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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약을 30알이나 먹어요

한일용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 한일용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  |   입력 : 2024-01-21 19:51:2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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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가 먹는 약이 30개가 넘어요. 먹기가 힘든데 심장약을 더 줄일 수 있을까요?”

심장수술을 받은 환자인데 여러 기저질환이 동반되어 있지만 복용하는 알약 개수가 너무 많아 의아했다. 확인해보니 심장혈관 확장제, 항응고제, 혈압약, 당뇨약, 고지혈증약 등에 최근 관절염약으로 5알을 추가로 더 처방 받았다. 하지만 모두 더해도 10~15 종류인데 나머지 약들은 무엇일까? 환자가 주섬주섬 가방에서 꺼내는 것은 여러 종류의 건강기능식품이었다. 기억이 깜박깜박해서 뇌기능에 좋다고 아들이 외국에서 보내준 것, 손발이 차서 말초혈액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것, 무릎 연골에 좋은 것들, 간과 눈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와 비타민…. 모두 비슷한 알약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서 고령의 환자는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모두 ‘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성분이 들어 있는 알약 형태의 제품을 무조건 의약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각각의 목적, 성분, 제조방법에 따라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기타 가공품으로 구분된다. 의약품이란 질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엄격한 의약품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용법 효능과 부작용을 분명히 표시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감시 관리도 받는다. 건강기능식품은 건강에 도움이 될만한 원료를 사용해 건강증진을 위해 만든 것으로 질병치료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가끔 인터넷이나 TV 홈쇼핑에서 선전하는 제품들을 보면 저 약(?)을 먹으면 소변도 시원하게 나오고, 혈관에 쌓인 찌꺼기도 말끔하게 없어지고, 닳아버린 무릎 연골도 다시 만들어질 것 같다. 반복되는 마감임박이라는 문구와 한 개를 덤으로 더 준다는 유혹은 자꾸 시선을 붙잡는다. 남들 모두 건강을 챙기는데 나만 안 먹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혹여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거나, 깨알 같은 글씨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장 안에는 피가 흐를 때 열리고 닫히는 문짝 역할을 하는 ‘판막’이라는 구조물이 있다. 어떤 원인으로 이 판막이 열고 닫히는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이 심장판막질환이다. 자기 판막을 제거하고 인공판막으로 바꾸는 판막치환술의 경우, 소나 돼지의 조직으로 만든 조직판막이나 금속재질인 금속판막을 사용한다. 금속판막을 이용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피의 응고를 막는 ‘항응고제’(흔히 와파린)를 평생 복용해야 한다.

와파린이라는 약물은 다루기에 매우 까다롭다. 먼저 개인의 체질에 따라서 치료용량 차이가 크다. 어느 환자는 1mg만 복용해도 혈액이 너무 쉽게 묽어지는 반면, 어떤 환자에게는 10mg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감기 외상 등 환자의 일시적인 건강상태 변화에도 쉽게 변동이 생겨 약물용량 재조정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와파린은 다른 약이나 음식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 와파린은 혈액응고 기전에서 비타민 K의 작용을 억제하는데, 비타민 K가 많이 들어있는 음식(청국장, 콩비지, 낫또 채소나 녹즙 등)을 많이 먹고 나서 혈액응고시간이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몸에 좋은 것이라 먹은 건강기능식품이 와파린의 작용을 증가 혹은 억제하여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도 너무 흔하게 경험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건강기능식품 생산액은 건강기능식품 제도가 시행된 2004년 2506억 원에서 2022년 4조1378억 원으로 증가했다. 지금 이순간에도 다양하고 많은 건강기능식품이 저마다의 효능을 주장하며 팔리고 있다. 물론 건강기능식품에도 몸에 좋은 성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을 질병 치료를 위한 약으로 오인하거나, 정작 필요한 약의 복용을 중단하는 일, 복용하는 기존 치료약이 건강기능식품 때문에 부작용이 발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모든 약에는 항상 부작용이 있다. 건강기능식품도 마찬가지다. 만병통치약이 없는 것처럼 건강한 효능만 있는 건강식품은 없다. 잘못 섭취하는 건강식품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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