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논란을 비껴가지 못했다. 오히려 더 큰 비판을 불러 모았다.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말이다. 지난 1963년 제6대 총선 때 ‘전국구’라는 이름으로 도입돼 이미 환갑을 지난 나이. 탄생 때부터 지금까지 정치권의 대표적 욕받이 노릇을 해왔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여당의 안정 의석 확보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야당은 ‘특별당비’라는 공천헌금을 통해 정치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했다. 민주화 이후 나름 환골탈태하긴 했다. 비례대표로 이름을 바꾸며 걸맞은 의석 배분 비례성과 투명성을 제고한 것. 결정적 계기는 지난 2001년 헌법재판소의 ‘1인 1표 비례대표제’에 대한 위헌 결정이었다. 정당에 대한 투표를 따로 하지 않고 지역구 후보자에게 행해진 투표를 각 정당의 비례대표에 대한 투표로 간주해왔던 걸 헌법 위반으로 판시한 것. 이에 따라 2004년 제17대 총선부터 지역구 투표와 비례용 정당투표, 각각 1장씩의 ‘1인 2표제’가 시행됐다. 별도 정당투표 덕에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군소정당이 잇따라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그간 지역구 소선거구제에 막혀 사표(死票)가 돼 버렸던 민심 일부가 의석에 반영됐다. 아울러 비례 의석 50%를 여성에게 할당해 젠더 불균형을 보완했다.
그래도 표심이 오롯이 의석에 반영되기엔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다양한 민의는 국회 밖에서 겉돌았다. 그래서 4년 전 제21대 총선부턴 준연동형비례제가 도입됐다. 정당이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 비율이 비례투표의 정당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면, 그 정당 지지율에 맞춰 비례 의석을 더 채워주되 절반만 보전키로 한 것. 문제는 당시 이에 극렬히 반대했던 제1야당이 꼼수를 통해 제도 개선 취지를 무산시켜 버렸다는 점. 비례 후보만 내는 위성정당을 만드는 대신 모당(母黨)은 지역구 후보만 공천해 연동형 계산에 따른 불리함을 비껴간 것이다. 그러자 준연동형 도입에 앞장섰던 여당 또한 똑같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대응에 나섰다. 표심의 등가성을 제대로 반영한 의석 배분이라는 명분보다 다수당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정치 현실을 먼저 좇은 것. 결과적으로 제1당 수성에 성공했다. 비난을 피해 가진 못했다. 그래서 지난 대선 때 내건 정치개혁 1호가 위성정당 포기 약속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수표가 돼버렸다. 대선 패배로 야당이 되자 또다시 현실을 들먹이며 위성정당 창당을 강행했다. 원래 준연동형을 반대했던 현재의 여당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똑같이 대응에 나섰다. 4년의 세월 흘러도 되풀이된 거대 양당의 정치 꼼수. 비난 여론이 빗발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다 양당 비례 후보 순번 작업 역시 모두 욕먹을 만했다. 진보세력과 연대하고 시민사회 추천까지 받아 나름 연동형 취지를 살리려 했던 제1야당. 시민사회 추천 후보가 종북 논란에 휘말리자 직접 개입해 후보 3명을 바꿔버렸다. 특히 자체 후보의 경우 밀실에서 깜깜이로 순번을 정해 당내에서조차 비판이 터져 나왔다. 여당 역시 도긴개긴. 후보 명단이 공개되자 공개적 반발과 충돌이 이어졌다. 사실상 대통령 뜻을 반영한 이른바 ‘친윤’ 중진의 딴지에 뒤늦게 후보 조정이 급하게 이뤄졌다. 이 와중에 급부상한 조국혁신당도 입길에 올랐다. 당선권 10번 순위 안에 무려 4명이 재판이나 수사 대상자 신분이었던 것. “비례대표제가 사법도피처냐” “자신들의 복수혈전 무대냐.” 비난 뭇매가 쏟아졌다. 이런 탓에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논란은 다시 무용론을 넘어 폐지론으로 번질 기세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비례대표제는 죄가 없다. 숱한 곡절 속에서도 60년 넘도록 우리 선거제도의 한 축을 묵묵히 감당해왔다. 각 직역의 전문가 발탁, 가부장적 문화에 위축된 여권 신장, 다양한 정치 목소리 반영, 표심의 등가성 보정, 극한 진영 대결 완충 등. 그간의 노고를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이런 긍정성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비례의석을 오히려 더 늘려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23개(하원 기준) 나라가 비례대표 100%로 국회의원을 뽑는다. 대표적 복지국가 스웨덴·핀란드·덴마크·네덜란드 등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나라는 행복도 조사, 민주주의 지수, 부패인식 지수 등에서 늘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선거에 나타난 민의가 그대로 의석에 반영되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이 이뤄지는 정치 덕분이다.
결국 우리 비례제 역시 제도가 아니라 이를 운용하는 사람과 정치문화의 문제다. 총선 결과가 어떻든 비례제의 정상화를 위한 각성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당장 위성정당 꼼수를 막기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 이미 국회엔 정당보조금, 선거보조금 지급 금지 등 각종 제지 방안을 담은 법률이 제출돼 있다. 아울러 정당 내 후보 순번 결정에서 민주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 현행 선거법에 규정돼 있는 ‘민주적 심사 절차’와 ‘민주적 투표 절차’를 보다 엄격히 적용 만해도 된다. 필요할 경우 아예 유권자들이 정당이 제시한 명부를 놓고 순번을 투표로 정하는 방안도 도입할 만하다. 대책은 다 나와 있는 셈이다. 각 당의 인식과 의지만 있으면 된다. 독자 여러분들께 감히 말씀드린다. 이번 총선에 이를 유의해서 신중하게 투표하시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