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제는 ‘전국구’라는 명칭으로 1963년 6대 총선에서 처음 도입됐다. 지역구 선거로 담보하기 어려운 직능 대표성을 보완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취지로 177석 중 44석을 지역구 의석수에 따라 각당에 전국구로 배정했다. 유신헌법 시행으로 9대 국회부터는 대통령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을 지명하는 유신정우회 의원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전국구는 11대 국회에서 부활했으나 정당의 비자금 창구라는 오명을 들었다. 16대 국회부터 선거법 개정으로 비례대표로 명칭이 변경됐다.

22대 총선의 비례대표 의석은 기존 47석에서 1석 줄어든 46석이다. 21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의석을 배정한다. 지역구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보다 적을 때 모자란 의석수의 50%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지역구 의원 당선 가능성이 적어 정당 지지도에 비해 의석을 확보하기가 힘든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을 돕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이 또 출현하면서 그 의미가 퇴색했다. 거대 양당은 비례투표 용지 상단을 차지하려 ‘의원 꿔주기 꼼수’를 되풀이하면서 수십억 원의 선거보조금을 챙겼다. 국민의힘은 지난 22일 공천을 받지 못한 지역구 의원 5명의 당적을 비례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로 옮겼다. 지역구 의원 5명을 채워야 국민의미래가 기호 4번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뒤늦게 파악해 이 같은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2일 총선 후보 등록을 마감한 결과, 비례대표 후보 등록을 신청한 정당은 총 38개다. 현재 20개 정당의 등록이 완료됐고 18개는 심사 예정이다. 정당 38곳 모두 선거 참여가 확정되면 투표용지 길이는 51.7㎝가 된다. 비례대표 할당 하한선인 ‘정당 득표율 3%’를 넘기면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에 신생정당이 난립하는 모양새다.

유권자로서는 긴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불편하다. 지지 정당 이름을 찾기 어렵고 자칫하면 실수해 무효표를 양산한다. 실제로 21대 총선 비례대표 선거에서 122만 개의 무효표가 나왔다. 35개 정당 중 비례대표 당선자를 낸 정당은 5개에 불과했다. 표의 비례성을 높이고 정치적 다양성을 보장한다는 취지가 무색하다.

지난 총선에서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놓고 비판이 이어졌다. 여야는 이를 개선하겠다고 했으나 변함이 없다. 정치권은 비례대표제 개선 방안을 반드시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