당연히 없을 거야. 지레짐작 단정한 단견에 혼자 민망하다. 초고속이라는 말에 지레 주눅 들었을까.
초고속 행성에도 입석이 있다. 지구는 초속 30만 ㎞, 시속 10만7000㎞, 음속의 88배 초고속으로 공전궤도를 질주하는 비행선이다. 초고속 지구행성호의 모범 입석 승객은 나무다. 서 있는 삶은 나무를 따를 자가 없다. 나무는 좌석을 기웃거리지도, 앉을자리를 찾아 돌아다니지도, 두리번거리지도, 날쌔게 가방을 던지지도 않는다. 선 채로 무한천공 우주를 이동하고 싹 틔우고 꽃 피우고 열매 맺는다. 나무는 표표하게 지구행성의 초고속을 즐기는 스피드광 우주여행자 혹은 일상형 입석광대인지 모른다.
사람이 발권해 건네는 종이 기차표가 새삼스럽다. 주문을 포함한 각종 삶의 과정에서 한 단계씩 사람이 삭제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일까. 최근 몇 년 당연한 듯 스마트폰 화면으로 전자 기차표를 전송받았다. 손바닥 크기 종이 기차표를 손에 쥐자,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거슬러 오르며 마음이 시간의 노선을 이탈한다. 기차표가 작고 두껍게 압축된다. 명함 절반 크기의 단단한 마분지 기차표가 손바닥에 앙증맞게 놓인다. 기억의 기차역에 줄 선 나는 개찰구가 열리기를 기다린다. 모자 쓴 역무원이 일일이 기차표를 확인한다. 흰 장갑 낀 손이 펀칭기로 기차표에 구멍을 뚫기 시작한다. 내 기차표에 새끼손톱 절반만 한 구멍을 뽕 뚫고 튀어나온 반원형 종이 파편이 바닥에 떨어진다. 완행의 추억이 문을 연다.
KTX 한 회 출발 열차당 최대 112장의 입석표가 발매된다. 나의 입석표는 10호차로 지정되어 있다. 승객을 분산시키기 위한 방편일 뿐, 입석표로 어느 호차나 탑승 가능하다. 문 앞 통로의 보조 좌석을 선점해서 앉아가는 것이 무난하다. 친절한 승무원의 안내다. 보조 좌석은 한 호차당 두 자리뿐이다, 입석표 승객은 구간별로 비어있는 좌석을 찾아 앉을 수 있다. 기차가 역에 정차하면 일어서고 기차가 출발하면 빈자리를 찾아 옮기기를 반복한다. 제 이름으로 등기된 집 없이 수시로 불시에 만료되는 계약에 따라 짐을 싸는 이사 같다. 그마저 없어 서서 간다. 두 시간 남짓 의자 하나가 계층을 나누는 표지 같다. 지금 나는 좌석계급이 부러운 입석계급인가. 의자 하나가 마음을 가지고 논다.
의자를 찾아 두리번거리느라, 풍광과 사람과 세계와 우주의 신비를 놓치는 청맹과니의 시간이었을까. 걷고 달리고 박차고 뛰어오르고 춤추는 환희를 지운 날들이었을까. 지금 이 열차는 종착역인 서울역에 도착하겠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잊으신 물건 없이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 때가 오면 배웅도, 약속도, 슬픔도, 불안도, 희망도, 절망도 모두 잊고 내리게 되리라. 입석의 마음이 하염없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