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청년의 소리] 시민이라는 정체성

허태준 작가

  • 허태준 작가
  •  |   입력 : 2024-01-28 19:08:29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여자 친구와 2주 동안 인도네시아 발리섬에 다녀왔다. 그렇게 오래 해외에 나간 것도 처음이었고, 비행기를 8시간이나 타고 이동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출발부터 모든 게 낯설기만 했던 우리가 안심할 수 있었던 건 응우라라이 공항 앞에서 기다리던 가이드 수까 씨 덕분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수까 씨는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능통했다. 간단한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우리가 여행할 각 지역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기에 긴 여행을 의지할 수 있는 듬직한 가이드였다.

수까 씨가 운전을 도맡아 주었기에 우리는 공항에서 가까운 지역인 꾸따나 스미냑 외에도 좀 더 내륙에 있는 우붓이나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아메드까지 여행 계획에 넣을 수 있었다.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도로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와 창밖으로 우거진 야자수 풍경이 생경했다. 특히 길목마다 정치인으로 보이는 이들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빼곡했는데, 그중에서도 두 남자가 나란히 서 있는 붉은 현수막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인도네시아 곧 선거 있어요. 저 현수막에 있는 사람들, 대통령 후보랑 현직 대통령 아들이에요. 대통령 아들 이번에 부대통령 후보로 나와요.” 우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수까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법 복잡했다. 현직인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만 3선 제한 규정으로 이번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고 한다. 대신 그의 아들 기브란이 유력 대선 후보인 프라보워와 함께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브란의 나이였다. 그는 1987년생(37)으로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부대통령 피선거권을 40세로 제한하는 규정에 위배된다. 원래라면 입후보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작년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지방선거와 총선 등의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에게는 예외를 허용하며 출마 길이 열렸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그것 때문에 시끄러워요.”

관광지로 유명한 발리섬이지만 이곳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었다. 우리에게는 생경한 풍경 정도로 여겨지는 저 현수막들도, 수까 씨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국민에게는 중요한 쟁점과 맥락이 포함된 삶의 일부인 것이다. 하지만 ‘여행자’라는 정체성은 그런 시끄럽고 복잡한 사정에서 우리를 한발 떨어트려 놓았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그 모든 걸 관망할 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무척 얄팍하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국내 정치나 사회문제에 통달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그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물론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다면 좋든 싫든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연일 다양한 정책과 정무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그 문제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나는 정치 같은 것 모른다”거나 “어렵고 나쁜 말해서 뭐하나” 등의 흔한 이야기처럼 우리는 너무 쉽게 일상과 정치를 분리시킨다. 뉴스나 신문을 가득 채우는 논의들도 금세 자신과 관련 없는 일로 여기며 관망한다. 시끄럽고 복잡한 일이 모두 보이지 않는 선 너머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분리가 주체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무력함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살지 않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거나, 정규직 일자리를 갖지 못했거나, 그 외에도 저마다의 이유로 선 밖에 서 있는 이들은 시끄러운 정치적 논의 속에서도 소외감을 느낀다. 그들에게 정치는 마치 생경한 풍경이나 낯선 언어로 가득한 나라와 다르지 않다. 정말로 ‘나와 관련 없는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거리감을 회복하자는 제안도, 선 밖의 삶을 편입하라는 요구도, 결국 정치가 대변할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우리는 어떤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가. 금방 떠날 여행자가 아니라 한 명의 ‘시민’으로서 어떤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가. 그 목소리가 필요하다. 시민으로서 당신이 느끼는 가장 솔직하고 진실된 목소리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2. 2“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3. 3해운대 벗어나 우리동네로…부산이 온통 극장이네요
  4. 4[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5. 5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6. 6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7. 7‘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8. 8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9. 9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10. 10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1. 1‘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2. 2부산 국힘 “보좌진 유죄 선고…전재수 시장, 시민에 사과해야”
  3. 3국힘, 중수청 앞서 “범죄자 천국될 것” 여론전(종합)
  4. 4李 “김지용, 친윤 아닌 반윤 검사” 중수청장 청문 요청키로
  5. 5靑 “이 대통령 ‘불의의 사고’ 표현, 부상 장병 위로한 것…북한 면죄부 주려는 것 아냐”
  6. 6이 대통령,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 청문요청안 재가
  7. 7전국 교정시설 수용률 126%…윤상현 “형사사법개편 앞두고 교도소 과밀 방치”
  8. 8전재수 “생곡 무산 땐 에코델타에 소각장 불가피”
  9. 9軍·유엔사 “군사분계선 이남 지뢰매설, 北 정전협정 위반”(종합)
  10. 10국정원 “우크라가 北포로 송환 비공개 먼저 요청”(종합)
  1. 1“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2. 2동래 플래그십 문 연 ‘르노’…미래차 R&D센터 내년 오픈
  3. 3북극 누빈 아라온호, 항로예측 기틀 마련
  4. 4신한銀 2만5000명 고객정보 털렸다…당국 조사
  5. 5대선주조 부산 문화 앞장…‘부산국제록페스티벌’ 8년째 후원 행보
  6. 6리사이클링·항만운영·담수화…부산 미래산업 이끌 혁신기술
  7. 7주가지수- 2026년 10월 1일
  8. 8BPA, 5번째 해외 물류거점 구축…베트남 사업 본궤도
  9. 9부산 연구개발 우수성과- 우수학술 부문
  10. 10부산 연구개발 우수성과- 연구혁신 부문
  1. 1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2. 2“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3. 3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4. 4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5. 5‘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6. 6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7. 7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8. 8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9. 9“기관장 인선, 유능하면 지역 불문…산은 유치 채널 총동원”
  10. 10검찰 기존 사건 90일 간 수사 가능…대규모 사건이관에 현장혼선 우려
  1. 1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2. 2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3. 3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4. 4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5. 5HJ중공업, 8∼11일 KLPGA 챔피언십 대회 주최…부산서 처음 열려
  6. 6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7. 7중원 황인범·투톱 변화…승리 축포 쏠까
  8. 8아시안게임 사격 남자 속사권총 우승…한국 25번째 金
  9. 9윤규성, 태권도 품새 금메달…한국 남자 개인전 3연패
  10. 10독립운동가 후손 재일교포 허미미, AG 여자 유도 57㎏급 금메달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국제칼럼 [전체보기]
개헌 말하려면 헌법 준수부터
나림 이병주, 더 일찍 법(法)으로 통(通)했다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영산회상, 불교음악에서 풍류음악으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민원인(들)
AI 패권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직업병에 대한 자세, 무지와 고의 사이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생곡소각장 정치적 셈법보다 원칙대로 추진해야
알래스카 LNG, 협력하되 국익이 최우선이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인공지능(AI)과 인류 멸종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