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황정수의 그림산책] 윤재 이규옥의 ‘고진감래’

  • 황정수 미술평론가
  •  |   입력 : 2023-10-29 19:16:30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근대기 이후 부산 지역 화단에서 유행한 독특한 소재가 있다. 통칭해서 ‘고진감래(苦盡甘來)’라 부를 만하다.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면,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내용이다. 다른 지역 화가들도 이러한 내용을 그렸겠지만, 특히 이곳 부산 지역에서 여러 화가들이 유사한 내용의 그림을 그렸다. 어떤 화가는 ‘고진감래’, 어떤 이는 ‘협동’, ‘총화’ 등의 제목을 달기도 했지만, 크게 보면 모두 고난을 극복하는 유사한 내용이다. 유독 부산 지역에 이런 제목의 작품이 유행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곳이 한국전쟁 때 전국의 많은 사람이 전란을 피해서 살던 피란지였다는 점이다. 갑자기 일어난 전쟁으로 모든 것을 내팽겨 둔 채 피란 온 실향민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고단한 삶의 현실이 투영된 그림이 바로 ‘고진감래’이다.
이규옥 ‘고진감래’. 개인소장.
‘고진감래’ 형식의 그림을 그린 이로는 ‘윤재(潤齋) 이규옥(李圭鈺, 1916~1999)’이 첫 손에 꼽힌다. 이규옥은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의 제자로 화조와 인물화에 능한 화가이다. 일본에 유학한 후 돌아와 부산에 자리 잡았다. 동아대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길렀고, 다양한 작품으로 후배들을 선도했다. 그는 선배 화가로서 매우 온화한 품성을 가져 후배, 제자들이 많이 따랐다고 한다. 제자가 자신이 자주 그리는 소재에 재능을 보이면 제자에게 그 소재를 양보해 장기로 삼게 하고, 자신은 다시는 그 소재를 안 그릴 정도로 배려하는 마음이 넉넉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혁신적으로 창의성을 보이거나 매우 자극적이진 않지만, 인간적인 내음이 가득한 것들이다.

이규옥은 모란이나 장미, 매화 같은 꽃 그림에도 뛰어났지만, 그의 장기는 아무래도 ‘고진감래’와 같은 인간의 삶이 녹아있는 인물화이다. 그림 내용은 주로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어린아이를 업고, 머리에 물동이나 소쿠리를 이고 있는 모습이다. 현실의 어려움이 가득 배어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고달프지만 꼭 고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모습 속에는 어려운 현실을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노력으로 이겨내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다. 늘 가족을 챙겨야만 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표상이다. 어머니들은 이런 고난을 숙명으로 생각하고, 힘든 내색 없이 견뎌왔다. 그림에서 보듯 가족뿐만 아니라 키우는 강아지도 어머니를 의지하며 따른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 이후의 지난한 세월 속에서 어려운 시절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어머니의 노력으로 한 시대를 이겨나갔다. 이러한 현실은 화가들의 집안도 그랬을 것이다. 화가들의 눈에 이처럼 감동적인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화가들은 이러한 순간을 회상하며 그림으로 그렸으며, 그 그림을 본 사람들은 모두 좋아했다. 1970, 80년대를 지나며 경제가 안정되고, 과거를 추억하며 희망을 볼 수 있는 그림을 찾았다. 이때 많이 팔려 집에 걸린 작품이 바로 이규옥의 ‘고진감래’와 같은 작품들이다. 이런 그림은 청초(靑艸) 이석우(李錫雨), 윤석균 등 여러 작가의 작품 속에도 등장하며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소재가 되었다. 지금도 부산 지역 그림하면 ‘고진감래’가 떠오르는 것은 모두 이규옥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 재건축 최대어 어디로…망미주공 ‘4파전 ’
  2. 2마린시티 길이 500m 수중 방파제 세운다…8년 논란 종지부
  3. 3가덕신공항 공사 ‘공동도급 2→3社’ 입찰 조건 완화
  4. 4낙동강변 ‘알박기 주차’ 해결책 나왔다…한 달 방치땐 견인
  5. 5유커 감소·고환율에 직원·급여 줄이며 마른 수건 짜내기
  6. 6거제 씨릉섬, 출렁다리로 걸어다닌다
  7. 7“부산시향 올해 대표공연은 ‘말러’…표 구하기 어려운 악단 만들겠다”
  8. 8진해신항 컨부두 3번째 유찰…메가포트 차질 우려
  9. 9더위보다 뜨거운, 유통가 초복 마케팅
  10. 10트레킹가이드·도보배달…부산 ‘낀 세대(50·60대)’ 위한 ESG 일자리도
  1. 1곽규택 의원-보좌관 협업으로 에어부산 분리매각 연일 목청
  2. 2“野가 여론 왜곡”vs“尹부부가 배후”…임성근 전 해병대 사단장 무혐의 공방
  3. 3이번엔 사천 의혹 등 ‘거짓말’ 충돌…극한 치닫는 원-한 갈등(종합)
  4. 4尹, 기시다와 정상회담 “북러 밀착, 글로벌 안보 심각한 우려”
  5. 5野 ‘노란봉투법·구하라법’ 등 당론 채택
  6. 6[뭐라노-이거아나] 필리버스터
  7. 7與 ‘尹탄핵 청문’ 권한쟁의심판 예고…野 “반대 청문도 환영”
  8. 8국힘 당권주자들 한목소리로 부산 발전 약속
  9. 9‘임성근 구명 로비’ 녹취록 파장…野 “尹 국정농단” 與 “李 방탄용”
  10. 10동북아물류플랫폼 등 부산 4대 사업 GB해제총량 예외 인정 받을까
  1. 1부산 재건축 최대어 어디로…망미주공 ‘4파전 ’
  2. 2가덕신공항 공사 ‘공동도급 2→3社’ 입찰 조건 완화
  3. 3유커 감소·고환율에 직원·급여 줄이며 마른 수건 짜내기
  4. 4진해신항 컨부두 3번째 유찰…메가포트 차질 우려
  5. 5더위보다 뜨거운, 유통가 초복 마케팅
  6. 6CU, 초대형 아이스 아메리카노 출시
  7. 7부산에 로봇생태계 조성, 공동연구센터 설립 협약
  8. 8한은, 기준금리 또 동결…“적절한 때 방향 전환 준비”
  9. 9부산상의 기업맞춤 교육, 8주 과정 48명 수료식
  10. 10BNK금융 빈대인 회장 “금융사고 무관용 원칙”
  1. 1마린시티 길이 500m 수중 방파제 세운다…8년 논란 종지부
  2. 2낙동강변 ‘알박기 주차’ 해결책 나왔다…한 달 방치땐 견인
  3. 3거제 씨릉섬, 출렁다리로 걸어다닌다
  4. 4트레킹가이드·도보배달…부산 ‘낀 세대(50·60대)’ 위한 ESG 일자리도
  5. 5사라진 김해공항 리무진, 부산시 대체교통편 투입
  6. 665세 이상 인구 1000만 시대
  7. 7부산시, 인구의날 맞아 지역소멸 대응 의지 다져
  8. 8"인허가 청탁 해주겠다"며 일동 측에 금품 받은 전 공무원 실형
  9. 9관세 줄이려고…중국산 고추 482t 바꿔치기 덜미
  10. 10국제 공인교육과정 IB 프로그램 확대, 한국어화 사업 등 부산교육청 팔걷어
  1. 1해동고 40년 만에 ‘금빛 메치기’
  2. 2음주운전 빙속 김민석, 헝가리 귀화
  3. 3고별전도 못한 홍명보 감독
  4. 4반즈 화려한 귀환…박세웅 제 몫 땐 ‘7치올(7월에 치고 올라간다)’
  5. 5잉글랜드 2회 연속 결승행…스페인과 빅매치
  6. 6‘메시 氣’ 받은 야말, 유로 최연소 골…스페인 결승행 견인
  7. 7부산고·경남고 ‘외나무 다리’서 만난다
  8. 8베테랑 투수 의존 과한 롯데…젊은 선수들 분발해야
  9. 9사격 17세 반효진, 43세 이보나…파리행 태극전사 최연소·최고령
  10. 10이변의 윔블던…세계 1위 신네르 탈락
與당권주자 릴레이 인터뷰
“당정 소통이 당쇄신의 시작…반윤 앞세우면 공멸”
與당권주자 릴레이 인터뷰
“원내만으로 현안 못 풀어…대표되면 당 시스템 쇄신”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산재보험 60년, 이순(耳順)이기를 바란다
노동자 건강을 위한 국제사회의 경향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 많이 두들겨 보아야 할 산복도로라는 돌다리
옛 부산세관 복원, 진정한 새로운 전통이 되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정부 R&D에서 지역이 소멸되었다
과학인증의 시대
국제칼럼 [전체보기]
길 들이기와 길 들지 않기
‘3요’와 칸 레드카펫을 빛낸 조연들
기고 [전체보기]
AI의 일상화와 창작
아빠 육아 참여, 선택이 아닌 필수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에 대한 열렬한 환호와 예우…‘축제의 궁전’ 품격이 달랐다
영화의전당 대표 연임…소통 외치는 현장에 귀 기울여야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위선’ 일망정 ‘공감’과 ‘배려’를 보고 싶다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공존과 양립으로서의 국악 컬래버
디아스포라의 노래 영천아리랑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좋은 사람 되기
실력·인성 갖춘 축구 ‘레전드’ 정용환이 그립다
데스크시각 [전체보기]
가덕신공항과 박형준의 정치적 미래
도청도설 [전체보기]
맨발 걷기
윤나고황
메디칼럼 [전체보기]
미래 한국 의료는 어디로
일하는 사람의 1차 의료, 근로자 건강진단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대만과 밀크피시
조식전쟁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腦力)을 키우는 다섯 가지 비결
뇌, 팩트 체크!
사설 [전체보기]
점입가경…‘김건희 문자’에 갇힌 국민의힘 전당대회
양동이로 퍼붓듯…극한 호우 대비 부울경 예외 없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빚 수렁’ 자영업자 위기 극복은
AI시대의 천국과 지옥, 그리고 민주주의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건강주치의 제도가 의료 개혁의 핵심인 이유
의대 입학정원 갈등의 올바른 해법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심해 유전 140억 배럴, 영일만과 산유국의 꿈
기회의 바다, 우리네 함장은 어디로 키를 잡을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푸틴의 행보와 러시아 경제
경제문제가 풀려야 인구문제가 풀린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수영에서 ‘역사도시’ 부산을 보다
인문 정신은 언제나 곡선으로 간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나만의 생각’을 길러주려면
한국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IB교육학회 창립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건강과 재물을 얻는 명당아파트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당원 중심주의’의 함정
비례대표 제도는 죄가 없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호주 와인과 보랏빛 수영장
오페라 와인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로크 음악
낭만오페라의 종언! 푸치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꽃피는 부산항’에서
처음 보는 ‘무릉도원’
CEO 칼럼 [전체보기]
변화하는 모터쇼와 부산모빌리티쇼의 도전
위기가 기회로!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