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기웃거리고 있다. 이제 곧 자기 세상이라는 것을 서둘러 확인하려는 것처럼. 짧은 겨울 해가 한 뼘 남아 있는 오후의 골목이 어둑신하다. 조무래기 어둠들이 악소배처럼 몰려다닌다. 지난밤 난데없는 우박에 떨어진 은행잎은 빛 절반 어둠 절반이다. 나무에서 땅으로 자리를 옮긴 빛바랜 빛이 젖은 바닥에 달라붙는다. 바스라진 은행잎에서 떨어져나온 조각난 빛들이 바닥을 굴러다닌다. 남은 볕에 무엇을 말려야 하나. 시간 갈무리가 벅찬 혼잣말인형이 중얼거린다.
밤의 절대적 지분은 시간 속 낮의 반대쪽에 있다. 밤의 대륙은 시간의 지분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낮의 공간에 자기 지분을 주장한다. 캄캄하면 밤이다. 어두우면 밤이다. 불 꺼진 지하실과 동굴은 낮에도 밤의 식민지다. 세상이 환할 때 마음이 캄캄한 밤이어서 난감할 때가 있다. 꽃피는 봄날, 초록의 생명력이 무성한 여름날, 문득 우울이 닥친다. 밤이 심장에게 자기 지분을 요구할 때다. 혼잣말인형이 자작나무 껍질을 불로 지져 만든 말발굽 부적을 어루만진다. 시베리아의 긴긴 밤이 기른 자작나무의 흰 수피는 긴 겨울밤을 받아 안아 부적이 되고, 천마도가 되고, 너와지붕이 되었으리라. 부름켜에서 물관으로 체관으로 혼잣말이 깊어갔으리라.
밤을 적으로만 여기는 단선적 알레고리는 세계를 빈약하게 만든다. 밤의 카오스에서 우주의 코스모스가 태어난다. 밤의 어둠은 새벽을 낳고 낮을 낳는다. 밤과 낮은 시간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는 총량으로 지구의 삶을 구성한다. 밤은 영원한 밤이 아니고 낮은 영원한 낮이 아니다. 어딘가 밤일 때 어딘가 낮이다. 나의 밤의 어둠은 너의 낮의 빛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에는 밤과 낮이 동시에 존재한다. 대낮의 환한 하늘과 창문에 불 켜진 캄캄한 집이 한 그림 안에 있다. 혼잣말인형의 마음이 그림 속으로 전입신고를 한다.
어떤 밤은 안개 속을 어슴프레 흐르다가 제대로 어두워 보지도 못한 채 새벽빛에 무너진다. 옛 시인은 밤의 허리를 잘라 에로스의 시를 쓴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는 긴 밤을 더 길게 만든다. 아무짝에도 쓸데없으니 잘라두리라, 부재하는 연인의 귀환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이 허리 자른 밤을 갈무리한다. 때가 오면 아무리 길어도 밤이 짧을 터이니, 그 짧은 밤 구비구비 이어가리니. 에로스의 상상은 밤의 세계를 풍요롭게 한다. 빛 한 점 들어올 틈 없이 꼭꼭 여민 암막 커튼으로 밤낮을 지운 날이 길다. 혼잣말인형이 돌아눕는다.
밤이 온전한 어둠을 잃은 지 오래다. 지구 행성은 태양을 만물을 가동하는 엔진으로 삼는 것에 더이상 만족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공의 빛을 발명한 이래, 도시에서 별이 사라졌다. 영혼들의 안식처가 사라졌다. 밤의 세계는 신비를 잃었다. 기도와 잠과 꿈과 상상과 생산과 치유에 바쳐지던 온전한 밤은 이제 없다. 방전된 몸과 영혼을 재충전하는 완전한 휴식이 사라졌다. 노동은 누군가에게 밤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이십사 시간 끝나지 않는 밤의 노동이 누군가의 휴식을 대체하는 불공평이 발명되었다. 누군가의 편리는 누군가의 불편이 된다. 인공의 빛이 인공의 어둠을 키운다.
인공의 빛은 성장촉진제다. 욕망의 정수리를 억지로 뽑아올린다. 웃자란 욕망에서 가상의 세계가 자란다. 오락거리로 전락한 가상 고독이 범람한다. 밤의 관능은 게임 속 가상 관능에게 자리를 내준다. 가상의 연결망이 실제 연결망을 밀어낸다. 과잉 연결이 과잉 각성을 요구한다. 영혼은 날아가고, 인공의 빛의 서자, 키오스크에 의해 인간이 추방된다. 인간이 추방된 자리는 인간인 듯 인간 아닌 인간 같은 사이보그로 채워지는 중이다.
빛은 바야흐로 몰락 중이다. 가장 긴 밤이 오고 있다. 가장 짧은 낮을 경유해서, 가장 긴 밤에 닿으리라. 빛은 바닥의 바닥을 치리라. 몰락 없이 비상 있으랴. 심연의 어둠을 디딤돌 삼아 방향을 바꾸리라. 스마트폰을 끄고, 책을 덮고, 노트북을 닫고,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이미지를 지우고, 온전히 어둠을 충전하리라. 어둠은 빛으로 다시 태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