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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일본의 계단식 논과 덴피보시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   입력 : 2023-10-22 18:20:3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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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성이 비탈진 곳에 층층이 일군 계단식 논은 조성 자체도 힘들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저수지나 강물을 활용하는 관개시설 없이 오로지 빗물에만 의존하는 천수답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계단식 논은 생존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그 열망에서 비롯된 의지와 노력으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일본 오이타현의 계단식 논과 볏단 건조 풍경.
쌀이 주식인데 산과 섬이 유난히 많은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계단식 논이 발달했고 쌀을 초과 생산하는 지금도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남 남해군 남면의 ‘다랭이논’과 전남 완도군 청산도의 ‘구들장논’이다. 다랭이논은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자원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청산도 구들장논은 2014년 국제식량농업기구(FAO)가 주관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세계 최대 규모인 필리핀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은 1995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중국 윈난성의 계단식 논은 ‘가장 신기한 대지의 조각품’으로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손꼽힌다. 이처럼 계단식 논은 벼농사가 근간인 동아시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풍경이며 문화유산이다.

일본의 농림수산성은 1997년 일본 전국에 있는 137개 계단식 논을 ‘일본 100대 계단식 논’으로 지정했다. 이후 보존회 학회 등이 결성되면서 일본의 중요한 농업 유산인 계단식 논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 활발하다. 계단식 논은 그 자체로 중요한 유산이며 관광자원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계단식 논 덕분에 유지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농업 유산이 있다.

과거에는 사람이 낫으로 벼를 수확했다. 수확 철이 되면 마을 주민을 물론이고 군인 학생 공무원까지 동원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콤바인 한 대면 열 사람이 한나절 동안 해야 할 벼베기를 30분이면 끝낼 수 있다. 심지어 벼를 베는 동시에 탈곡까지 한 번에 이뤄진다. 하지만 좁은 비탈길을 올라야 하고 논의 면적이 좁고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계단식 논은 콤바인을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여전히 낫이나 소형 수확기로 사람이 직접 베어야 한다. 이럴 때 반드시 이어지는 작업이 햇볕에 볏단을 말리는 ‘덴피보시(天日干し)’다.

벼는 일반적으로 낟알의 수분 함량이 20%일 때 수확한다. 하지만 장기 보관을 위해서는 수분 함량을 15%로 떨어트려야 한다.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면 수확과 동시에 탈곡이 되고, 이를 건조기에 돌린다. 이 경우 건조과정에서 불량미의 비율이 높아지고 맛은 떨어진다. 콤바인을 사용하기 전에는 우리나라도 일본도 볏단을 논에 세워 1차 건조 후 탈곡하고, 탈곡 후 2차 건조했다. 탈곡 전에 볏단을 건조하면 불량미의 비율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쌀의 찰기, 풍미, 맛이 좋아진다. 이처럼 가을볕에 볏단 말리기, 즉 덴피보시가 일본의 계단식 논에서는 여전히 보존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소량만 시중에 유통된다. 덴피보시한 쌀로 지은 밥을 먹어 본 경험이 있거나, 그 가치를 아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노령화와 인구감소가 급격히 진행되는 우리 농촌에 이런 번거로운 것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행여라도 이렇게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 판매되는 우리 쌀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수고에 대한 값을 치르고 구매할 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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