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6대 왕 고종(1852∼1919)은 커피와 디저트를 즐긴 미식가다. 고종은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1895) 이후 궁내의 친일파 세력이 자신을 독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미국인 선교사들이 궁 밖에서 만든 음식을 철가방에 담아 자물쇠에 채워 배달했다. 이후 철가방은 배달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집 배달은 공짜였다. 프랜차이즈 가게도 그 당시엔 별도 요금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 2010년 12월 배달의민족(배민)이 등장했다. 전단지가 없어도 음식 주문을 쉽게 할 수 있어 혁신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처음엔 업주가 배달료를 내고 소비자는 공짜 혜택을 봤다. 하지만 배달기사 부족, 단건 배달(한 번에 한 집만 배달) 도입, 수요 폭증이 맞물려 배달료가 상승했다. 소비자들도 편리해진 만큼 비용 부담을 지게 됐다.
코로나19사태는 배달 플랫폼 업체 전성시대를 만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배달 이용이 급증하면서 배달료가 인상됐다. 배달 음식 온라인 거래액은 2020년 17조3000억 원, 2021년 26조2000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코로나19사태가 끝나면서 외식이 늘고 물가도 올라 배달료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이로 인해 배달 플랫폼 업체 수지가 지난해 처음으로 역성장했다.
시장이 정체되자 배달앱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배민 요기요 쿠팡이츠가 최근 ‘배달료 0원’을 선언하고 고객 사수 전쟁에 돌입했다. 경쟁의 시작은 쿠팡이츠가 쿠팡 유료 멤버십 회원에 한해 배달 서비스를 무제한 제공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이후 업계 1위인 배민은 이달부터 알뜰배달 무료와 주문 음식값 10% 할인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요기요도 무료 배달 행렬에 동참했다. 원래 배달료는 소비자와 음식점주가 절반씩 부담한다. 소비자 대신 배달 플랫폼이 책임지는 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정책일까. 배달앱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면서 음식점주들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음식점주가 낸 건당 배달료는 평균 3473원이었다. 음식점주들이 배달앱의 높은 수수료를 전가하면서 외식 물가가 크게 올랐다. 배달 플랫폼 업체 간 출혈 경쟁을 통해 시장에는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곳만 남게 될 것이다. 경쟁이 사라지면 배달 플랫폼의 횡포에 속수무책이 된다. 무료 배달이 마냥 반갑지 않은 이유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