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는 여러 형태의 자리를 마련해 주요 현안을 설명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안의 중요도와 관심도에 따라 시장이 직접 진행하는 기자회견부터 부시장 등이 참석하는 공식 브리핑, 실·국장이 주로 나서는 백브리핑 등이 있다. 지난해 2030세계박람회 유치 실패 직후 박형준 시장이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에게 사과했고, 이준승 행정부시장은 최근 백브리핑을 열어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전에 부산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시의 공식 입장을 전했다. 통상 관련 보도자료는 사전에 배포되지만 보도 시점은 기자회견이나 브리핑 이후로 정해진다.
그런데 지난달 15일 오후 시청 기자실에서는 이례적인 일이 있었다.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와 관련해 이병석 시 환경물정책실장 주재로 ‘간담회’가 열린 것이다. 부산시와 경남 의령군이 상생발전 협약을 체결하고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낙동강 유역 맑은 물 공급체계 구축) 사업에 협력하기로 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2030엑스포 유치 만큼이나, 오히려 시민 입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을 시장이 공식 기자회견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라 담당 간부가 간담회를 통해 설명한다는 점에서 의아했다. 더욱이 사전에 배포된 보도자료는 이날 오전 7시 이후를 보도 시점으로 정해 간담회 전 이미 온라인에는 수십 건의 기사가 보도된 터였다.
간담회가 진행되는 동안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시는 보도자료에서 ‘박형준 시장이 직접 서명한 협약을 통해 30년 숙원인 맑은 물 공급의 첫 발을 내디뎠다’고 강조했으나, 간담회에서는 “워낙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의령군은 물론 남은 협약 대상인 창녕, 합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팩트’ 위주로 보도해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대대적으로 알려야 할 대형 이슈를 오히려 축소하려 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이상한’ 간담회가 있은 지 2주 만에 또 다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의령군이 부산시에 협약 해지를 통보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의령군은 ‘주민 동의 없는 정책 추진이 어렵다’는 설명과 함께 시에 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런데 시는 이와 관련, 백브리핑은 물론 간담회조차 마련하지 않았고, 보도자료를 통해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의령군이 부산시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쳤는데도, 행정기관 간 공식적으로 체결한 협약서가 휴지 조각으로 변할 상황에 놓였는데도 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번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이 의령군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의령군은 사전에 주민과 충분한 교감 없이 덜컥 협약을 체결해 스스로 체면을 구기고 행정의 신뢰를 잃었다. 협약 체결 이전에 의령군이 보다 적극적으로 주민과 소통하고 부산과의 가교 역할을 해줬더라면 파국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협약 해지 통보에 따른 부산시민의 분노도 고스란히 의령군이 떠안아야 할 몫이다.
부산시의 과실도 만만치 않다. 박 시장을 비롯한 시 집행부는 부산의 오랜 숙원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찾던 중 협약 카드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의 고민과 노력은 인정받을 만하다. 그러나 시 역시 의령군처럼 ‘소통’에 실패했다. 협약 체결 전까지 진행 과정을 꽁꽁 숨겼고, 체결 후에도 시민에게 제대로 알리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물 문제를 둘러싼 경색된 분위기가 창녕, 합천 등으로 확산할까 전전긍긍하면서도 대응책 마련에는 뒷짐이다. 실망에 찬 시민을 향해 사과 한 마디도 없다.
역설적으로 이번 사태를 통해 물 문제 해결의 열쇠가 무엇인지 더욱 명확해졌다. 합리적인 명분과 타당성이 있더라도 주민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취수지역 주민의 가장 큰 우려가 무엇인지, 농민들에게 줄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인 혜택이 무엇인지 찾아내 꾸준히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이 과정을 언론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는 것 또한 지자체의 몫이다. 비단, 물 문제 뿐만 아니라 모든 정책 추진 과정에서 소통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는 것을 시가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병욱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