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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해병대원의 공개편지

  •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   입력 : 2024-05-08 19:46:3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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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편지는 대개 의견을 전달할 통로가 막혔을 때 쓴다. 프랑스 대문호 에밀 졸라가 1898년 ‘로로르’지에 기고한 ‘나는 고발한다!’가 대표적이다. 졸라는 ‘수신인’이 대통령인 공개편지에서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유대계 프랑스 장교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한다. 각성한 프랑스 지식인들이 재심 운동에 동참하면서 드레퓌스는 자유의 몸이 된다. 권력과 언론이 진실을 가리려 할 때 ‘나는 고발한다’는 어김없이 인용된다.

2019년 정명희 부산 북구청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SNS에 공개했다. 기초단체의 과도한 복지비 분담으로 재정이 어렵다는 점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문 대통령은 정 청장의 주장을 “설득력 있는 문제 제기”라고 평가하면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에게 쓴 편지도 있다. 노무현재단이 펴낸 ‘내 마음 속 대통령’에 따르면 2009년 4월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려고 청원문을 썼다가 참모들 만류로 부치지 않았다. 편지엔 피의사실 누설과 증거 짜맞추기 의혹을 받던 수사팀 교체 요구가 담겨 있다.

지난해 7월 숨진 해병대 채 상병과 함께 복무했던 예비역 동료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보냈다. 지난 2일 국회가 가결한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 수용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꾹꾹 눌러 쓴 한 자 한 자가 절절하다. 그들은 “벌써 9개월이 지났다. 이만큼 기다렸으면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느냐”고 가슴을 친다. “(수해) 복구를 하러 간 우리를 아무 준비도 없이 실종자 수색에 투입한 사람은 누구인가. 서 있기도 어려울 만큼 급류가 치던 하천에 구명조끼도 없이 들어가게 한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다. 그들은 채 상병의 죽음을 이용하는 “나쁜 정치”(대통령실)와 상관 없는 평범한 20대다. “눈 앞에서 채 상병을 놓쳤던 그때”를 괴로워 하는 청춘이다.

윤 대통령은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한다. 예상질문 1순위는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이다. 윤 대통령은 어떻게 응답할까. 졸라를 기리기 위해 제작된 메달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진실은 전진하고 있다. 아무 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해병대원들 또한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를 가장 궁금해한다. 그들이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보낸 이유 또한 우리 사회가 성찰해 봐야 할 대목이다. 언로가 그만큼 막혀 있다는 방증일 수 있어서다.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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