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 분야에서 대단한 성취를 하려면, 다른 일들을 전혀 하지 않고 하나에 몰두하는 일편단심이 필요하다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에 의하면, 실제 연구 결과는 전혀 딴판이라고 한다. 한 연구에서는 저녁에 부업을 한 사람들이 그 다음 날 본업에서 훨씬 업무 수행 성과가 좋았다는 게 밝혀졌다. ‘경로 이탈’이 꼭 집중력을 분산시키진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 회사에서는 회사에서의 업무 효율성 등을 위해 직원들의 겸직을 금지시킨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딴 짓’을 하면, 업무 효율이나 성과가 떨어진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 연구 결과는 그와 판이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오히려 저녁이나 주말에 적극적으로 딴 짓을 한 사람들이, 다음 날 본업에서 더 성과를 잘 낼 수 있다. 주말에 최선을 다해 취미 생활이나 일을 한 사람들이 월요일에 돌아와서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애덤 그랜트는 ‘히든 포텐셜’이라는 책에서, 적극적으로 ‘딴 짓’을 권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를 준다는 것이다.
그의 다른 책 ‘오리지널스’에서는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하지 않은 과학자들보다 글쓰기 등 예술 활동에 관여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이 일반 과학자들에 비해 글쓰기를 취미로 하는 확률은 12배 높았다. 딴 짓이 본업에서의 성취와 독창성을 극단적으로 높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나도 어렴풋이 내 삶을 통해 그에 관해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20살부터 거의 10년간 ‘전업 작가’ 비슷하게 살았다. 물론,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학교 공부도 인문학이었으므로 책을 쓰기 위한 과정 같은 것에 가까워서 거의 전업으로 읽고 쓰는 일을 한 게 대략 그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결코 효율적이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계속 읽고 쓰는 ‘일편단심’의 생활만 이어가자, 점점 쓸 것이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첫 책에 했던 이야기를 세 번째, 네 번째 책에서도 동일하게 한다고 느끼기도 했다. 한 번은, 1년 내내 한 권의 책 집필에 몰두한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은 내가 쓴 책 중에 가장 적게 팔리기도 했다. 스스로 내 안에 갇힌 ‘고인 물’이 되어버렸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무언가 ‘막혀’ 있었고,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글 쓰는 삶에서 ‘물꼬’가 트이듯 새로운 흐름이 시작된 건, 오히려 그렇게 일편단심으로 인문학 책만 쓰던 삶에서 벗어나면서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로스쿨에 입학하고, 변호사 일을 하면서 삶은 더 복잡다단해졌고, ‘일관성’은 잃어버렸다.
그러나 매일 30분씩 쓰는 글이 하루 종일 글만 쓰던 때의 글보다 여러 면에서 나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쓰는 글이 사람들에게 닿는 일들도 더 많아졌다. 소재도, 감성도, 문체도 다채로워졌다.
이후 로스쿨 수험생활을 하면서도 병행했던 ‘글쓰기’와 ‘육아’ 같은 딴 짓이 나는 공부 효율을 극단적으로 높여 줬다고 믿고 있다. 남들보다 공부할 수 있는 순수한 시간 자체는 훨씬 부족했지만, 그만큼 더 집중해서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시간의 절대적인 양보다는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는 효율성이었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주변으로부터 남들보다 일 처리가 빠르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내 삶에 있는 딴 짓들이 여러모로 효율성을 높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일은 하루 종일 머리를 싸매고 있어도 진전이 없다가도, 마음에 드는 글 한 편을 써내고 나면 갑자기 일사천리로 풀리기도 한다.
여러모로 산만함이 화두가 되는 시대이다. ADHD를 호소하거나 집중력 상실을 토로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적절한 딴 짓은 삶의 모든 면을 더 낫게 만들 수도 있다. 삶에 내가 좋아하는 일 몇 개쯤은 남겨둘 필요도 있는 셈이다. 일에서 중요한 태도는 그에 대한 책임감과 성실함일 뿐, 꼭 ‘일편단심’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대개의 선입관과 정면으로 반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우린 다른 하나의 일을 더 사랑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