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상이 칼럼] 우리 시대의 올바른 복지 원칙

이상이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

  • 이상이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
  •  |   입력 : 2024-02-08 19:11:39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2014년 2월 26일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생활고를 겪던 어머니와 두 딸이 번개탄으로 동반 자살을 선택한 사건인데, 현장에서 ‘집세와 공과금이 밀려 죄송하다’는 메모와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가 발견됐다. 선량하고 정직한 보통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은 많은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고,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비판과 성찰의 계기가 됐다. 이후 정치·사회적 논의를 거쳐 일명 ‘송파 세 모녀 법’이 세상에 나왔다. 2015년 7월 시행된 개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송파 세 모녀 법’은 누구라도, 어떤 이유로든 경제·사회적 약자가 되었을 때 공공부조 등의 복지와 경제·사회적 지원이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합의를 담아낸 것으로,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이후 우리나라 복지 역사에서 기초안전망을 강화한 중요한 성과물이다. 핵심은 국민기초생활보장의 맞춤별 개별 지원을 강화하고, 긴급복지 지원을 확대하며, 복지 대상자의 효과적 발굴을 위해 단전·단수·건강보험료 체납 등의 관련 정보를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때부터 우리나라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2019년 11월 2일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세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성북 네 모녀 사건’이다. 3개월 치의 건강보험료와 월세를 못 냈고, 집 우편함에 채무이행 통지서들이 쌓여 있었다. 급격하게 위기로 내몰렸기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던 사례다. 2022년 8월 21일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69세 어머니와 4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이다. 어머니는 암 환자였고, 큰딸은 희귀병을 앓았다. 소득이 없고 건강보험료가 16개월이나 연체되었음에도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행정당국은 이들의 행방을 알지 못했고, 세 모녀는 긴급생계와 의료비 지원뿐만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 혜택도 받지 못했다.

2024년 2월 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빌라에서 뇌 병변 장애가 있는 10살 딸과 40대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장애인 딸의 아버지가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인데, 정권이 교체되고 다수당이 바뀌어도 이런 애통한 일은 계속되고 있다.

대선 공약으로 약자 동행을 내세웠고 약자 복지를 강조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정책 사기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야당도 사각지대로 내몰린 국민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긴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약자 복지가 잘 작동하도록 견인하고 대안을 내놓은 것 대신에 기본소득 방식의 무차별적 포퓰리즘에 매몰된 채 세월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약자 복지는 나쁜 게 아니다. 어려운 처지에 내몰린 경제·사회적 약자에게 필요에 상응하는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약자 복지의 취지는 전적으로 옳다. 그런데 문제는 약자 복지의 목적이 약자 선별에만 강조점을 두는 기존 약자 복지 방식만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복지를 요구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자산조사를 시행해서 약자를 선별하고 기초보장을 제공하는 선별 방식은 유용한 도구임이 확실하다. 그런데 여기에만 머문다면 이는 선별주의(selectivism) 노선이라는 낡은 복지 이념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약자 복지가 작은 정부의 무책임한 선별주의 노선으로 이해되는 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의 작동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적 약자에게 일어나는 안타까운 비극의 반복을 막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올바른 복지 원칙은 ‘보편적 복지’다. 보편적 복지는 복지국가의 사회보장 원리로서 ‘누구라도’ 각종 재난 실업 질병 산재 은퇴 출산 육아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 소득의 단절이나 급격한 감소를 겪거나 혹은 생의 주기에 따라 각종 사회서비스가 필요할 때 사회안전망과 복지 체제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먼저 보편적 복지가 낭비적·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보편주의(universalism)는 필요와 조건을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방식의 무차별주의와 다르다. 그러니까 보편적 복지는 언제나 필요와 조건을 따지며, 이 과정에서 ‘선별’이라는 도구를 활용한다. 보편적 시민권인 복지 필요의 충족을 낭비적·비효율적인 것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다음으로 보편적 복지는 돈이 많이 들고 재원 조달이 어려워 지속가능성이 낮다는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가 선별주의 노선보다 돈이 더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원 조달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훨씬 유리하다. 이는 선진 복지국가에서 입증된 사실인데, 보편적 복지가 경제와 선순환하면서 혁신적 역동적 경제성장의 조건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협성르네상스 브랜드 잠정 폐업
  2. 2인구감소지역 ‘임대형 실버타운’ 도입…동명대·신라대 시니어 시설 구축 탄력(종합)
  3. 3‘어대한’ 벽 깨지 못한 친윤계 ‘배신자 프레임’
  4. 4다대포해변서 ‘열린음악회’…신나는 공연에 불꽃쇼·나이트 풀파티도
  5. 515조 시금고 유치…부산銀 등 7개 은행 치열한 눈치작전
  6. 6이름·사업 닮은 공공보건시설…중복 논란에 시-구·군 갈등
  7. 7국힘 새 대표 한동훈 “당원·국민 변화 택했다”
  8. 8예술작품 품은 호텔가…고객들 ‘눈 호강’
  9. 9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56> 이모작지원센터협동조합 최정란 부이사장
  10. 10與 신임 최고위원 장동혁·김재원·인요한·김민전
  1. 1‘어대한’ 벽 깨지 못한 친윤계 ‘배신자 프레임’
  2. 2국힘 새 대표 한동훈 “당원·국민 변화 택했다”
  3. 3與 신임 최고위원 장동혁·김재원·인요한·김민전
  4. 4‘민주당 해산’ 6만, ‘정청래 해임’ 7만…정쟁창구 된 국민청원
  5. 5당내 분열 수습, 용산과 관계 재정립…풀어야 할 숙제 산적
  6. 6野 ‘윤석열·김건희 쌍특검’ 발의…檢 내홍 속 독립성 훼손 논란까지
  7. 7조승환·서지영·곽규택 예결위 배속…박수영 정치력 빛났다
  8. 8부산시의회, 퐁피두 분관 MOU 동의안 가결
  9. 9[속보] 한동훈,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 선출
  10. 10與 전대 투표율 48.51% 그쳐…새 대표 당 균열 봉합 숙제
  1. 1협성르네상스 브랜드 잠정 폐업
  2. 2인구감소지역 ‘임대형 실버타운’ 도입…동명대·신라대 시니어 시설 구축 탄력(종합)
  3. 315조 시금고 유치…부산銀 등 7개 은행 치열한 눈치작전
  4. 4예술작품 품은 호텔가…고객들 ‘눈 호강’
  5. 5전국 특구 1000개 시대…유사특구 통폐합 목소리 높다
  6. 6美·日서 인정받은 용접기…첨단 레이저 기술로 세계 공략
  7. 7‘SM 시세조종 혐의’ 받는 벤처신화…유죄 확정땐 카카오뱅크 등 직격탄
  8. 8삼성전자 ‘마이크로 LED’ 부산 전시공간 확대
  9. 9‘배달 플랫폼 협의체’ 상생안 나올까(종합)
  10. 10“해상풍력, 정부가 주도하게 할 특별법 조속 제정을”
  1. 1이름·사업 닮은 공공보건시설…중복 논란에 시-구·군 갈등
  2. 2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56> 이모작지원센터협동조합 최정란 부이사장
  3. 3절삭유 20t 흘러들어간 하천…뿌연 물결 위로 물고기 떼죽음(종합)
  4. 4김해 유통단지 재정비사업 탄력
  5. 5오늘의 날씨- 2024년 7월 24일
  6. 6명지신도시 국제학교 교육구 되나…‘英 명문사립’ 설립 추진
  7. 7올 신규 공무원 과원 발령…곳간 빈 기초단체, 인건비 걱정
  8. 8부산·동부경남 글로컬대 전략수립 막판 스퍼트
  9. 9국가가 토지 준다해서 황무지 일궜는데…그들은 쫓겨났다
  10. 10부산 남구 문화재단 추진 실효성 논란…의회 “적자 불가피”
  1. 1마산용마고 포항서 우승 재도전
  2. 2부산아이파크 유소녀 축구팀 창단…국내 프로구단 첫 초등·중등부 운영
  3. 3남자 단체전·혼복 2개 종목 출전…메달 꼭 따겠다
  4. 4부산항만공사 조정부 전원 메달 쾌거
  5. 5남북 탁구 한 공간서 ‘메달 담금질’ 묘한 장면
  6. 6롯데 ‘안방 마님들’ 하나같이 물방망이
  7. 7“부산국제장대높이뛰기대회 위상 높이도록 노력”
  8. 8격투기 최두호 UFC서 8년만에 승리
  9. 9기절할 만큼 연습하는 노력파…듀엣경기 올림픽 톱10 목표
  10. 10아~ 유해란! 16번 홀 통한의 보기
부산시의회 후반기 출범
예산권 보장 지방의회법 제정 본격화, 행정통합·맑은 물 사업 등 지원 총력
부산시의회 후반기 출범
상임위 7곳 중 6곳이 초선 위원장, 구의회 경험 바탕 ‘전문성’ 기대감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산재보험 60년, 이순(耳順)이기를 바란다
노동자 건강을 위한 국제사회의 경향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 많이 두들겨 보아야 할 산복도로라는 돌다리
옛 부산세관 복원, 진정한 새로운 전통이 되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구의 양의 되먹임 현상
에어컨의 대명사에 남긴 이름
국제칼럼 [전체보기]
윤리가 없는 AI가 만들 ‘위험천만한 세상’
길 들이기와 길 들지 않기
기고 [전체보기]
허치슨터미널, 우리나라 1호 기록에 도전하다
AI의 일상화와 창작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에 대한 열렬한 환호와 예우…‘축제의 궁전’ 품격이 달랐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위선’ 일망정 ‘공감’과 ‘배려’를 보고 싶다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공존과 양립으로서의 국악 컬래버
디아스포라의 노래 영천아리랑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좋은 사람 되기
실력·인성 갖춘 축구 ‘레전드’ 정용환이 그립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청문회장의 연예인
‘육상 김’
메디칼럼 [전체보기]
진료실에서 만나는 이주노동자들
미래 한국 의료는 어디로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가마보코에 매료된 조선인
대만과 밀크피시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腦力) 키우기 1원칙 ‘운동’
뇌력(腦力)을 키우는 다섯 가지 비결
사설 [전체보기]
국민의힘 한동훈호 출범…‘변화’로 망가진 보수 살릴까
‘100일 기침’ 백일해 유행…여름철 호흡기 질환 주의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아르테미스
7월은 산업안전보건의 달?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건강주치의 제도가 의료 개혁의 핵심인 이유
의대 입학정원 갈등의 올바른 해법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심해 유전 140억 배럴, 영일만과 산유국의 꿈
기회의 바다, 우리네 함장은 어디로 키를 잡을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푸틴의 행보와 러시아 경제
경제문제가 풀려야 인구문제가 풀린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수영에서 ‘역사도시’ 부산을 보다
인문 정신은 언제나 곡선으로 간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나만의 생각’을 길러주려면
한국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IB교육학회 창립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건강과 재물을 얻는 명당아파트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당원 중심주의’의 함정
비례대표 제도는 죄가 없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호주 와인과 보랏빛 수영장
오페라 와인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로크 음악
낭만오페라의 종언! 푸치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김정헌의 ‘밥이 하늘이다’
‘꽃피는 부산항’에서
CEO 칼럼 [전체보기]
변화하는 모터쇼와 부산모빌리티쇼의 도전
위기가 기회로!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