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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현자들의 외도

능력 없는 의지만으로는 국가의 갈등·분열 못막아

정계 입문 위해 학계 떠난 현자들의 도전 결과 주목

김진식 정암학당 연구원·로마문학박사

  • 김진식 정암학당 연구원·로마문학박사
  •  |   입력 : 2024-02-07 19:59:16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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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 갈아 먹을 뿐, 정치와 권력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던 요임금 시절을 우리는 태평성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치와 권력을 의식하게 되는 나날이라면 세상이 어지럽다는 뜻이리라. 신화시대에 속하는 요순시절을 제외하면 사실 그런 호시절이 있기는 했는가 싶다.

이 질문에 답이 궁색하기는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살자는 철학자가 많이도 등장했다.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를 추종한 로마시인 호라티우스는 세상과 멀리 떨어진 평온한 터전과 그곳에 찾아온 봄날을 노래하며 사람들의 낙향을 권고했다. ‘매서운 겨울날이 풀려 봄과 서풍이 즐거이 돌아오니 기중기는 말려두었던 배를 끌어 내린다. 가축들은 더는 외양간을, 농부는 군불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여신들은 달이 뜨는 밤 합창대를 이끌고 발로 땅을 구르며 춤을 춘다.’ 카르페 디엠의 철학이다.

피타고라스가 주창한 철학자의 관조적 삶도 ‘숨어 살자’는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의 구호와 맥락을 같이 한다. 피타고라스의 설명이다. ‘인간의 삶은 화려한 경기가 펼쳐지고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축제를 닮았다. 축제가 열리면 어떤 사람은 육체를 단련하여 월계관의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상품을 사고팔며 이득과 이익을 추구한다. 한편 축제를 찾은 사람들 가운데 환호도, 이익도 추구하지 않고 다만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구경하며 열심히 살피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이승의 삶을 찾아온 우리 가운데 일부는 명예를, 일부는 돈을 섬기지만, 일부는 매우 드물게 다른 모든 일은 거의 무가치한 일로 치부하고 자연을 열심히 관찰하는데, 이들은 철학자라고 불린다. 이들은 삶에서 다른 모든 열정보다 자연의 관조와 인식을 크게 앞세운다.’

철학자, 다시 말해 지혜를 사랑하는 현자라면 정치와 권력을 멀리해야 하는 전통적인 논거는 이러하다. 세상과 정치에 참여하게 되면 훌륭함이나 덕과 거리가 먼 자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는데 이는 현자에게 옳은 처신이 아니며, 더군다나 현자가 그런 자들과 맞붙어 옥신각신 다투는 것은 처참하고 위험한 짓이다. 공직은 고삐 풀려 날뛰는 어리석은 대중의 광증에 휘둘리고 불순하고 야만적인 정적의 무례한 언동과 모욕에 시달리는 일이다. 침입한 외적을 용맹하게 싸워 물리쳐도 보상은커녕 모함으로 명예마저 빼앗기고, 종국에는 목숨마저 잃는 일이 다반사다. 로마 역사도 이를 지지한다. 어떤 로마 집정관 역임자는 퇴임 이후 고발에 시달리다가 청년에게 호소하여 관직에 나가지 말라, 국가 통치를 멀리하라, 집정관 권표, 집정관 예복, 고관 의자는 운구 행렬의 성대함이고 대단한 집정관 휘장은 마치 희생 제물을 장식한 끈처럼 죽음을 상징한다고 외쳤다. 따라서 국가를 배에 비유한다면 현자는 평화롭게 항해하는 배의 방관자이길 자처했고, 거칠게 폭풍 치는 바다에서조차 방관자여야 한다고 믿었으며, 그보다 더 급박한 난파의 상황이 아니라면 배의 키를 잡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조국의 패망에도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공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는 수학 문제 풀이에만 몰두했다. 점령군인 로마 병사에게 소리 질렀단다. “내 원을 건드리지 말라!”

하지만 로마인 키케로는 시민은 모름지기 정치에 참여하여 공동체에 헌신해야 하고, 철학과 학문은 사회 참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한계를 두어야 한다고 믿었다. 철학자이면서도 정치가이길 더욱 원했던 키케로는 관조적 삶에 의구심을 갖는다. 특히 의심한 것은 급박한 상황이라는 단서다. ‘숨어 살기’를 선택했고, 자연을 관조하는 삶에서 행복을 찾았고, 극장에 앉아 세상이라는 연극을 관람하는 쪽을 택했던 현자가 과연 난파 직전에 키를 잡는다고 국가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키를 잡지 않겠다고 거부하던 사람이, 그래서 아무것도 항해와 관련된 것은 배우지도 생각하지도 않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폭풍우 치는 바다에, 어쩌면 번개를 직접 몸으로 막아야 할지도 모를 난세에 키를 잡아 무얼 해낼 수 있을까? 키케로가 문제시하는 것은 선한 의지가 아니라 능력이다.

능력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오랜 경험의 산물이다. 키케로는 내전으로 치닫는 갈등과 분열 대결의 시대를 살았다. 군인 독재자들의 시대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독재자 카이사르는 국가를 파괴했다. 카이사르의 암살로 자유 시민의 살길이 열리는가 싶었지만, 자유를 위해 휘두르는 칼은 또 다른 내전을 불러왔다. 어린 시절부터 쌓은 오랜 정치적 훈련과 경험으로 차근차근 로마의 최고 관직에 오른 숙련된 정치가도 이런 분열의 역사를 막아낼 수 없었다. 선거의 봄을 맞아 학계를 떠나 정계에 입문하는 현자들의 외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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