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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순국선열의 날

김해원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자

  • 김해원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자
  •  |   입력 : 2023-11-19 19:12:14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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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은 순국선열의 날이었다. 따라 죽을 ‘순(殉)’과 나라 ‘국(國)’, 그러니까 나라를 위해 죽음으로 헌신한 선조들의 공적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정신을 계승하려는 국가기념일이었다. 사랑을 좇다 죽는 ‘순애’도, 직무를 수행하다 죽는 ‘순직’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목숨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국은 특별히 더 엄청나고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왜냐면 목숨을 바친 대상인 국가는 베버(M. Weber)의 통찰처럼, 물리적 강제력 즉 폭력을 독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적 공간인 가정에서조차 폭력은 오직 국가만이 행사할 수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온갖 폭력이 난무하던 약육강식 상황을 종식하고 최소평화라도 구축하고자 한 근대의 정신이었으며 현대국가의 기초가 되었다. 오늘날 선진국일수록 국가의 폭력독점은 뚜렷하다. 자녀 훈육을 위해 회초리를 들어도 경찰이 달려와 부모를 제압하는 나라가 미합중국 아니던가.

그렇다면 폭력을 전유(專有)한 국가에 대한 사랑(애국)을 넘어서서 목숨까지도 선뜻 바치는 순국을 공적 의례를 통해 집단 기억으로 재생산해 온 현실 앞에, 우리의 평범함은 초라해지고 자유는 위축되는 것 아닌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현실 폭력을 독점한 국가의 권력기관이 앞장서 강조하는 애국이나 순국은, 약자가 권력자에게 과의존하면서 착취를 수용하는 마조히즘적 심성 구조에서 쉽게 깃들고 수긍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순국에 담긴 국가주의적 망령으로부터 자유롭기를 희망하며 불편해하거나 선열의 거룩함에 우리의 초라함을 부끄러워할지언정, 해마다 맞이하게 될 11월 17일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순국선열의 날은 우리의 순국을 고취하려는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권을 보유한 국가의 최고 존엄으로서,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국가에 살고자 대한민국에 결집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애국과 순국을 요구받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애국과 순국은 우리가 아니라, 국가를 위한 존재인 국가기관이 이행해야 할 의무다. 특히 대통령·행정각부의 장·법관·검사 등과 같이 막중한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의 담당자는, 그 누구보다 솔선수범하여 평상시 애국하고 유사시 순국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한 후, 국가의 의무이행을 위해 국회·정부·법원·헌법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설치하고 이를 구성하는 핵심 권력기관을 탄핵대상자로 적시한 헌법의 정신이기도 하다.


오히려 우리는 애국과 순국을 강조할 뿐,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을 탐하거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은 자에게 막중한 권력을 쉽게 위임한 것 아닌지를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각종 친족 비리(허위 경력으로 이익을 탐했던 자신의 과거를 ‘돋보이려 한 욕심’으로 치부했던 배우자, ‘죄질이 매우 나쁘고 도주 우려’가 있어 법정 구속된 후 징역형을 확정받은 장모,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으로 기소된 처남)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이를 감찰코자 법이 설치한 특별감찰관을 현재까지 임명치 않고 있는 자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재산 신고 누락과 조세 탈루 의혹이 가득한) 탐관오리 같은 자를 대법원장으로, (비상식적인 재산 증식과 각종 혐의에 모르쇠로 일관한) 후안무치한 자를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발탁하려 했으며, 현직 검사로서 검찰에 협조하기는커녕 자신의 방어권을 내세워 비밀번호를 감추고 수사를 우롱했던 자를 검찰 사무를 관장하는 법무부 장관으로, 건국과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의 흉상을 사관학교에서 축출하겠다는 자를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시켜 일신의 영달을 맛보게 했다. 반면에 해병대 병사 순직 사건을 수사하여 사단장의 범죄혐의를 포착 및 이첩한 대령은 항명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학생을 정성껏 살피던 교사는 모든 책임을 홀로 떠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쩌면 우리는 국가가 아니라 대통령직을 사랑하고 정권 유지에 목숨을 건 탐욕스럽고 무책임하며 무능력한 자들을 위해, 우리의 사랑과 생명을 축내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적어도 애국애족한 순국선열의 정신을 모욕하는 것이 출세의 길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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