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을숙도 갈숲이 전하는 말

말없이 토닥여주는 온기

소소한 사연 공유와 공감, 건강한 사회 만드는 초석…부드러움이 강한 것 이겨

김종희 문화공간 빈빈 대표

  • 김종희 문화공간 빈빈 대표
  •  |   입력 : 2023-10-04 18:47:23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엔 숱한 이야기가 쌓여있다. 어떤 사람은 현무암처럼 숭숭 뚫린 이야기를, 어떤 사람은 몽돌을 훑는 물소리 같은 이야기를 걸어왔다. 이야기의 심지는 사람이다. 호롱불의 심지를 들어 올리며 가릉가릉 불꽃을 밝히듯 사람의 이야기는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 그의 심지가 된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아무도 모르는 오솔길과 아직도 모르는 오솔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내일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신비로운 것은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거울처럼 비춰주는 어깨가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설령 절절한 고통에 직면하더라도 선암사 해우소 등 굽은 소나무처럼 내 이야기를 그냥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기에,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한 시간을 지나 저마다의 빛깔로 물드는 시절이다. 방방곡곡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담은 사진이 다채로운 사연을 담아 수북하게 쌓여간다. 저마다의 사연처럼 모든 경험은 이유가 있다. 아픔은 아픔대로 이유가 있고 즐거움은 또 그만큼의 까닭이 있다. 그 까닭을 들어주는 마음이 배려이다. 때로는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외로운 영혼을 치유받기도 한다.

배려의 시작은 공경이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도 그런 공경의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공경은 공감으로 이어가고 상호신뢰로 단단하게 엮이어 마침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그것은 화려한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 상대를 헤아려 건네는 말 한마디, 말없이 토닥여 주는 온기, 때로 그냥 한 번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너와 나는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우리나라를 넘어 서구 철학자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실천하는 지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그의 이야기는 회자되어 널리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퇴계 이황은 정치적 격동기를 살다 간 대유학자로 일정한 스승이 없이 가학(家學) 속에서 학문의 일가를 이루었다. 그는 세(勢)·명(名)·리(利)를 획득하기 위해 온갖 협잡과 술수가 난무하던 세태와, 인심이 바로잡히지 못하는 현실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한편, 타인을 예로 대함으로써 인간을 존중했으며 일상의 삶 속에서 ‘경(敬)’을 실천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계를 중시했던 오백 년 전 실천적 지성인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엄격했다.

아! 그를 생각하며 ‘지금’을 본다.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본 것만을 말하고 그것만이 진리인 양 여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만 정의로운 세상이다. 사람에 대한 공경은커녕 같은 방향 아니면 적이 되는 사회, 귀는 있으되 경청하는 기능이 상실되었으며 부드러운 입술을 통해 나온 말은 날카로운 흉기가 되었다. 전인교육으로 학생들의 미래를 열어가는 교권은 추락했으며, 노년은 존경받지 못하고 청년은 미래가 불안하다. 시대정신은 사라지고 칼춤이 난무하는 사회, 법치도 염치도 협치도 없는 광기의 정치판엔 미래 언어가 없다. 기후위기와 생태, 환경의 위기는 생존권에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이 불편한 진실 앞에서 국회 입법자들의 목소리는 없다. 그뿐이랴. 문화의 원형은 고사 위기에 직면해 있고 오로지 패권주의만 있다. 한 국가의 브랜드파워는 경제뿐 아니라 문화의 역할도 크다. 문화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양식과 세계관 시대정신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양상이다. 삶의 보편성을 바탕으로 시대의 특수성에 의해 형성된 문화는 경작되는 농작물처럼 다양한 현상으로 성장한다.

문화양상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이야기가 된다. 곁방문을 돌아 실개천으로 흐르는 이야기는 위대한 예술이 되고 그것은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된다. 예술의 향유 속에 형성된 상상력은 미래 세대가 열어갈 세계의 초석 아닌가.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공유하는 작은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의 이야기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문화 관련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강물처럼 유장하게 흘러갈 이야기 하나를 잃어버린 아찔함이 일어나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강한 것은 부러진다. 강한 것은 부드러움을 이기지 못한다. 태풍에 뿌리째 뽑히는 굵은 나무와 달리 을숙도 갈대, 제자리에 꿋꿋하게 서 있는 것은 강해서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며 끌어주기 때문이다. 어떤 위기 앞에서 분열하지 않고 이마를 맞대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자라난 갈대숲이 무질서한 듯해도 들여다보면 나름의 질서를 가진다. 키 큰 것은 낮은 데까지 햇빛이 들도록 가지를 좁히고 때로 여린 넝쿨에 등을 내어준다. 천적을 피해 숨어든 생명은 어미처럼 보듬어 주며 시간의 이행이 그려낸 숱한 이야기를 품는다. 숱한 사연을 담아낸 을숙도 갈숲이 전한다. 이야기가 끊어진 사회는 죽은 사회와 같다고…. 붉은 포도주를 짜기에 아직 가을이 많이 남았다고….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단독] 직원간 주먹다짐, 택시운전사 폭행…부산 공공기관 왜이러나
  2. 2[뉴스 분석] 혁신 설계로 파격 인센티브 잡아라…삼익비치 등 5곳 ‘군침’
  3. 3가덕신공항 부지공사만 10조…주거래은행 누가 될까
  4. 4글로벌허브법, 22대 부산 여야 ‘1호 법안’ 발의
  5. 5“평생 피아노만 쳤는데…데뷔작 칸 초청돼 영광”
  6. 6광안 3구역 재개발 수주전…삼성물산 입찰제안서 제출
  7. 7‘돗자리 클래식’ 향연…주말 시민공원 달군다
  8. 8학교 급식실 골병의 근원 ‘14㎏ 배수로덮개(그레이팅)’ 무게 줄인다
  9. 9“군대 보내기 무섭다” 부대 사망사고 年 100여건 집계
  10. 10소년체전 부산골프 돌풍…우성종건 전폭지원의 힘
  1. 1글로벌허브법, 22대 부산 여야 ‘1호 법안’ 발의
  2. 2부산시의회 ‘뿌리산업 연구모임’ 정책 개발 시동
  3. 3尹, 4개 쟁점법안 거부권…‘세월호법’만 수용
  4. 4이재명 “민생지원금 25만 원 차등지원도 수용하겠다”
  5. 5尹, 채상병 사건 이첩날 이종섭과 3차례 통화…野 “외압 스모킹건”
  6. 6조경태, 에어부산 존치 위해 산은 회장 만나고 대한항공도 접촉
  7. 7“민생·정책정당 집중” 22대 국회 앞 與 결의
  8. 8“오 마이 프렌드” UAE대통령·이명박 16년 우정 화제
  9. 9與 “검토·합의 없는 3無 법안”…野 “거부병 걸린 대통령”
  10. 10[속보]북, 오물 풍선 도발 이어 탄도미사일 발사
  1. 1[뉴스 분석] 혁신 설계로 파격 인센티브 잡아라…삼익비치 등 5곳 ‘군침’
  2. 2가덕신공항 부지공사만 10조…주거래은행 누가 될까
  3. 3광안 3구역 재개발 수주전…삼성물산 입찰제안서 제출
  4. 4건설업계 만난 금감원장 “PF 부실정리 미루면 대형업체도 못 버텨”
  5. 5코스닥 현금배당 1위 리노공업, 455억 풀었다
  6. 6일광 노르웨이숲 오션포레- 리조트형 하이엔드급 아파트…휴가 같은 일상 집에서 즐겨라
  7. 7동국씨엠, 獨 에쉬본에 지사…‘부산 K-강판’ 유럽 누빈다
  8. 8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31일 공식 발족
  9. 9“2030년 극지운항 400조 예상…방한기술 개발 서둘러야”
  10. 10삼성전자 노조 첫 파업 예고
  1. 1[단독] 직원간 주먹다짐, 택시운전사 폭행…부산 공공기관 왜이러나
  2. 2학교 급식실 골병의 근원 ‘14㎏ 배수로덮개(그레이팅)’ 무게 줄인다
  3. 3“군대 보내기 무섭다” 부대 사망사고 年 100여건 집계
  4. 4부산 한 초등학교 급식실서 화재… 일부 직원 연기 흡입
  5. 5여아 성추행 혐의 무자격 원어민 강사 구속(종합)
  6. 6공항 소음지역을 테마관광지로 변신 시도…‘역발상’ 성공할까?
  7. 7‘김건희 수사’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 박승환
  8. 8[뭐라노]느슨해진 기강…가장 큰 피해자는 시민
  9. 9손님 건넨 신용카드 정보 메모 후 악용…1200만 원 결제한 60대 벌금형
  10. 10정당 지역위 사무실 불법 설치·자금 수수한 당원 21명 적발…지방의원 3명 포함
  1. 1소년체전 부산골프 돌풍…우성종건 전폭지원의 힘
  2. 2박세웅 마저 와르르…롯데 선발 투수진 위태 위태
  3. 3명실상부한 ‘고교 월드컵’…협회장배 축구 31일 킥오프
  4. 4한국야구 프리미어12 대만과 첫 경기
  5. 5연맹회장기 전국펜싱선수권, 동의대 김윤서 사브르 우승
  6. 6낙동중(축구) 우승·박채운(모전초·수영) 2관왕…부산 23년 만에 최다 메달
  7. 7“농구장서 부산갈매기 떼창…홈팬 호응에 뿌듯했죠”
  8. 8호날두 역시! 골 머신…통산 4개리그 득점왕 등극
  9. 94연승 보스턴 16년 만에 정상 노크
  10. 10오타니, 마운드 복귀 염두 투구재활 가속
우리은행
후보가 후보에게 묻는다
부산 서동
4·10 총선 지역 핫이슈
원도심 숙원 고도제한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노동자 건강을 위한 국제사회의 경향
소규모사업장 중처법, 투약 중단이 필요한가?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 많이 두들겨 보아야 할 산복도로라는 돌다리
옛 부산세관 복원, 진정한 새로운 전통이 되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과학기술 R&D 투자가 나아가야 할 길
축복의 계절
국제칼럼 [전체보기]
‘3요’와 칸 레드카펫을 빛낸 조연들
AI시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기고 [전체보기]
대학은 私的인가 公的인가?
지역 창업기획자가 부산의 미래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에 대한 열렬한 환호와 예우…‘축제의 궁전’ 품격이 달랐다
영화의전당 대표 연임…소통 외치는 현장에 귀 기울여야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이재명 대표께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노무현이 옳았다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신문은 살아 있고, 칼럼은 말을 건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디아스포라의 노래 영천아리랑
우리 융복합 음악의 시초 고구려악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소통을 이기는 무기는 없다
선한 영향력
데스크시각 [전체보기]
가덕신공항과 박형준의 정치적 미래
도청도설 [전체보기]
아마존과 고용유연성
한·일·중, 한·중·일
메디칼럼 [전체보기]
일하는 사람의 1차 의료, 근로자 건강진단
100세시대의 건강관리법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대만과 밀크피시
조식전쟁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腦力)을 키우는 다섯 가지 비결
뇌, 팩트 체크!
사설 [전체보기]
오늘(30일) 22대 국회 개원…부산글로벌특별법 처리하라
“부산 오시죠”…차등전기료 활용 기업 유치 새판짜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그라믄 안돼” 팬의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
지옥에서 국가명승으로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의대 입학정원 갈등의 올바른 해법
우리 시대의 올바른 복지 원칙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회의 바다, 우리네 함장은 어디로 키를 잡을까
부산항, 글로벌 물류 허브 플러스 알파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12월의 기도편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경제문제가 풀려야 인구문제가 풀린다
중국의 한국시장 시장교란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호모 사피엔스의 바다
세상을 뒤흔든 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한국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IB교육학회 창립
‘자신과의 경쟁’이 ‘경쟁 교육’ 대안이다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비례대표 제도는 죄가 없다
‘자객공천’ 유감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오페라 와인
와인이란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낭만오페라의 종언! 푸치니
정명훈과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처음 보는 ‘무릉도원’
무호 이한복의 ‘운룡도’
CEO 칼럼 [전체보기]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드론으로 변화할 부산의 미래
  • 국제크루즈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