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6일 개최된 ‘2024년 제1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료 개혁의 핵심 추진 과제인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방안’이 발표됐다. 의대 정원을 현재 3058명에서 2025년도까지 5058명으로 2000명을 늘린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10월 정부가 수면 위로 올린 의대 정원 이슈에 방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정원 확대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부족한 의료 인원이 보충되고 의료 시설의 지역 불균형이 완화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원 확대보다 시급한 문제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갤럽이 지난 2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대 정원 확대에 긍정이 76%, 부정이 16%로 집계됐다.
이후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는데, 유독 눈에 띈 단어가 ‘지방 유학’이다. 다수가 ‘인 서울’을 꿈꾸며 위를 바라는 현실에서 아래로 향하는 지방 유학은 어쩌면 시대를 역행하는 단어로 보이지만 한편으론 현재를 대변하기도 한다. 정부는 2025년 입시부터 비수도권 의대 입학생의 60%를 지역인재전형으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지역인재전형이란 해당 지역에서 고등학교 전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에게 의대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전형이다. 수도권 학생들이 지원하지 못해 지역인재전형 경쟁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실제로 2024학년도 입시에서 지방권 27개 의대의 수시 중 지역인재전형 경쟁률은 10.5대 1이나 서울권 9개 의대의 수시 평균 경쟁률은 47.5대 1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지방 유학의 현실적 명분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수도권 학생들에게 기회일 수도 있지만, 불안을 방증하기도 한다.
비수도권이라고 해서 마냥 속이 편할 리만은 없을 것이다. 공급이 확대됨으로써 기회의 장이 열리는 것은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비례할 정도의 수요 폭증도 충분히 예상되는 바이다. 몇 년 전부터 비수도권 내 입결(입시 결과)을 이야기할 때 오랜 시간 맹위를 떨치던 서울대 혹은 스카이는 이제 구시대의 산물이 된 듯하다. 그 자리엔 의대 혹은 의치한약수가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학교마다 그해에 N수생을 비롯해 몇 명의 학생이 ‘그곳’에 입학했는지가 학교의 명운을 논하는 상황에 다다랐다.
서울에선 의대에 가기 위해 초등 3학년부터 준비한다는 말이 있는데, 지난 10월 이후 그러한 분위기는 부산까지 내려오게 됐다. 정원이 확대돼도 결국 최상위 1%만 가는 곳이지만 ‘어쩌면 나도’라는 분위기가 시나브로 퍼지고 있다. 실제로 의대 정원 발표가 있던 날 학부모들이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뿐 아니라 중·고등 전문 사교육기관에는 의대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운영하는 학원에도 몇몇 문의가 왔는데, 의대 전문 사교육도, 중·고등 중심도 아닌 평범한 초·중·등 전문 독서교육 학원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흐름을 직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의대를 향해 달리는 아이들의 일상을 보면 각자의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 대견하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왜 의대일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야기를 나눠 보면 맹목적으로 달리는 아이들이 꽤 있는데, 그중 다수가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AI가 수많은 직업을 대체하는 시대가 와도 의사는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는 맹신도 기반하는 듯하다. 물론 오래전부터 의사와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소수에 해당할지라도 ‘낭만’이라 부를 만큼의 사명감 혹은 멋짐을 지향하는 범주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러한 모습을 쉽게 찾아보기가 어려운 듯하다.
이변이 없다면 의대 정원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인 경쟁 시스템 아래 수많은 아이와 학부모가 최선을 다해 달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성공을 손에 쥘 테지만, 누군가는 좌절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그 역할을 어른이자, 지금의 사회가 해야 한다. 의료 개혁의 우선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의대라는 천국을 향해 달리는 수많은 이들의 날개가 꺾여 지상으로 떨어져도 그들을 안전하게 받아줄 사회 분위기 혹은 시스템의 구축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