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두꺼운 금목걸이와 금팔찌, 그리고 반지를 두르셨다. 힙한 아버지시라 젊은 세대의 힙합 아티스트처럼 꾸민 이유를 여쭈니, 요즈음에 일어나는 일을 보아 전쟁이 일어날지 몰라서 거의 모든 재산으로 장만하셨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몸에 지닌 것 외에는 무엇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에 태어나신 아버지는 그 어린 나이에도 몸에 익히신 것 같다.

지난 여름에 미국에 사는 후배가 돈을 다 털어 비트코인을 사라고 했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분쟁으로 비트코인이 상승할 거라는 정보였다. 필자는 비트코인에 대한 생각도 없었고, 여력도 없다. 그 정보가 6개월 정도 지난 지금 비트코인은 상종가고, 비트코인의 값이 오른 후배의 입꼬리도 상종가다.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전운(戰雲)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적인 일이다. 필자가 이탈리아 로마에 거주하던 2010년 경에 외국인 친구들은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는 것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지만, 집에 전화해보니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이었다. 전쟁의 위기가 만성화된 우리다.

종식되지 않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우리는 유사이래 최고의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천만에 하나, 만만에 하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분명 우리는 어제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비참과 공포,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가끔 들려오는 동유럽의 전쟁 소식이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누가 전쟁하고 싶어서 그러겠는가? 나름의 이유나 사정이 있을 것이고 또 전쟁을 일으키는 명분이 있을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오래된 교리는 ‘정당한 전쟁’의 조건들을 이렇게 열거한다.

-공격자가 국가나 국제 공동체에 가한 피해가 계속적이고 심각하며 확실해야 한다.

-이를 제지할 다른 모든 방법들이 실행 불가능하거나 효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야 한다.

-성공의 조건들이 수립되어야 한다.

-제거되어야 할 악보다 더 큰 악과 폐해가 무력 사용으로 초래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 판단에서 현대 무기의 파괴력을 신중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309항)

하지만 요즘에 일어나는 세계의 전쟁들이나 우리나라에서 전운을 드리우게 하는 무시무시한 말들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아니, 충족할 수 없다. 정치가 고도로 발전한 현대사회에서 ‘타협과 협상’은 얼마나 그 나라의 정치가 발전하고 앞서가는지를 알려준다. 사실,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수많은 세계대전들은 과도한 제국주의의 힘을 자국의 국민이 동조하고 표현하고자 한 폭력적인 권력일 따름이다. 하지만 야만적인 제국주의를 넘어선 지금, 국가는 자국의 국민이 보다 자율성을 지니고 살도록 도움을 주는 형태로 진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탄을 통해 이익을 보려는 집단이 전쟁을 부추기는 것일 수도 있다. ‘전쟁 비즈니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투에 투입될 젊은이들의 피 값으로, 세상이 폐허가 될 상황에서 이익을 얻는 이들은 전투에 투입되지 않은 늙은이 뿐이다. 그래서 전운의 불길한 기운을 퍼트리는 이들은 젊은이들이 아닌 기성세대이다.

부전이승(不戰而勝).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 훌륭한 전쟁 교과서인 ‘손자병법’은 알려준다. 그러니 제발, ‘선제타격’이니 ‘정밀타격’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말들로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는, 또 외교는 한 대 맞았다고 두 대 치는 아이들의 싸움터가 아니다. 더군다나 짧은 기간만 부여한 권력이 한 세기 이상을 지속하는 사고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권한은 없다.

개학과 더불어 학생들의 맑고 싱그러운 모습을 본다. 전쟁의 구름이 드리우지 않은 평화로운 열매들이다. 전쟁을 경험하거나 전후 반공사상을 교육받은 얼굴들이 품어내는 그늘과는 다르다. ‘정당한 전쟁’? 전쟁을 경험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기성세대는 ‘타협과 협상’으로 고뇌해야 할 뿐이다. 맑고 싱그러워야 하는 젊은이들의 권리가 당연한 것처럼 누리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