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별명은 ‘여자 무솔리니’다. 극우 정책과 ‘이민’ 반대 공약을 앞세워 집권했다. “아프리카·중동 이민자의 유럽행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식이다. 국경 장벽을 세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닮았다. 그렇다고 일방통행식 외교만 하는 건 아니다. 파시즘에 경도될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우크라이나 지원과 친서방 노선을 견지해 동맹국 신뢰를 샀다. 여론도 호의적이다. 집권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은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린다. 멜로니는 소통에도 익숙하다. 지난 4일 열린 송년 기자회견은 3시간 넘게 진행됐다. 40번째 일문일답을 마친 멜로니는 “나는 죽어가고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다. 그가 돌아오자 질문 3개가 더 이어졌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멜로니와 달리 민감한 질문을 피해 화제가 됐다. 신년 기자회견 말미에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그는 새해 첫날 발생한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강진을 계기로 ‘원자력 발전 정책을 재검토해야 하지 않느냐’고 소리쳤다. 기시다는 아무 반응 없이 자리를 떴다. “경청하는 힘은 어디로 갔느냐”고 항의해봤자 소용없었다. 일본 포털사이트에는 “동일본대지진에 맞먹는 강진으로 불안감이 큰 데 왜 질문을 무시하나” “(노토반도의) 시카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성물질 오염수가 넘쳤다는데 사실인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일본 민영 TBS 계열 JNN이 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27.1%까지 떨어졌다.
기시다의 ‘회피’는 윤석열 대통령에 비하면 애교에 가깝다. 집권 3년차를 맞은 윤 대통령은 올해도 신년 회견을 생략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제외하면 한 차례도 공식 회견을 하지 않았다. 도어스테핑(출근길 회견) 중단에 이어 취임 1주년 회견도 건너뛰었다.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한 일방통행식 소통이 전부였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 잘못은 솔직하게 고백하겠다”던 약속은 ‘빈 말’이 된지 오래다. 보수언론조차 “직선제로 선출된 대통령 가운데 회견 빈도가 가장 낮다” “들려주고 싶은 것만 알리는 반쪽 소통”이라고 비판해도 바뀐 게 없다.
민심이 윤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뭘까. 여론조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법 도입에 60% 이상이 찬성하는데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던 윤 대통령이 지금와서 반대하는 이유가 궁금한 건 당연하다. 여당 주장대로 “총선용 악법”이라면 최소한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은 해명하는 게 도리다. ‘김건희 리스크’ 해소 대책(국민의힘 김경률 비상대책위원)도 내놔야 한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방시대’를 강조한 윤 대통령이 수도권 일극화를 부채질 할 ‘김포 서울편입’ 추진에는 왜 침묵할까. 민생 살리기와 ‘이념 카르텔 타파’는 상관관계가 있나.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정부가 툭하면 세금을 깎아줘 포퓰리즘 논란을 초래한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한다면서 식품접객업소의 종이컵·종이빨대 사용 금지 조치를 철회한 의도는 뭘까.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는 2022년 11월 시행됐다. 1년 계도기간에 과태료 부과 한 번 않다가 폐기했으니 “소상공인 표를 겨냥한 선심성 정책”이란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30%대에 갇혔다. 연금·노동·교육개혁은 답보상태다. 야당이 발목 잡는다면 국민을 설득해서라도 동력을 살려야 한다. 국론이 모이면 반대만 할 수 없다. 현실은 정반대다. 대통령은 소통할 의사가 없는 눈치다. 야당과의 끝없는 대치는 국민에게 피로감만 안긴다. 영수회담조차 한 번 열지 않았다. 그래 놓고 “야당 탓”하고 “운동권 청산”만 외치니 협치가 될 리 없다. 최근 대통령비서실이 개편됐는데도 국정 방향은 달라질 기미가 없다. 여전히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은 없다.
미국 4선 대통령 루즈벨트는 대공황으로 실의에 빠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토론 형식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지금까지도 널리 활용되는 ‘노변정담’이다. 처칠 영국 수상은 명연설로 전쟁 늪에 빠진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 넣었다. 우리도 헤쳐나가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출산율은 지역소멸을 걱정해야 할 만큼 떨어졌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무역적자까지 쌓였다. 남북관계는 긴장의 연속이다. 한중 관계는 경색됐다. 모두 대통령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의제다. 소통은 선택이 아니라 책무다. 국민이 ‘기자회견 언제 하느냐’고 물어선 안 된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민생 현장 속으로 들어가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5부 요인이 참석한 신년인사회에선 “국민만 바라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 첫 걸음이 언론과의 소통이다. 멜로니 총리처럼 3시간짜리 기자회견을 보고 싶다.
이노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