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필자는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2030 부산생활문화축제’에서 특별공연을 했다. 집 주변 문화공간에서 4개월 동안 다양한 악기를 배우며 생활예술로서 일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출연진만 170명에 이르는, 국악기 양악기를 망라한 대규모 축제였다. 요즘은 전국적으로 교육현장이나 문화예술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1인 1악기를 배워 일상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필자는 수년 전 피아노의 바이엘 같은 피리 교본을 출간했다. 국악기를 배우는 것은 전공자에 국한되어 있어 취미나 교양을 위한 교본은 생소할 때였으나 지금은 다양한 종류의 국악 교본이 출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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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윤 박사가 펴낸 피리 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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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음악교육에 중점을 두는 나라 중 하나다. 특히 필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1980년대에는 경제성장의 영향으로 많은 부모가 자녀의 교육에 대한 높은 열의를 보였다. 특히 아이가 어렸을 때 음악을 배우면 집중력 창의성 감수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 중 하나로 인식했다. 피아노 교육 또한 큰 관심을 받아 자녀를 학원이나 개인 교습소에 보내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국악을 전공한 필자 역시 어린시절 처음 접한 악기가 피아노였으니 말이다. 지금도 유치원 시기의 어린 아이들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 하나쯤은 취미로 배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악기교육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 교육은 이미 100년 전에 존재했고 심지어 성행했다면 믿어지는가. 대한제국 시절 고종황제는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독일인 에케르트를 초빙해 서양식 군악대를 창설했다. 이때부터 서양악기가 본격적으로 수입되면서 일제강점기 악기점이 경성에만 20여 개가 있었고, 전국으로 520여 개가 있었다. 이후 외국인 선교사에 의한 학교 설립과 서구식 음악교육, 외국 유학을 다녀온 음악인을 통해 서구화되고 근대화된 다양한 활동이 이뤄졌다.
서양음악 교육에 대한 담론은 당시 기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26년 이화학교 음대교수 였던 윤성덕은 1월 1일자 조선일보에 장차 음악가가 될 어린이를 위해 모차르트와 그의 부모를 예로 들어 우리나라에 ‘참음악가’가 없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우지 못한 까닭이라고 하며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홍난파는 1931년 ‘동광’ 3월호 잡지에서 악기는 어린이의 청관을 길러주고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게 하는 도구로서 장려돼야 함을 주장하며 현악기 교육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당시 천재 음악가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기사화되고 서양 음악교육의 열풍이 이미 1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20세기 초 기층음악의 문화 위에 서양음악이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두 가지의 음악문화가 공존했다. 일제강점기 민족문화말살 정책이 더해지면서 전통음악은 특수한 계층이나 집단에 의해 연주되고 전승되는 형태로 명맥이 이어져 왔다. 그사이 서양식 음악교육의 확산은 문화적이고 교육적으로 인식되어 교양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됐다. 이후 미증유의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이 말한 ‘핵개인의 시대’처럼 지금은 우리 삶의 방식을 내가 숙고하고 선택하는 핵개인의 문화와 다양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동시에 자리잡고 있고 전통음악에 대한 인식이 미디어를 새롭게 재조명하면서 국악기를 배우려는 수요도 늘고 있다. 앞으로의 100년은 그동안 가려졌던 우리 악기의 진면목이 부각되어 미래의 엘리트가 가져야 할 교양의 필수 덕목의 하나로 여겨질 날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