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귀국 비행기가 차질이 생긴 적이 있다. 당시 제주에 폭설이 내려 홍콩으로 와야 할 비행기가 제주에 발이 묶였다. 홍콩 국제공항에 출발보다 꽤 이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난감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그 곤란함이 아니라 승객의 불만과 거센 항의를 받아내던 항공사 직원의 얼굴이었다. 그는 꽤 얼굴이 흰 편이었는데 정말 피가 날 것처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갑자기 비행편이 사라진 승객들에게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하루 더 호텔에서 묵을 수 있는 숙박권과 현금 지원을 선택할 수 있다는 안내를 했다.
일정이 뒤틀린 사람들의 분노는 당연했다. 하지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기상이변으로 오지 못한 비행기 때문에 부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의 추궁, 그들에게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하고 뒷일을 수습하는 사람.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항공사 직원은 몇몇 폭언을 퍼붓는 승객에게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며 계속 사과했다. 나를 포함한 누구도 그 자리에서 그에게 그럴 수도 있다고, 날씨를 누가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다독이던 사람은 없었다. 굳은 얼굴로 각자의 일정을 다시 짜거나 그의 괴로움을 외면했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의 숏폼콘텐츠에서 한 항공사 직원이 비슷한 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 항공기는 엔진에 문제가 생겨 승객들이 비행기에 착석한 채로 활주로에서 대기하다가 결국 터미널로 돌아가야 했던 램프리턴이었다. 불편한 항공기 좌석에서 몇 시간 기다리다 결국 출발을 못 했으니, 승객의 분노가 굉장했을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 직원은 “이런 날 집으로 돌아가면 마음이 참 힘들다”며 씁쓸한 얼굴을 했다.
다행인 것은 이 직원은 당시 불편을 겪은 승객이 보낸 쪽지를 받고 마음에 상처가 좀은 치유됐다는 점이다. 그 승객은 쪽지에 “당신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다. 항공기 승무원의 책임은 승객의 안전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상식을 넘어선 불만을 다 받아낼 필요는 없다. 몇몇 사람들의 심한 말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고 썼다. 그 승무원은 이 쪽지 하나로 그날의 괴로움을 많이 씻을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자라오면서 타인을 선의로 대하라고 배운다. 항의가 필요한 순간이나 불만을 표현해야 할 때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가져야 한다는 걸 다 알고 있다. 하지만 화가 나서 이성을 잃으면 배웠던 일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마음을 잊는다. 그리고 상대도 나와 같은,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잊는다. 서비스직 종사자라면 이런 일로 얼마나 많이 상처를 받아왔는지 한참 동안 말할 수 있을 거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잃으면 말도 당연히 사람의 말이 아니게 된다. 그런 말들이 타인을 상처입히고 나도 언젠가는 그런 상황이 닥치면 똑같이 아프게 된다. 그때야 내가 쏘아댄 말의 화살을 거둘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후로 조심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사람은 어리석고 같은 일을 반복한다.
각종 마케팅을 위해 반갑지 않은 전화를 하루에도 여러 번 받게 된 날이 있었다. 짜증으로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 그 사람은 자기 일을 하기 위해 나와 통화를 이어가려고 했지만 나는 “괜찮습니다” 한 마디로 전화를 바로 끊었다. 상대가 말을 끝맺으면 통화를 마무리하는 절차 없이 뚝 끊었다. 아예 받자마자 “관심이 없는 일입니다. 전화 끊습니다”하고 통화를 마무리하는 게 나았을까. 이러나저러나 나는 예의 없이 전화를 끊었고 나빴다.
얼굴을 마주 대하는 일이었다면 좀은 달랐을까. 나는 그를 마케팅 AI 정도로 대했고 그도 나에게 별 기대는 없었으리라 비겁하게 주장해본다. 일상적 거절이나 냉대였겠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기를. 내 예의 없음과 무신경을 상대의 아량과 직업상 고충으로 덮어버릴 수 있었기를. 나쁘고 아픈 말을 도로 다 담아 싹 씻어서 해말갛게 예쁘고 곱게 만들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해 놓고 후회하는 생각 짧은 일이 좀은 줄어들기를 바란다.
최영지 독자여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