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SNS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질문이다. “엄마,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떻게 할 거야?” “자기야,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떻게 할 거야?”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케 하는 이 물음은, 외형이 달라진다 해도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일종의 애정 테스트다. 그리고 그 물음 속에는, 바퀴벌레가 인간보다 흉측한 생물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어린 시절, 낚싯대를 든 아버지 따라 방파제에 갔다가 스스슥 움직이는 바퀴벌레 떼를 보고 기겁을 한 적이 있다. 샌들 신은 맨발에 더듬이가 닿을까 어찌나 무서웠던지. 아버지는 바퀴벌레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것’의 이름을 따로 알려주지는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부산에 와서야 알게 된 그것의 이름은 ‘갯강구’. 그리고 지난겨울 우연찮게 또 한 번 갯강구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저희 호텔은 내부 시설에 대한 정기적인 방역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갯강구는 바퀴나 파리와 같은 해충이 아니라 갑각류입니다. 연안의 갯바위, 방파제 사이의 ‘부지런한 청소부’입니다.”
영도구 동삼2동의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본 문구다. 안내문이 붙기까지의 전후 사정은 다 알 수 없으나, ‘방역’과 ‘해충’이라는 단어로 미루어 짐작건대 갯강구를 해충으로 오해한 방문객들의 항의가 꽤 잦았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 생김새만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하지만 갯강구는 연안의 음식물 찌꺼기와 각종 유기물을 먹고 살아가는 ‘부지런한 청소부’라고 한다. 부끄럽게도,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동삼2동은 긴 세월 동안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토박이분들이 많은 동네다. 그러나 바다 일부가 매립되고 몇 년 전부터 대단지 아파트와 호텔이 지어지기 시작해, 이젠 항구에 우뚝 선 고층 건물들이 작은 어선들을 내려다보는 형국이 되었다. 매립 전 갯벌에서 지렁이를 잡아 낚시했던 과거를 아직 기억하는 주민분들께 갯강구는 갯지렁이만큼이나 친숙한 생물일 터. 하지만 휴양을 위해 바닷가 호텔을 찾은 관광객의 시선 속 갯강구는 혐오스러운 해충에 불과한 것이다. 비록 오해가 빚어낸 해프닝이라고는 해도, 내겐 꽤 씁쓸한 깨달음이었다. 나 역시 그동안 갯강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 ‘징그러운 그것’으로만 여겨왔을 뿐, 한 번도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으니까.
어촌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전에 없던 빌딩풍이 생겨나고 바람길과 물길이 바뀌어 어업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오션뷰’를 위해 새로운 아파트를 짓고 나면, 그로 인한 변화는 바다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온 원주민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영도뿐만 아니라 부산 곳곳에서 벌어지는 문제다. 이러한 개발을 지켜보는 나의 입장은 언제나 모순적이었다. 센텀시티의 마천루가 부산 대표 이미지로 인식되는 것은 아쉽다. 그러나 전세보증금을 걱정하는 청년으로서, 신축 아파트에 살아보고픈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지역의 다양한 삶의 형태가 보존되길 바라면서도, 바다가 훤히 보이는 루프톱 카페에 올라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면 나 또한 관광객이 되어 부산을 소비한다.
다시, 갯강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미얀마 북부에서 9900만 년 전의 암모나이트가 발견되었는데, 그 암모나이트를 가두고 있던 호박 속에는 40여 종의 생물과 함께 갯강구도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갯강구는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생물종이다. 갯강구 어르신이 볼 때 우리 인간은 귀여운 코흘리개에 불과할 것이다. 잠깐 살다 흙으로 돌아갈 존재들이 바다 위에 콘크리트를 붓고 철근을 심어 더 높은 집을 지으려고 애를 쓴다. 아무리 좋은 위치에서 바다 조망을 선점했다 한들, 바다는 그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는데 말이다. 문명 그 이전에도 지구는 존재했음을 생각해 보자. 갯강구와 바퀴벌레 입장에선 인간이 이주민이고 ‘굴러온 돌’이다.
기온 상승으로 해수면이 높아지는 현실 앞에, 이제 우리에겐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이라는 물음보다 더 큰 상상이 필요해졌다. 갯강구를 친구 삼고 갯지렁이를 동료 삼던 과거처럼, 인간과 다른 외형을 가진 존재들과의 아름다운 공생을 고민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