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내년 4월 총선에 적용될 선거구 획정 초안을 지난 5일 국회에 통보했다. 예비후보 등록일(12일)을 불과 6일 남긴 시점이다. 선수가 뛸 운동장이 늦게 결정될수록 현역 의원이 유리하다. 정치 신인들은 ‘시험 범위’도 모른 채 뛸 판이다. 명백한 참정권 침해다. 선거구가 확정된 것도 아니다. 여야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 재획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이 이심전심으로 지연 작전을 쓰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까지 든다. 비례대표 개편 논의도 교착상태다. 정치권이 내년 예산안과 특별검사 도입을 놓고 대치 중이어서 선거 룰이 언제 도출될지 기약없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선거일 1년 전’까지 선거구를 확정해야 한다. 올해 4월 10일까지 끝냈어야 했는데 8개월 가까이 ‘위법’을 방치했다. 기득권 지키기이자 ‘암묵적 담합’이라고 비판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책임한 국회 탓에 선거구획정위는 현행 국회의원 정수(300명)와 지역구 253석 유지를 전제로 선거구를 획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인구 증감에 따라 6개 선거구를 통합하고 6개 선거구를 분할한 것이다. 부산은 북강서 갑·을이 북구 갑·을과 강서구로 나뉘는 반면 남구 갑·을은 남구로 통합돼 전체 선거구(18개) 수는 유지된다. 현재로선 획정안에 여야 이견이 커 진통이 예상된다. 2020년 21대 총선에선 선거일을 한 달 남짓 남기고서 획정안이 처리됐다.
선거구 획정이 그나마 첫 발을 뗀 반면 비례대표 개편은 기약이 없다. 특히 2020년 ‘위성정당’을 태동시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는 벽에 부딪혔다. 국민의힘이 2016년까지 시행된 병립형(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 배분) 회귀를 주장하자 민주당도 이해득실을 따지기 시작했다. 병립형은 ‘승자 독식구조’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다. 비례성 강화와 다당제 구현을 약속했던 야당이 받아선 안되는 카드다. 오히려 준연동형을 유지하면서 위성정당 방지책을 마련하는 게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 그런데도 야당은 병립형 회귀에 눈길을 준다. 이재명 대표가 유튜브에서 “이상적 주장으로 (선거를) 지면 무슨 소용 있겠나”며 공약 파기를 시사하면서다. 유권자와 약속을 깨야 이긴다는 발상이 놀랍다.
국회가 국민을 무서워한다면 “선거구 획정 기준을 명확히 법제화하고 책임성도 강화하라”는 획정위의 권고를 무시해선 안 된다. 현역들은 출판기념회나 의정설명회를 통해 선거운동을 하면서 신인의 앞길은 막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게 순리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력 있는 인재의 여의도 입성은 꿈에 불과하다. 양당이 약속이나 한 듯 비례제 논의를 늦추는 것도 실상은 제3지대 창당을 방해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이있다. 원칙 없이 당리당략만 넘치니 선거철만 되면 신당 창당붐이 인다.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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