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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반도체와 ‘밀양 할매’

총선 앞 정치권 공약 경쟁, 비수도권 희생 전제 안돼

전력수요 많은 첨단산업, 왜 지역을 공급기지 삼나

  •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   입력 : 2024-02-19 19:54:5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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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4·10총선을 앞두고 달라졌다. 서로 국민을 받들겠다고 난리다. 싸우다 닮은 건지 하는 말도 똑같다. “묻고 더블로 가!”. 안 되는 것 빼고 다 해준단다. 더불어민주당이 “주 5일 경로당 점심 제공”을 공약하자 국민의힘은 “우리는 주 7일”로 한 발 더 나갔다. 연간 15조 원이 필요한 간병비 건강보험 급여화나 철도 지하화 역시 공통 공약이다. “재원은 어떻게?”라고 물으면 “투자를 유치한다”거나 ‘눈치 없다’는 듯 흘겨보고 어물쩍 넘기는 것도 닮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배포가 더 크다. 올해 12차례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수조~수백조 원이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를 여러 개 꺼냈다. 재개발·재건축 간소화와 대규모 감세도 포함돼 있다. 다주택자 중과세·금융투자소비세 폐지에 이어 상속세 완화까지 시사했다. “소액주주는 주가가 올라야 이득을 보지만 대주주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는 게 이유다. 국민은 궁금하다. 상속세를 낮추면 주가가 하이킥 할까. 세금을 덜 거두면 재정에 구멍 나지 않을까. 언론은 불안해하는 데 정부는 괜찮다고 한다.

정치권이 선거를 의식해 설익은 정책을 꺼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대통령 말이라면 전후 맥락은 맞아야 한다. “지방시대”를 외치다 갑자기 서울을 키우자고 하면 국민은 헷갈린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확대(3→6개)가 그렇다. GTX는 원래 서울로 출퇴근하는 수도권 직장인들의 교통난 해소를 위해 시작됐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GTX 노선을 강원·충청까지 연결하려 한다. ‘비만 서울’을 더 살찌우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균형발전의 핵심이 ‘분산’인 걸 모르는 건가. 부산이 추진한 경부선 지하화 사업이 ‘철도 지하화 특별법’ 제정으로 가시화되자 수도권서 먼저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반도체 정책은 비수도권의 속내를 더 복잡하게 한다. 윤 대통령은 경기 용인에 622조 원(민관)을 쏟아부어 “일자리 300만 개가 새로 생기는”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한다. 국가 장래가 달린 첨단산업 육성을 반대할 이는 없지만 “부산은 왜 안 되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부산·울산·경남(PK) 청년들이 300만 개 중 하나를 차지하려 매년 고향을 등질 건 자명하다. 국가첨단산업단지 선정에서 탈락한 부산은 손가락만 빨아야 할 판이다.

비수도권이 전력 공급기지로 전락할 거란 우려도 크다. 용인 클러스터의 예상 전력소비량은 1.3기가와트(GW)짜리 원전 8기 발전량과 비슷한 10GW 이상이다. 현재 서울 경기 인천을 합친 전력 수요의 25%에 달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LNG발전소 6기를 신설해 3GW를 충당하고 나머지 7GW는 강원 영동(원자력)과 호남권(재생)에서 장거리 송전선로를 통해 공급할 계획이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해 반도체 없는 비수도권이 희생하는 셈이다. “같은 나라인데 어때”라는 타박은 전형적인 수도권 논리다. 정부가 전력수요 대응을 위해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4기 이상의 원전 건설을 명시할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경기권에 짓는다는 말은 없다.

비수도권 보상책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전력 생산이 많은 지역의 전기요금을 낮춰주는 ‘차등요금제’ 도입 역시 미지수다. 차등요금제는 비수도권의 여러 고민을 풀 수 있는 키워드다. 전력자급률이 높은 영남 호남 강원이 요금을 할인받으면 누가 떠밀지 않아도 기업은 이전한다. 전기 생산지와 수요지가 달라서 발생하는 송전탑 갈등도 줄일 수 있다. ‘제2의 밀양’을 막을 최소한의 장치인데 정부는 수도권 눈치를 본다.

“데모하러 서울에 갔는데 마 삐까뻔쩍하이, 마 정신이 읎어. 머 대낮겉이 밝아갖고 훤-하이 그란데 마 퍼뜩 그런 생각이 들더라꼬. ‘아 여 이래 전기 갖다 쓸라꼬 우리 집 앞에다가 송전탑 시운기구나’…. ‘느그 여 전기 갖다 쓰느라고 우리 집 앞에다가 말뚝 박아 놨구나’ 싶은 기 마 부아가 치미는 기라.”

김영희 연세대 교수가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을 한 할매들을 인터뷰해 펴낸 ‘전기, 밀양-서울’(교육공동체벗)의 첫대목이다. 밀양 할매들의 문제의식은 ‘전기 쓰는 사람 따로, 피해 보는 사람 따로’에서 시작해 탈핵으로 이어진다. “전기 만드는 데든 송전탑이든 여 갖다 세우지 와 남의 땅에다 시와 놓고 이래 느그는 팡팡 에어컨 돌리고 야밤에 온 시상을 대낮겉이 밝혀 놓고 이라노 말이다.”

인공지능(AI) 상용화와 전기차 확산은 전력 수요를 더 부채질한다. 정부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비수도권은 더 많은 송전탑과 사용후핵연료를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판이다.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잘 사는 나라’가 무슨 소용인가. 첨단산업 투자와 김포 서울 편입론으로 수도권을 팽창시키려는 꼼수도 재고해야 할 때다. 정부가 하지 않으면 유권자가 강제해야 한다. 그 첫걸음이 정책과 공약을 꼼꼼히 살피는 것이다. 누구라도 밀양 할매가 될 수 있다.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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