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투자증권 부산WM센터 차호중 부장

세계 조선업의 선두주자는 일본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숙련된 현장인력이 사라지면서 경쟁력이 없어졌다. 배의 설계는 ‘기본 및 상세설계’와 ‘생산설계’로 나뉜다. 보통 설계팀에서 ‘기본 및 상세설계’를 해서 현장에 주면, 그 설계도면을 보고 경험이 많고 숙련된 현장인력이 배를 만든다. 일본은 여기에 ‘생산설계’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생산설계는 설계도면을 보고 용접기술만 있으면 숙련된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배를 만들 수 있도록 생산 공정을 세밀하게 설계하는 방식이다.

생산설계가 정착되자 숙련 노동자에 대한 필요가 줄어들어 현장의 위세가 약해졌고, 본사설계팀의 힘과 조직이 커졌다. 문제는 일본 조선사들은 설계조직이 비대해지자 비용을 줄이려고 표준화를 도입한 것에 있다. 표준화는 한 척씩 따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처럼 표준모델을 정해놓고 일부 옵션만 추가 설계하는 방식이다. 표준화가 정착되자 숙련된 노동자에 이어 본사설계팀도 필요성이 줄어들게 되었다.
실제 조선업은 오랜 기간 경험이 쌓인 숙련된 노동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일본은 액화천연가스(LNG)선을 설계할 수는 있지만, 숙련공이 부족해 친환경 선박을 제대로 못 만들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조선업이 호황이었던 시절 대비 울산과 거제조선소의 근로자수는 반 토막 난 수준이다.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 중 하나가 숙련된 조선소 근로자들인데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로 대체되면서 숙련도와 소통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결국 임금문제가 해결되면 된다. 새로 건조하는 선박가격인 신조선가가 올라가면 비싼 가격에 수주 받은 배를 건조할 수 있고, 조선사들도 흑자구조로 전환되어 현장인력에 대한 인건비를 올려줄 수 있는 여력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조선소들도 인건비 상승을 감안해 보다 공격적인 사업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중국에서는 수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때문에 배가 많이 필요했다. 수요는 많은데 배가 모자라자, 주문이 빗발쳤다. 1척만 필요한 선사들도 10척을 주문해서 9척을 용선으로 빌려주는 게 돈이 되는 시기였다. 대량발주 는 집단으로 뭉쳐서 즐기는 문화와 빠른 건조 속도와 효율적인 업무처리에 강점이 있는 우리나라 조선업에 활황을 가져다주었다. 배가 부족해서 인도만 받으면 돈이 되는 시기였기에 글로벌(Global)선사들이 빨리 배를 만드는 한국 조선소로 수주가 몰리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업무를 매뉴얼(Manual)대로 진행하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 조선업이 속도 면에서 확연한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조선사들은 주로 건설을 하던 회사들이 조선으로 영역을 확장해 넘어오다 보니 설계를 별로 중요히 여기지 않았다. 외국에서 설계를 사오고 현장인력에 중점을 두는 문화가 한국 조선업의 기본적인 모습이어서 플랜트 수주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있었다. 플랜트는 한척이 비싼 대신, 동일한 선박을 대량 발주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조선업은 항해용 선박뿐 아니라 깊은 바다에서 석유, 천연가스 등을 추출하는 해양 플랜트 같은 기타 비항해용 선박까지 제작하는 산업을 포함한다. 선박을 제작하는 과정을 ‘건조’라 한다. 선박은 사용목적에 따라 상선, 특수 작업선, 어선 등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조선사는 보유한 제조 기술력의 차이에 따라 주력해서 제작하는 선박의 종류인 ‘선종’이 다르다. 우리나라 조선 빅3사는 주로 상선을 제작한다. 조선 빅3사는 HD한국조선해양(구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이다.
상선은 조선업 시장에서 중요한 바로미터(Barometer; 척도)가 된다. 전 세계 수출입 화물 대부분이 바다를 통해 이동되고, 해상운송을 담당하는 해운사들이 바로 이 상선을 통해 화물을 운송하기 때문이다. 한 때 전체 수출입 물동량의 99% 가까이 상선을 통해서 했고 나머지만 항공운송에 의해 의존한 적이 있다. 상선의 거래는 배를 필요로 하는 전 세계 해운사들이 ‘발주’를 낸다. 조선사들은 ‘수주’를 따기 위해 경쟁을 한다. 조선사들 입장에서는 글로벌(Global)시장에서 수주를 받기위한 사업경쟁을 하는 입장이라 조선업을 기간산업(Key Industry)으로 육성하는 국가들 간에는 가격과 기술경쟁이 치열하다.

HD한국조선해양(구 현대중공업)은 LPG운반선 건조에 특화되어 있다. 특히 중형 LPG운반선에 큰 강점을 가진다. 삼성중공업은 대형 컨테이너선 분야에서 탁월하다. 기본적으로 컨테이너 TEU는 20피트(길이 6.1m, 폭 2.4m, 높이 2.6m) 컨테이너를 선박에 몇 개나 실을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단위다. 1만 2000TEU급 컨테이너란 20피트 컨테이너를 1만 2000개 실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배의 크기로 보면 길이 334m, 폭 48.4m정도다. 한화오션은 초대형 유조선(VLCC)분야에 특화되어 있다.
배 한척을 건조하는 데는 배의 크기와 회사가 보유한 기술력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통상 선박 수주로부터 인도까지는 2~3년이 걸린다. 미리 배를 건조해 놓고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수주를 받고 주문에 따라 건조에 착수하기에 그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주문이 일률적이 않은 이유는 선박이 어떤 항로를 지날지, 어떤 화물을 싣게 될지, 선주의 취향이 어떤지에 따라 설계에 차이가 있기에 주문 제작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업은 선박의 수요를 결정하는 해운업의 영향을 받는다. 해운업은 세계 경기와 교역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교역량이 증가하고 운임이 증가하면, 자연히 선박 발주량이 증가하고 조선업 역시 호황을 맞이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업 역시 글로벌(Global)경기와 유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한다. 조선업의 사이클(Cycle)에 해운업의 영향과 노후선박 대체, 투기심리, 규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주어 7~8년 주기로 온다. 과거 선박 신규 발주의 슈퍼사이클은 30년 주기로 왔었다.

시장에서는 1973년, 2003년을 각각 1차, 2차 조선업 슈퍼사이클로 보고 있다. 30년 주기라면 2033년 정도가 다음 3차 슈퍼사이클(Super Cycle)이 맞지만 이러한 슈퍼사이클 주기가 당겨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친환경 비즈니스(Business)’로의 전환에 기인한다. 이로 인해 한국의 조선업이 다시금 글로벌(Globl) 시장에서 조선업 강국의 자리를 되찾을 전망이다. 과거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일본이 조선 강국이었다면 90년대부터는 한국이 앞서 언급한 특유의 분위기로 시장에서 조선업 최강의 모습을 보였다.
한 때 중국이 한국을 앞지르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가 필요한 배는 우리가 만든다’는 슬로건(Slogan)아래 중국이 조선업을 성장 동력으로 밀며 자국에서 필요한 선박의 발주물량의 70~80%를 자국 조선소에서 제작하도록 하면서 조선업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 때 글로벌(Global) 시장의 선주들이 중국의 국책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으며 중국 선박수주를 늘려갔었기에 중국 조선사들이 전 세계 여타 조선사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수주를 싹쓸이 했던 시기였다.

지금은 조선 3사인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에 향후 3년 반의 일자리가 쌓여있는 상황이고, 국제해사기구의 환경규제로 인한 친환경선박 수요도 남아있다. 조선 3사는 현재 주력인 LNG선박과 미래형 기술인 메탄올, 암모니아 선박까지 최고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유럽도 LNG(Liquefied natural gas; 액화천연가스)를 많이 쓰고 카타르, 모잠비크 등에서도 LNG를 개발하고 있어 상당기간 더 LNG 운반선에 대한 수주가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IMO 환경규제에 맞추기까지는 갈 길이 멀고, 우리 조선 3사의 기술력이 있다 보니 꾸준한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3사는 신기술을 적용한 선박 발주 시 가장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2020년부터 시작된 호황으로 이미 3~4 년 치 일감을 쌓아놓고 있다. 신규 건조선박 가격을 나타내는 신조선가 지수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최고 수치에 근접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2000년대 중반에 발주한 선박의 교체시기가 다가옴에 따라 올해를 저점으로 적어도 내후년까지 선박 발주량이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해사기구인 IMO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2008년 대비 100% 줄일 것으로 요구하고 있고, 유럽연합(EU)으로부터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친환경 선박발주가 이어지고 있다. 노후 선박 교체수요 증가에 힘입어 대한민국 조선업에 긍정적인 모멘텀(Momentum)을 제공했음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