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사회 일각에서 제주 4·3사건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 발언이 심심치 않게 반복되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미화한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현재 진행 중인 진실화해위원회의 과거사 진상규명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2005년 5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기본법(과거사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이 법에 근거해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한 것이 그 해 12월이니 벌써 19년 전의 일이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약 4년 6개월 동안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을 비롯해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권위주의 시기에 일어난 국가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진실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조사 활동을 했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과거사 청산 운동의 상징적 기관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조사 기간의 제한과 조사 인력 부족 등으로 진실규명이 필요한 수많은 사건을 미완의 과제로 남겨 놓아야 했다. 또 정부 주도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피해자 유족 중 일부는 이른바 ‘빨갱이’에 대한 트라우마로 진실규명 신청조차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 종료 이후 피해자 유족들의 활동 재개 요청이 잇따랐고, 21대 국회가 청원을 받아들여 과거사기본법을 개정함으로써 2021년 5월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활동이 재개됐다.
지난 1월 정부는 과거사기본법에 따라 오는 5월 26일로 3년간의 활동이 마감되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기간을 1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위원회의 조사 활동을 마무리하기엔 미결 과제가 너무 많이 남아 있어 시한 연장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조사 기한 연장 없이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측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현재 진실화해위원회를 이끄는 김광동 위원장 취임 이후 과거사 정리 사업이 종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오던 터라 필자에게도 위원회의 활동 기한 연장은 다소 의외였다.
김광동 위원장의 취임 이후 진실화해위원회의 과거사 진상규명 활동이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과 관련한 진상규명이 지체되는 것에 대한 유족들의 불만은 쌓였고 최근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이미 진실규명한 피해자에 대해 부역 행위 여부를 재조사하겠다고 해서 논란의 불씨를 더욱 키우고 있다. 전시에는 민간인에 대해서 즉결 처형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놔 시민사회와 학계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던 위원회의 수장이 이미 진실규명된 학살 피해자들에 대해 부역 여부를 재조사하겠다고 해서 큰 파문이 일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지난 3월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학계와 법조계 인사들이 모여 이러한 방식의 조사 활동이 과연 진실화해위원회의 정당한 역할인지를 묻는 토론회가 열리기까지 했다.
진실화해위원회 내 일부 위원들의 인식이 무리수를 낳고 있다는 것이 세간의 대체적 평가이다 보니 장차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이대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활동이 계속 진행된다면, 지금까지 어렵게 쌓아온 과거사 청산의 성과마저 크게 훼손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살펴볼진대 ‘과거사 청산위원회’를 통한 ‘과거사 청산’이 반드시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국가에서 보듯 일시적 과거사 청산 기제가 작동되었다가 정권 교체로 구 지배세력이 재등장해 과거사 청산의 성과를 수포로 돌리거나 과거사 청산 자체를 중단하는 일도 없지 않다. 우리 사회 또한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과거사 청산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공고히 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법률적, 제도적 정비는 물론 보다 더 실효적인 과거사 청산 운동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그 대안으로 과거사 청산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또는 숙의기구의 설치를 제안해 본다. 실제로 과거사 청산을 정부 산하의 ‘위원회’에만 맡기지 않고, 사회적 숙의기구를 설치해 성공적으로 과거사 청산을 이루어낸 사례가 있다. 1999년 설치된 칠레의 ‘인권원탁회의’가 그것이다. 칠레 정부는 정부기관 인권단체 종교계 군부 법조계 인권단체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하는 숙의기구 내의 협의를 통해서 과거사 청산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성공적인 과거사 청산을 해낼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총선이 끝나고 제22대 국회가 개원하면, 과거사법 개정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정치권과 시민사회 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제대로 된 과거사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민주주의의 시대적 과제인 과거사 청산을 올바르게 마무리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