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부산의 성정(性情)은 무엇일까?

윤정현 가톨릭부산교구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원장

  • 윤정현 가톨릭부산교구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원장
  •  |   입력 : 2024-01-18 19:21:31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부산은 한 마디로 그 정체성을 규정하기에는 매우 복합적이고도 입체적인 도시다. 열강에 의한 침탈과 동족 간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아픈 역사의 나이테가 아직 도시 곳곳에 내재해 있다.

우선 부산은 ‘열림’의 도시이다. 1407년 부산포를 개항하여 왜관이 설치된 이후 열강에 의해 1876년 부산항을 개항했다. 시대적 흐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힘에 굴복해 항구를 열면서 일본과 청나라, 그리고 다른 열강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무기력한 ‘열림’은 일본 제국주의의 플랫폼이 됐다. 전리품의 운반을 위해, 또 일제의 대륙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경부선과 경의선 철로로 한반도를 관통하는 기점이 되었다. 이 ‘열림’의 도시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미 1945년 부산의 인구수는 3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부산은 ‘피란’의 도시다. 인구가 밀집되는 도시의 의미로 부산을 만든 것은 6·25 전쟁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전쟁을 피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 무작정 정착한 곳이 이곳 부산이다. 이미 전쟁 후에는 인구가 100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를 이루었다. 피란민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뒷산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아 움막이나 판자촌을 건설하고, 그 산 가운데에 소방차 등 긴급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낸 것이 산복도로(山腹道路)다.

다른 지역에도 이런 산복도로는 있지만, 부산의 산복도로에는 이 도시만의 무언가가 녹아 있다. 산복도로는 부산을 기록한 살아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다. ‘부산의 진짜 얼굴을 보려면 해운대나 광안리가 아니라 산복도로를 가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곳이 부산의 역사를 잉태한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열림’과 ‘피란’의 도시가 지닌 성정은 ‘넉넉함’이다.

무력하게 열강의 문물을 받아들인 이 도시는 신식 문물에 비해 화려하지 않아도 넉넉했다. 또 전쟁통에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온 피란민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인 이 도시는 가진 것이 없어도 넉넉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사이에서 피란민이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며, 또 공존하며 살아간 높은 시민의식을 품은 도시다. 재난과도 같은 전후의 처지를 성실과 근면으로 이겨내어 ‘꿈 많은 사람들이 정답게 사는’ 넉넉한 도시다.

넉넉한 도시는 문화로 꽃을 피운다. 부산의 소울 푸드라 불리는 밀면은 냉면에 비해 양이 푸짐하다. 돼지국밥은 또 어떠한가? ‘새촙지’ 않고 넉넉하다. 원래의 레시피나 재료를 따라가지 못하는 비루함이 이 음식들을 태동했지만, 넉넉함이라는 손맛으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부산 식도락의 시그니처가 되도록 관통한 정신은 넉넉함이다.

아울러 성실과 근면으로 열심히 일하고 또 넉넉히 먹어 배부르면 놀 때에는 진심으로 노는 곳이 이곳 부산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사직야구장을 보라. 놀기에 진심이다. 게다가 부산이 낳은 아티스트들은 이미 자기 동네에서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소박하고도 넉넉한 문화에서 위인들이 나왔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부산 복음병원의 장기려 박사, 고아와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 ‘소년의 집’의 소 알로이시오 신부. 수단이라는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선한 일을 한 송도 태생의 이태석 신부 등은 부산의 넉넉함을 더해 주거나 그 넉넉함을 온세상에 전해 준 위인들이다. 더구나 우리 지역에는 자기가 한 선행마저 선한 일인지 모르고 묵묵히 살아가는 이름 없는 위인이 무수히 많다. 이런 우리들이 넉넉한 도시에서 살아가고 넉넉한 도시를 만든다.

부산 사람이 다른 도시에 가면 느끼는 갑갑함, 이상함은 우리가 수도권이 아닌 변두리에 살아서가 아니다. 우리의 ‘부산 DNA’에 스며든 이 도시의 넉넉함을 다른 도시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힘 없고 비참한 역사가 이 도시를 잉태했지만, 우리는 이 도시에서 넉넉함이라는 ‘새로운 브랜드’(Brand New)를 길어 올렸다. 진정 우리 도시가 기획하고 개발해 매진해야 할 가치는 ‘다이나믹’ 하다거나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랍답게 살도록 키우고 껴안는 넉넉함이라는 도시의 성정이어야 한다.

요즈음의 부산은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가장 빨리 늙어가는 도시, 일 자리가 없는 도시, 홍콩의 야경이 이 도시의 미래라고 예측되지만 미래가 없는 도시…. 전국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높은 실업률, 청년층의 타지역 유출 등 모든 문제가 최근 들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려스럽다.

색을 잃어버리고 있는 이 도시가 원래의 빛깔을 되찾으려면 열려 있어야 하고 넉넉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부산은 초고령 사회이기에 노인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또 기반이 없는 젊은이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기다려 줘야 한다. 넉넉함이 도시의 새로운 브랜드가 되도록 시정과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3. 3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4. 4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5. 5“끝내 알 수 없었던 어머니 마음…그 알 수 없음이 인간이죠”
  6. 6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7. 7“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8. 8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9. 9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10. 10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1. 1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2. 2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3. 3李 “집값 놀라울 정도로 하락…통계 제대로 알려야”
  4. 4정계 “지역언론 독립·공공성 훼손없게 계속 관심을”
  5. 5시의회 상임위 제한 폐지 논란일자 결국 심사 보류
  6. 6국힘 신임 부산행복연구원장에 오경은 전 구의원
  7. 7“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8. 8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9. 9국힘 “가덕 건설 의지 없는 정부…공사비 증액 확약해야”
  10. 10정치권 “능인선원 경영능력 불합격…국제신문 회생 동의를”
  1. 1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2. 2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3. 3“부산 해양수도·북극항로 육성, 선원 역할 중요”
  4. 4[증시와이드] 불확실성 커진 증시…우량주 중심 냉정한 대응을
  5. 5한진칼 주식 더 사는 조원태…호반과 지분경쟁 2R
  6. 62050년 중간저장시설·2060년 영구시설…정부, 방폐물 관리 3차 계획안 여론 수렴
  7. 7‘반도체 소부장’ 원익 공채에 1만2000명 몰려
  8. 8석유류·공업제품값 ‘고공 행진’ 지속…부산 10월 물가상승 4개월만에 최고(종합)
  9. 9한양증권도 털렸다…고객·임직원 정보 일부 유출
  10. 10주가지수- 2026년 11월 3일
  1. 1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2. 2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3. 3“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4. 4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5. 5해군 3600t급 디젤잠수함 ‘서희함’ 진수
  6. 6에코델타에 유치원·초·고교 추가 신설
  7. 7141개 시민단체도 노동계도 ‘국제신문 회생’ 인가 촉구
  8. 8역삼동 연쇄방화 77세 이명수(종합)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4일
  10. 10면세유 23억 원어치 빼돌린 유통업자 집유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3. 3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4. 4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5. 5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6. 6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7. 7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8. 8[뭐라노] 롯데가 스마트 야구를?
  9. 9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10. 10동의과학대학교,‘제1회 부산지역 전문대학 유학생 축구대회’ 준우승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등골 프로텍터
바이낸스 턴 북한 해커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제신문 정상화에 여야 한뜻…능인선원 결단하라
대통령 순방 정보 유출…국가 보안체계 전면 점검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일상으로의 초대
SNS라는 광장,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있는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