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공백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으나 역설적으로 상급종합병원(대형병원) 중형병원(병원·종합병원) 동네의원으로 연결되는 의료전달체계가 정상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부산 29개 응급의료기관의 응급실을 이용한 환자가 지난달 초 하루 평균 1100명이었으나 이달 초에는 950명으로 13% 정도 감소했다. 전국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 10일 전국 408개 응급의료기관 응급실을 찾은 경증 중등증 환자는 지난달 3, 4일 대비 10% 줄었다.

의사가 진료 후 환자에게 상태를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국제신문DB

이번 사태로 상급종합병원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나라 상급종합병원 전체 의사 인력의 37.8%(2021년 기준)가 전공의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전공의가 10% 내외라는 점을 고려할 때, 비정상적인 구조다.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이 수련 과정인 전공의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이들의 집단 행동이 곧바로 진료 차질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주요 상급종합병원은 교수나 전문의보다 ‘값싼’ 노동력인 전공의를 대거 투입하며 비용 절감을 꾀해왔다. 의료 인력을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는 개선책이 시급하다.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입원실·응급실에서 경증 환자를 중형병원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환자가 자연스럽게 분산되면서 정상적인 의료전달체계의 가능성을 엿본 셈이다.

이는 상급종합병원이 파행 운영되고 있지만 많은 중형병원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는 의미다. 경증 환자가 대학병원 인근 2차 중형병원이나 1차 동네 병·의원으로 몰리면서 아프면 대학병원 응급실부터 찾는 행태에 변화가 생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정부가 중등·경증 환자의 1, 2차 의료 기관 이용을 적극 권장했는데 의료 공백이 우려되는 비상 상황에서 빚어진 이런 현상은 우리 의료계의 왜곡된 현실을 드러내는 단면이라 하겠다. 2차 의료기관 역할을 해온 중형병원은 경륜이 있는 전문의를 대거 확보해 웬만한 수술을 해낼 만큼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참에 중증·응급 환자만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하고, 경증 환자는 중형병원에서 치료하는 시스템이 안착되도록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이를 정착시킬 정책 마련에 나섰다 하니 차질없이 진행해야 마땅하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에서 넘어온 경증환자를 진료할 진료협력병원(종합병원)도 100군데 지정하기로 했다. 또 상급종합병원이 경증환자를 진료협력병원으로 돌려 보내도록 회송수가도 150%로 높이기로 했다.

그러나 의대 증원 갈등 해결이 급선무다. 의대 교수들이 오는 25일 집단 사직을 예고하면서 의료 현장 공백이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교수들마저 현장을 떠나면 중증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과 피해가 가중될 수 있다. 교수들은 국민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의사로서의 소명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의대 교수들이 실제 사직 행렬에 나서지 않도록 계속 설득하고 하루빨리 의료계와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