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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경제 항산항심] 재벌과 상속세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

  •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
  •  |   입력 : 2024-03-11 19:21:30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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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벌의 상속세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상속세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 불거진 사안은 아니지만 최근 상당수 재벌에서 경영권이 자녀나 친족에게 이동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다시 수면에 떠올랐다.

재벌들은 상속세가 너무 많아 회사 경영권까지 위협받는다는 주장이다. 반면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세율을 재벌에게 예외를 적용할 수 없다는 형평성 논리도 팽팽하다.

상속세가 무엇인지는 일반인도 잘 알기 때문에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다. 현재 상속세 세율은 상속받는 재산가액에 따라 최저 10%에서 최고 50%까지 부과된다. 상속은 불로소득 개념이어서 상속재산이 많을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의 재산을 물려받는 상속자에게 상속세는 저승사자다. 하지만 몇 푼 물려받지 못하는 대다수 일반인에겐 먼 나라 얘기일 것이다.

재벌들이 상속세로 골머리를 앓는 이유는 상속재산의 구성 때문이다. 재벌가의 재산을 뜯어보면 주식 재산이 평균 90%를 넘는다. 나머지는 주식을 제외한 유가증권이나 부동산이다. 상속재산 규모를 추적하기 어려운 현금은 평균 1%도 안 된다. 말하자면 과세를 피할 수 없는 노출된 재산이 99%에 가깝다는 얘기다. 가치산정이 어려운 고가의 미술품이 상속에 동원되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주식재산은 대부분 시장에서 가치가 분명하게 형성되는 지분자산이다. 가치산정이 난해한 비 상장사를 세워 재산을 줄이는 꼼수도 동원되지만 세무 당국의 비 상장사 계산법이 발전해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상속세는 현금으로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주식이나 부동산 재산을 단시간에 현금화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현금 대신 주식을 맡길 수 있도록 하고 일정 기간 안에 현금을 납부하면 주식을 되찾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까닭에 재벌들은 고액의 상속세로 인해 경영권 유지에 치명타를 입는다는 주장을 편다. 이론적으로 보면 상속받는 지분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면 지배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형제나 친족이 많아 상속자가 다수로 늘어나면 지분이 분산되어 개개인의 경영권 장악력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상당수 재벌가에서 형제나 친족 간의 경영권 분쟁이 늘어나는 것도 상속 과정에서 지분 분산이 이루어진 사정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이런 사정은 재벌가 내부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재벌에게 차별적으로 과도한 상속세가 부과되느냐는 점이다. 재벌이 실제로 납부한 상속세를 뜯어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재벌닷컴이 2015년 이후 상속이 이루어진 재벌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효세율은 평균 30% 안팎이다. 상속재산의 가액으로 보면 법정세율인 50%가 적용되지만 실제 상속세 결정 과정에서 가치산정이나 공제사항이 많아 실효세율은 낮아진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은 것일까. 최고 상속세율 기준으로 보면 미국과 영국은 40%, 프랑스는 45%로 우리보다 5%에서 10% 낮은 반면 일본은 55%로 우리보다 5% 높다. 캐나다는 상속세가 없는 대신 최고 60%에 육박하는 고율의 소득세를 부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3개 국가는 상속세가 없지만 상속재산을 매각해 이익을 취하면 자본 이득세로 고율의 세금을 거둬들인다. 실효세율을 감안할 경우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높은 편도 낮은 편도 아닌 중간쯤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재벌의 상속세에 대한 인식이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는 재산은 상속자 자신이 스스로 일궈낸 재산이 아니다. 상속세로 지분이 감소해 지배력이 약화된다는 주장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속재산의 크기보다 자신이 어떤 경영능력을 발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국 재벌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지분이 많아 ‘회장님’으로 존경받고 있는 경영인이 아니다. 세금을 내고 남은 절반의 재산을 발판으로 몇 배를 더 불려내는 도전정신이 진정한 재벌의 상속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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