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돌아서면 바위보다 더 단단하다는 말이 있다. 부산 울산 경남이 하나의 정신으로 미래 담론을 만들던 시절의 기억이 어느새 가물가물하다. 게다가 총선을 치르다 보니 부울경 안에서도 서로 쪼개고 나누고 하는 지역할거 인심이 실핏줄같이 갈기갈기 흩어진다.
그런 가운데 서울에서 ‘부울경’ 하는 소리가 들려 귀가 활짝 열렸다. 지난 3월 20일 모 경제 언론사의 비전코리아프로젝트 발표에서 한국의 미래 번영전략으로 수도권 편중 발전과 견줘 이제는 부울경을 글로벌기업 메카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책적 주장을 제시한 것이다. 참으로 반갑고 지당하고 감격스러운 공론화가 아닐 수 없다. 그 주장의 골자는 부울경을 아시아의 더블린으로 키우자는 것이다. 대서양의 북쪽으로 치우친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이 요즘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기업들이 즐겨 찾는 기업도시가 된 것을 벤치마킹해 부울경 미래 모델로 제안했다.
세상은 참으로 격변을 거듭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은 상호보완이 아니라 지배와 배제의 얼룩을 남기기 시작하고, 하나의 지구는 이제 서랍 속으로 들어간 해묵은 어젠다로 점점 빛이 바래간다. 여기서 시대의 중심을 관통하는 커다란 줄기의 결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도시나 기업, 개인들의 현명함과 기민함의 차이가 후일 엄청난 차이와 후과를 남길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의료 주택 일자리 물가 문제 등이 가장 비등해진 체감 이슈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미국 등 서구 선진국 증시의 신고가 일변도 주식시장이 보여주듯 혁신적인 글로벌기업들의 주가는 치솟고, 그로 인해 예상 밖의 시장 확대와 부의 창출이 휘몰아치고 있다. 경제 단위도 어느새 조 원 단위에서 경 원 단위로 무려 만 배가 뛰었다. 실제 미국의 가장 큰 자산운용사의 자산운용 규모는 우리 돈으로 1경 원을 넘보고 있다. 기업 가치가 경 원을 오르내리는 것은 주식시장에서도 예감이 된다. ‘매그니피센트 7’이라는 초거대 7개 기업의 요즘 시가총액의 합을 더하면 1경 원이 넘는다. 호사가들이 말하는 ‘돈의 가십’이 아니라 시대의 기준과 사이즈가 변하는 광대한 새 역사의 태동 같은 기세다. 거대기술, 거대기업, 거대자본, 거대도시가 등장하는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이런 시기에 언론이 마련한 국가 미래전략의 지역발전 방안에서 부울경이 등장한 것이다. 나라 전체에서 보는 시각에서 부울경의 역할이 커지고, 전도가 창창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말 웅장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번 주장에서는 반대로 거대한 도시전략으로 부울경이 연합해 국제적인 수준과 범위로 지역과 도시 활동을 격상하지 않으면 시대 흐름에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감추지 않았다. 부울경을 국제적인 기업들이 가장 좋아하는 최적의 지역으로 만들라는 주문을 하면서 더블린을 예시했다. 그런데 정세를 세밀히 들여다보면 독일의 변화에서도 부울경은 잠재력과 비전이 도드라진다. 독일은 함부르크를 주변으로 하는 여러 도시에 기업을 옮기거나 신설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석탄과 중화학, 매연, 도시의 혼잡과 낙후 등으로 얼룩졌던 함부르크의 혁신 변모가 이 지역 혁신의 견인차이다. 그중에서도 함부르크의 생산지역과 항구지역 변신이 기폭제 구실을 한다.
이런 사례는 스웨덴 남부에서도 발견된다. 덴마크를 사이에 둔 말뫼라는 도시의 혁신과 창조가 지역 리더 역할을 한다. 그곳도 글로벌기업들이 찾아오는데, 주된 유인 동기는 혁신된 항구와 생산지역의 미래지향적 도시기반 확충이다. 강과 바다, 생산도시의 존재는 역사의 재귀적인 에너지이다. 생산도시 출신의 부울경이 공유한 바다와 강의 미래 역할과 지역연결을 다시 담대히 생각해 볼 일이다.
부울경이 연해 있는 동해와 남해를 낙동강을 매개로 연결하면 좋겠다. 경남 남부의 해안과 부산과 울산 지역의 해안은 멀지 않으며, 낙동강은 그 종심으로 흐른다. 전문가들이 더 들여다보아야 하겠지만, 김해 양산 밀양 언양 등 적절한 루트를 찾으면 운하로 강과 바다를 이어 부울경 생산지를 연결할 수 있겠다는 욕심이 난다. 서울에서도 부울경 글로벌 기업도시 미래에 축복을 보내는 지금(마침 선거철인데) 정치가들이 부울경의 바다와 강의 물줄기 연결 구상을 받아 갈 생각은 없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