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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놀다가 죽는 나라가 정상인가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관련자들 책임 회피 급급

애도보다 비방 넘쳐 참담…비극 직시해 재발 막아야

김인선 부산대 교수·여성연구소

  • 김인선 부산대 교수·여성연구소
  •  |   입력 : 2023-11-01 19:46:04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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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의미 있는 영상물들이 제작되었다. 뉴스타파가 제작한 ‘이태원 참사 1주기 - 무책임, 무시, 그리고 흩어진 목소리’(23.10.25), 이태원 사고부터 구조까지 생존자들이 1년 만에 꺼낸 이야기를 담은 KBS 다큐인사이트 ‘이태원’(23.10.26), 파라마운트사가 공개한 2부작 다큐멘터리 ‘크러쉬’(23.10.17)는 2022년 10월 29일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날의 기억을 되짚는다. 특히 보디캠, 감시카메라, 휴대폰 영상, 조사 청문회 및 기자회견, 언론 보도를 포함하여 280개 출처에서 수집된 1500시간 분량의 자료를 분석해 참사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크러쉬’는 참사가 어떻게 벌어졌고 어떻게 수습되었는지 퍼즐 조각을 맞춰간다. 주한 BBC 특파원 진 맥킨지는 지금껏 한국 정부가 대규모 시위를 잘 통제해 왔는데 이태원에서는 왜 그러지 못했는지 묻는다. 다큐멘터리 감독 제프 짐발리스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이 두 대형 참사의 분명한 공통점은 참석자와 희생자 대부분이 젊은 세대였다”고 지적한다.

곰곰 따져보면 ‘10·29 이태원 참사’는 8년 전 ‘4·16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점이 많다. 희생자 대부분이 젊은 세대라는 점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었던 시간에 정부는 도대체 어디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겹친다. 유가족들이 지금껏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을 요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국가에 애타게 묻고 있다는 점도 뼈아프다.

정부는 참사 발생 12시간 만에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무한책임을 통감한다며 ‘모든 사안이 제대로 수습되고 우리 국민이 만족’할 때까지 지원하겠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우리나라에서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된 선례가 천안함 피격 사건 단 한 건뿐임에 비춰볼 때 실로 이례적인 조치였다. 그러나 참사 초기 약속과 달리 정부는 사고-보상이 마무리되었다며 중대본 활동을 12월 2일 시급히 종료했다. 무한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과 달리 재난·안전 책임자 중 누구도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참사 직후 행정안전부가 이태원 참사라는 말 대신 이태원 사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부터 어쩌면 이런 결말이 예정되었을지도 모른다.

정부가 참사의 책임을 이태원에 간 시민에게 전가하고 국가의 책임이 아님을 표명하면서 안타깝게도 희생자를 애도해야 할 자리를 비방과 혐오가 채우기 시작했다. “놀다 죽은 사람을 추모할 생각은 없다” “유흥을 즐기다 죽은 애들을 가지고 왜 이렇게 야단법석이냐” “애초에 거기 간 게 문제다” 등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었다. 희생자를 “왜 애도해야 하느냐”는 주장은 개인으로서는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희생자가 놀러 가서 생긴 일이기에 공동체 전체가 책임질 필요가 없고 사망자들이 공적 애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논리다.

그 여파로 유가족 또한 이태원에 놀러 갔다 죽은 아이들의 가족이라는 싸늘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이태원에 놀러 가는 자녀를 말리지 못한 가족들은 자식 앞세워 한몫 챙기려 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참사의 책임은 이들을 말리지 않은 가족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그러나 “왜 놀러 갔느냐”고 비난하기보다 “놀다가 죽는 나라가 정상이냐”고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참사 직후 희생자를 향한 노골적인 혐오가 확산된 과정은 유독 참담했다. 대형참사를 접하고 가장 먼저 나와야 할 애도가 지워진 채 비방이 넘쳐나는 현상은 실로 기이하기까지 했다. 희생자 혐오와 비난의 원인을 다층적으로 이해해야 하겠지만 그 기저에는 유흥과 놀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금기가 자리하고 있다. ‘흥청망청 즐기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은 ‘근면’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한국 사회에서 죄악이자 공격의 빌미가 되었다. 성과와 경쟁을 독려해 근대화를 이룬 한국 사회에서 논다는 것은 나태 방탕 일탈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놀이 쾌락 자유 혼종 개방성을 불온하고 위험하게 여겨온 한국의 풍토가 희생자 비방을 부추겼지만, 놀다 죽었다는 사실에 과연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가. 행여 놀러 가 죽었다 하더라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다.

폭탄이 터진 것도, 총알이 난사된 것도, 건물이 무너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9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크러쉬’ 제작진은 대한민국 서울의 거리에서 일어난 이 비극을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모든 면에서 선진적인 한국의 재난 관리 시스템이 어째서 이태원 참사를 예방하지 못했는지 여태 우리가 외면해 온 그날 밤의 사건을 직시하라 주문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1주기를 맞아 우리 사회가 답을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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