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모험’으로 떠난 사나이

고산 등반가 서성호 10주기…부산산악연맹 ‘희망 원정대’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기여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도…순수한 도전정신 기억되길

  • 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  |   입력 : 2023-11-05 18:59:51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가을빛이 완연했던 지난달 중순 금정산 동문 아래 광장에 부산과 서울의 산악인들이 모였다. ‘부산 산악인’ 서성호와 ‘서울 산악인’ 김창호를 추모하고자 모인 이들이었다. 부경대 출신의 서성호는 10년 전인 2013년 서울시립대 출신의 김창호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하산하는 길에 유명을 달리했다. 김창호도 5년 전 네팔 히말라야에서 등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두 사람은 부산산악연맹의 ‘다이내믹 부산 희망 원정대’가 2006년부터 2011년에 걸쳐 히말라야 8000m봉 14좌 완등의 위업을 이루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서성호가 원정대의 첫 번째 8000m인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12개 봉, 김창호가 에베레스트를 제외한 나머지 거봉 등정에 참여했다. 두 사람은 이 과정에서 11개의 8000m 봉을 함께 오른 영혼의 동반자였다.

이날 금정산에서 두 산악인의 사망 10주기와 5주기를 맞아 두 지역 산악인은 ‘고 김창호·서성호 합동 추모 산행’을 열었다. 금정산은 서성호가 대학 입학 후 부경대 산악회에 가입한 뒤 처음 만나 산을 배우고 산과 사랑에 빠진 곳이다. 이들은 금정산 주 능선을 거쳐 서성호가 바위를 배웠던 무명암 아래 추모 동판을 찾아 한 잔 술을 올리고 험난한 산을 함께 오르내리며 산악 활동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함께했던 두 사람을 기렸다.

서성호는 부산을 대표하는 고산 등반가였다. 대학 입학 후 고산 등반에 뛰어든 뒤 빠르게 단연 두각을 드러내며 원정대의 막내로 ‘희망 원정대’에 참여했다. 1998년 대학 입학 후 2004년 처음 해외 고산인 북미 최고봉 데날리 원정에 나서며 실력을 발휘했다. 한국청소년오지탐사대와 푸모리 원정대에 이어 본격적인 고산 등반에 뛰어든 지 2년 만에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밟았다. 이후 한 해를 건너뛰고도 6년 만에 12개의 8000m를 올랐다. 하지만 그는 K2와 브로드피크 2개의 거봉만 남겨두고도 완등에 대한 욕심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김창호와 함께 한 번 올랐던 에베레스트에 다시 오르며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뒤 세상을 떠났다.

영국의 등반가 프랭크 스마이드는 죽음은 흔히 등산가의 곁에 있으며 등산가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의 환상’에서 “자신과 죽음의 무게를 저울의 양쪽에다 달아보려는 욕망이 인간에게는 본능적인데, 그러다가 언젠가는 때가 되면 너무나 오랫동안 참을성 있게 저울을 들고 있던 운명이 죽음 쪽으로 그것을 기울어지게 한다”고 적었다. 일부러 죽음을 찾아가는 등반가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운명을 피해 갈 수 있는 등반가도 없다. 등반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의 문턱을 밟았다가 되돌아서기도 하는데 끝내는 그 문턱을 넘어서고 마는 것이다. 서성호에게 두 번째 오른 에베레스트가 그런 때였다.

10년 전의 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만난 선배 산악인이 서성호에게 “K2와 브로드피크만 오르면 14봉 완등인데 에베레스트 무산소를 택했느냐?”고 묻자 그는 “14봉 완등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어떤 등반을 해야 하나 고민 끝에 세계 최고봉 무산소 등정으로 제 한계를 극복하는 길을 택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는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지만 무사히 돌아오지는 못했다. 안전하고 쉬운 등반을 위해 산소를 사용하는 대신 무산소로 한계를 넘고 8000m 위 ‘신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모험으로의 길을 택한 결과였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무산소로 오른 라인홀드 메스너는 “인공산소를 사용하면서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은 8000m급 산을 6000m급으로 낮추는 행위다”고 일침을 가했다. 에베레스트 초등이 이뤄지기 전에 이미 프랭크 스마이드는 앞의 책 ‘산의 환상’에서 “많은 등산가가 등산은 모험으로 남아 있어야 하므로, 인공산소처럼 인위적인 요소는 아무것도 동원되지 말아야 하고, 만일 그것이 없이는 등반이 불가능할 때는 그 등반은 시도하지 않는 편이 더 좋다고 이야기한다”고 무산소 등반의 가치를 전파했다.

스마이드는 산소를 배제함으로써 등반은 자연스러운 모험으로 남아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의 믿음대로 서성호는 무산소 등정에 목숨을 걸며 자신의 등반을 순수한 모험의 영역에 남겨두었다. 그런데 그가 산악 활동에 뛰어들었던 시기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그가 했던 등반과 같은 순수한 모험과는 멀어진다. 대학 산악부는 명맥을 잇기 어려울 지경이고 순수한 산악활동으로 전위적인 등반도 드물어진다. 꼭 산이 아니더라도 모험의 순수성을 잊어간다. 그가 10년 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모험’을 계속했다면 달라졌을까. 모험과는 멀어지는 사회에서 산악인 서성호의 10주기를 맞아 순수한 등반 활동과 모험을 찾아 떠났던 그가 더 오래, 널리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진규 편집국 부국장 겸 걷고싶은부산 상임이사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아울렛·쇼핑센터 새단장 오픈…부산 큰 채용시장 열린다
  2. 2부산·동부경남 글로컬대 전략수립 막판 스퍼트
  3. 3명지신도시 국제학교 교육구 되나…‘英 명문사립’ 설립 추진
  4. 4올 신규 공무원 과원 발령…곳간 빈 기초단체, 인건비 걱정
  5. 5노인일자리·친환경 두 마리 토끼 잡고, 홀몸노인에 기부도
  6. 6부산 남구 문화재단 추진 실효성 논란…의회 “적자 불가피”
  7. 7국가가 토지 준다해서 황무지 일궜는데…그들은 쫓겨났다
  8. 8가덕신공항 공사 31일 3차 입찰 공고…지역업체 참여율 변동 촉각
  9. 9‘아침이슬’ 김민기 별세…대학로 소극장 시대의 상징 지다
  10. 10시민개방공간에 주차장 만들고 불법 영업하고…市, 98건 적발
  1. 1與 전대 투표율 48.51% 그쳐…새 대표 당 균열 봉합 숙제
  2. 2‘특수교육 진흥 조례’ 부산시의회 상임위 통과
  3. 3진흙탕 싸움에도 전대 컨벤션 효과, 국힘 지지율 42% 껑충…민주 33%
  4. 4김건희 조사에…野 “검찰 출장서비스” 與 “합당한 경호조치”
  5. 5김두관, 친명 겨냥 ‘쓰레기’발언 논란
  6. 6방송4법 처리·尹탄핵 2차 청문…개원 두 달째 여야 정쟁만
  7. 7‘읽씹’‘배신’‘연판장’ ‘폭로’ 與 전대 한 달을 달군 키워드
  8. 8부산 총선참패 등 놓고…민주시당위원장 후보 날선 신경전
  9. 9‘도이치·명품백’ 김건희 여사 12시간 검찰 조사(종합)
  10. 10옛 부산외대 부지개발 사업…시의회, 재심사 거쳐 案 통과
  1. 1아울렛·쇼핑센터 새단장 오픈…부산 큰 채용시장 열린다
  2. 2가덕신공항 공사 31일 3차 입찰 공고…지역업체 참여율 변동 촉각
  3. 3방콕 관광로드쇼 효과…태국인 1만 명 부산관광 온다
  4. 4부산지역 기후변화 리스크 경고등 “항만물류업 최대 1조9000억 손실”
  5. 5‘정비공사 차질’ 신항 용원수로, 자재 납품 놓고 업체간 갈등
  6. 6선박공급 확대로 해운운임 2주째 하락
  7. 7무역협회장 만난 부산 수출기업 “물류·환율 리스크 등 심각”
  8. 8해외여행 갈 때도 저비용항공사…상반기 국적항공사 이용객 추월(종합)
  9. 9자영업자 대출연체율 악화…10명 중 6명은 다중채무자
  10. 10AI 전담반 꾸린 해양수산개발원, 인공지능·해양 협업 가능성 탐구
  1. 1부산·동부경남 글로컬대 전략수립 막판 스퍼트
  2. 2명지신도시 국제학교 교육구 되나…‘英 명문사립’ 설립 추진
  3. 3올 신규 공무원 과원 발령…곳간 빈 기초단체, 인건비 걱정
  4. 4노인일자리·친환경 두 마리 토끼 잡고, 홀몸노인에 기부도
  5. 5부산 남구 문화재단 추진 실효성 논란…의회 “적자 불가피”
  6. 6국가가 토지 준다해서 황무지 일궜는데…그들은 쫓겨났다
  7. 7시민개방공간에 주차장 만들고 불법 영업하고…市, 98건 적발
  8. 8식사비 3만 →5만원…김영란법 고친다
  9. 9“김여사 조사 법원칙 안 지켜져” 이원석 검찰총장 대국민 사과
  10. 10[눈높이 사설] 초등생 5000명 줄어, 부산인구 비상
  1. 1“부산국제장대높이뛰기대회 위상 높이도록 노력”
  2. 2롯데 ‘안방 마님들’ 하나같이 물방망이
  3. 3기절할 만큼 연습하는 노력파…듀엣경기 올림픽 톱10 목표
  4. 4격투기 최두호 UFC서 8년만에 승리
  5. 5아~ 유해란! 16번 홀 통한의 보기
  6. 6오타니 4년 연속 MLB 30호 홈런고지
  7. 7조성환 감독 첫 지휘 아이파크, 3개월 만에 짜릿한 2연승 행진
  8. 86언더파 몰아친 유해란, 2위 도약
  9. 9올림픽 요트 5연속 출전…마르세유서 일낸다
  10. 10소수정예 ‘팀 코리아’ 떴다…선수단 본진 파리 입성
부산시의회 후반기 출범
예산권 보장 지방의회법 제정 본격화, 행정통합·맑은 물 사업 등 지원 총력
부산시의회 후반기 출범
상임위 7곳 중 6곳이 초선 위원장, 구의회 경험 바탕 ‘전문성’ 기대감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산재보험 60년, 이순(耳順)이기를 바란다
노동자 건강을 위한 국제사회의 경향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 많이 두들겨 보아야 할 산복도로라는 돌다리
옛 부산세관 복원, 진정한 새로운 전통이 되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구의 양의 되먹임 현상
에어컨의 대명사에 남긴 이름
국제칼럼 [전체보기]
윤리가 없는 AI가 만들 ‘위험천만한 세상’
길 들이기와 길 들지 않기
기고 [전체보기]
허치슨터미널, 우리나라 1호 기록에 도전하다
AI의 일상화와 창작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에 대한 열렬한 환호와 예우…‘축제의 궁전’ 품격이 달랐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위선’ 일망정 ‘공감’과 ‘배려’를 보고 싶다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공존과 양립으로서의 국악 컬래버
디아스포라의 노래 영천아리랑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좋은 사람 되기
실력·인성 갖춘 축구 ‘레전드’ 정용환이 그립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육상 김’
로또 조작?
메디칼럼 [전체보기]
진료실에서 만나는 이주노동자들
미래 한국 의료는 어디로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가마보코에 매료된 조선인
대만과 밀크피시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腦力) 키우기 1원칙 ‘운동’
뇌력(腦力)을 키우는 다섯 가지 비결
사설 [전체보기]
‘김호중 따라하기’ 엄벌로 ‘음주운전 무관용’ 확립을
바이든 후보 사퇴…미국 대선판 격변 예의주시하자
세상읽기 [전체보기]
7월은 산업안전보건의 달?
산복도로 조망권, 적극적인 미래전략 필요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건강주치의 제도가 의료 개혁의 핵심인 이유
의대 입학정원 갈등의 올바른 해법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심해 유전 140억 배럴, 영일만과 산유국의 꿈
기회의 바다, 우리네 함장은 어디로 키를 잡을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푸틴의 행보와 러시아 경제
경제문제가 풀려야 인구문제가 풀린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수영에서 ‘역사도시’ 부산을 보다
인문 정신은 언제나 곡선으로 간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나만의 생각’을 길러주려면
한국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IB교육학회 창립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건강과 재물을 얻는 명당아파트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당원 중심주의’의 함정
비례대표 제도는 죄가 없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호주 와인과 보랏빛 수영장
오페라 와인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로크 음악
낭만오페라의 종언! 푸치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김정헌의 ‘밥이 하늘이다’
‘꽃피는 부산항’에서
CEO 칼럼 [전체보기]
변화하는 모터쇼와 부산모빌리티쇼의 도전
위기가 기회로!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