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이라면 ‘아메카지’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 것이다. 반대로 패션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아메카지’는 정말 낯선 단어일 수 있다.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 실체를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인이 일상적으로 입는 캐주얼 의류 즉 ‘아메리칸 캐주얼(American casual)’을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아메리카진 카쥬아루’가 된다. 이걸 줄여서 ‘아메카쥬’라고 부르던 것이 ‘아메카지’로 정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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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온전히 한국음식이 된 ‘부대찌개’. |
아메카지의 출발은 태평양전쟁 직후로 본다. 일본은 패전과 함께 연합군의 점령하에 놓이게 되고, 일본 전역에는 미군 부대가 주둔한다. 이때부터 일본의 많은 문화가 바뀐다. 메이지유신 전후로 ‘탈아입구’를 외치며 철저히 유럽처럼 되고 싶었던 일본은 태평양전쟁 직후에는 철저히 미국처럼 되려고 노력했다.
아메카지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미군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에서 출발해 미군의 스타일을 자기 방식으로 창조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미국인조차 잃어버린 과거의 것을 복각해 미국으로 역수출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때 ‘복각’이란 단순히 과거의 스타일을 비슷하게 복원하는 개념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이 과거에 사용하던 방직기를 구해 천을 짜는 방식까지 똑같이 재현하고 단추나 지퍼 같은 사소한 소품까지도 옛 것 그대로 제작하는 수준이다. 일본에는 이러한 복각 전문 브랜드가 따로 있고 이러한 브랜드는 이제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의 패셔니스타 사이에서도 필수 아이템으로, 없어서 못사는 물건이 되었다.
이런 아메카지의 유행을 보며 나는 종종 부대찌개를 떠올린다. 우리는 미군의 군복을 염색해 작업복을 만들고, 미국의 모포를 재단해 ‘몸빼’를 만들었지만 아메카지 같은 스타일을 창조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국이 먹던 햄과 소시지를 활용해 부대찌개라는 걸출한 음식을 만들었다. 과거에 외국인들 사이에서 ‘아미 스튜(Army stew)’라 불리던 부대찌개는 이제 당당하게 ‘부대찌개’라 불리며 한국의 전통음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 부대찌개 레토르트 제품과 부대찌개라면 등은 서구에서 인기 K-푸드로 소비되고 있다.
물론 일본에도 미군 주둔의 영향으로 탄생한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군 장교 숙소로 사용되었던 요코하마 뉴그랜드호텔에서 탄생한 ‘나폴리탄’ 스파게티, 미국 해군이 주둔했던 사세보항에서 탄생한 ‘사세보버거’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음식들은 아메카지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방식대로 미국을 해석했을 뿐 자국의 전통문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찌개라는 전통음식에 햄과 소시지라는 미군의 식재료를 활용한 부대찌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음식이다.
이를 두고 일본의 유명한 사상가이자 평론가인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하나도 안 받아들인다”는 탁월한 통찰을 남겼다. 일본은 자신들의 전통음식과 외래음식을 분리해서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반면, 우리는 전통음식 속에 외래음식의 요소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아메카지와 부대찌개는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태도를 아주 극단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