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 지난 에어프라이어를 이제야 장만했습니다. 인류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어떤 냉동 제품이라도 금세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지니 말이죠. 그동안 구매를 망설였던 저 자신을 자책할 정도로 만족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배달앱 자체를 들어가지 않습니다. 냉동 제품을 미리 구매했다가, 에어프라이어로 저렴하게 먹죠. 게다가, 잠깐의 식탐을 해결할 양만큼 먹을 수 있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에어프라이어 찬양꾼이 된 제가 어느날 길거리를 둘러봤습니다. 여전히 돈가스와 치킨, 피자 가게가 많더군요. 에어프라이어로 대체가능한 식품을 파는 가게가 말이죠. 에어프라이어로 훨씬 경제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살아남은 가게는 어떤 곳일까요. 대학생 시절, 학교 앞에는 1500원짜리 커피 가게가 즐비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물가는 오르는데, 오히려 커피 가격은 더 떨어졌습니다. 위기에 내몰린 사장님들이 가격경쟁력을 내밀기 시작한 겁니다. 커피를 사 먹는 우리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게끔 했죠. 하지만 한 곳은 달랐습니다. 1500원을 유지했습니다. 한 푼이 아쉬운 학생으로서는 옆 가게로 가면 됐지만, 그곳은 유난히 손님이 많았습니다. 가끔 줄도 섰으니까요.
합리적 인간은 에어프라이어로 튀김 요리를 먹고, 같은 커피 맛이라면 조금 더 저렴한 곳에서 구매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왜냐면, 살아남은 곳에는 거길 가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치킨 브랜드는 잘 튀긴 치킨이 아니라 고유의 양념 맛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튀기는 것은 숙련되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양념 맛은 오직 거기서만 먹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돈가스 가게는 훨씬 세분화됐습니다. 중간지대의 돈가스는 사라지고 있죠. 에어프라이어로 따라잡을 수 없는 맛과 퀄리티로 업그레이드한 겁니다.
1500원짜리 커피를 팔았지만, 줄 서던 카페는 점원의 복장부터 달랐습니다. 비록 저가형 커피였지만, 그들은 하얀색 와이셔츠에 깔끔한 앞치마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커피 하나를 만들더라도, 분쇄한 커피 가루의 용량과 커피 추출 시간을 체크했죠. 허투루 만들지 않고 있다는 일종의 퍼포먼스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달랐습니다. 같은 것을 같지 않게끔 한 건데요. 상대방이 쫓아오기 힘들거나 귀찮아서 하지 않을 법한 진입장벽을 세웠습니다.
저는 시사 뉴스레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업 초기, ‘이미 세상에 즐비한 뉴스를 돈 받고 팔겠다니’라며 우려하던 주변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하지만 일반 구독자는 2만 명을 돌파했고 누적 유료 구독자는 1800명을 넘어섰습니다. 만일 제가 에어프라이어에 나올 돈가스를 내놨다면 혹은 1500원짜리 커피를 1300원에 팔겠노라 외치고만 있었다면 철저히 외면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다르게 하기’에 집중하며 디테일을 살리기에 초점을 맞춘 덕분에 먹고 살죠.
하지만 다르게 하는 것은 힘듭니다. 몸과 마음이 피곤한 일이죠. ‘굳이 왜?’라는 의문점을 뛰어넘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다르게 한다고 해서 쉽사리 성과가 도출되지 않습니다. 사장님이 서류를 넘기기 쉽도록 스테이플러 철심을 사선으로 찍었다고 한들, 사장님이 쉽게 눈치채지 않습니다. 영업을 마친 식당에서는 하루 정도 청소를 건너뛴다고 해서 큰 문제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 넘기면, 세상에 큰 어려움은 없으니까요.
다만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으며, 누군가의 시선은 평판으로 이어집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무엇이 더 좋고 더 나쁘다는 것을 쉽게 알죠. 영국의 정치인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 번도 달걀을 낳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달걀이 상한 것인지 싱싱한 것인지는 가려낼 수 있다.” 처칠이 미술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자, 미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평가한다며 제기된 불만을 재치 있게 응수한 발언입니다.
결국, 다르게 한다는 것은 당장 불필요해 보여 ‘굳이 왜?’라는 질문에 때때로 가로막힙니다. 다르게 한다고 해서, 결과물까지 곧바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죠. 야속하게도 사람들은 금세 눈치를 채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나를 찾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마련해주는 무기가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