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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11월은 나를 바로 세우는 달

문형 소설가

  • 문형 소설가
  •  |   입력 : 2023-11-21 18:50:16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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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주에 내포 문화 숲길을 4박 5일 동안 나 홀로 백패킹 다녀왔다. 내포 문화 숲길은 예산과 서산, 당진 일대에 조성해 놓은 국가 지정 숲길이다. 시점은 덕산도립공원 예산 안내소부터이고 구간마다의 길 이름엔 특색이 담겼다. 첫 코스부터 5코스까지 걸었는데 명칭은 원효 깨달음 길이다.

전체 코스에는 천주교 순례길도 있고 백제 부흥군 길, 역사 인물 길, 내포 동학길도 포함돼 있다. 그 길들은 이름에서 함의하는 바와 같이 각각 종교적 또는 역사적 현장을 지나도록 만들어 놓았다.

내가 걸은 원효 깨달음 길은 그 의미답게 원효암 터를 지나 유명한 수덕사와 개심사를 거친다. 그뿐이랴. 일락사 천장암 등 현존하는 절이나 암자는 물론 의상암 터, 백암사지, 보원사지와 같이 흔적만 남은 곳도 많다.

나는 불교 유적 답사 또는 종교적 관점에서 순례하려고 그곳을 간 게 아니었다. 시간 날 때마다 전국 둘레길 정보를 검색해 놓았다가, 홀로 걷고 싶을 때 훌쩍 떠나는 식이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 무턱대고 백패킹을 떠나 닷새 동안 걸어 다녔다. 한데 길 이름도 그렇거니와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지라, 과거의 흔적들을 지나면서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흔이 넘은 이후, 매년 11월이 되면 나는 길을 나선다. 그렇게 하는 데는 근원이 있다. 정확히 2002년 11월 15일, 그날은 내가 술 담배를 끊은 날이다. 담배를 피웠다가 끊는 등 반복하다가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날부로 단방에 끊었다. 그것도 장산을 오르는 도중, 한 개비 남아있던 담배마저 분질러 버리고. 흡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담배 구하기 어려운 처지에서 마지막 한 개비만 남았을 때의 불안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마지막 개비를 되레 분질러 버리고 등산을 하였으니, 담배 피우고 싶은 마음 오죽했겠는가.

산행을 마치고, 이참에 아예 금연하기로 작정했다. 흡연 욕구를 잊기 위해 들로 산으로 마구 돌아다니는가 하면, 내친김에 연말연시까지 모임이나 술좌석에 당분간은 어울리지도 않았다. 사실이지 그 이전까지는 한 해의 남은 날들을 얼마나 흥청망청 보냈는가 너나없이. 송년이란 말에서 보듯 올해의 끝자락은 쓸모없는 것처럼 도나캐나 망탕 보내버리지 않았는가. 생뚱맞게도 새해부턴 잘해보겠다고 자위하면서.

그래 놓곤 해가 바뀌면 뭔가 해본답시고 신년 계획을 세운다며 호들갑을 떤다. 하나 11, 12월은 떨거지 세월인 마냥 축내느라 기를 써놓고, 얼렁뚱땅 새해 계획을 잡아본들 또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 얼마나 그와 같은 짓을 매년 반복적으로 해왔는가. 그런 악습을 끊기 위해 금연한 날 이후로, 11월만 되면 억지로라도 산행하러, 또는 둘레길을 걸으러 나섰다. 그날의 결단을 행동으로 재차 길들이기 위해.

20년이 넘은 지금에서 되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바로 금연과 그로 말미암은 걷기 여행이다. 이 과정을 지켜본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나를 보고 제2의 탄생을 했다고들 한다. 나 역시 그때의 계기를 생일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겨 의례(routine)로 정착시키려고 어지간히 노력했다. 나름 기념일로 만들어 의식을 행하자니 실은 금연을 한 그날보다, 흡연 욕구를 이겨내기 위해 실행한 일련의 습관들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11월에 의미 있는 이름을 붙이는 게 더 옳지 않을까. 11월을 인디언 아라파오족이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호피족이 짐승들 속 털 나는 달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불교 수도승들은 매년 음력 10월 보름부터 동안거에 들어가는데, 양력으론 대개 11월 중순에 걸쳐진다. 마침 이때 백패킹을 다녀오면서 11월에 붙일 만한 이름을 지어냈다. 입정(立正). 불교계에서는 고요함에 들어가는 선정의 전 단계를 입정(入定)이라고 한다. 내 아무리 원효 깨달음 길을 한 번 다녀왔기로서니 함부로 선정을 말할 바는 못 되고, 이를 나에게 맞춤 의미로 고쳐 지었다고나 할까. 그간 걷기로 몸 챙기고 좋은 습관 배도록 하였으니만큼 11월은 나를 바로 세우는 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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