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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경치를 탐하지 말라

세계유산 등재 옥산서원, 경치 못 보도록 건물 배치

김영랑 시인 생가 주련서 요산요수 정신 되새기길

부남철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명예교수

  • 부남철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명예교수
  •  |   입력 : 2024-05-08 19:25:54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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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논어’에 두 번째로 나오는 이 문장을 두 글자로 압축해서 정문 이름을 지은 곳이 있다.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옥산서원의 ‘역락문(亦樂門)’이다. 명필 한석봉 선생의 글씨인데 공부하러 온 사람을 반기는 뜻으로 이보다 더 친근한 이름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 서원의 강당 정면에 보이는 ‘옥산서원(玉山書院)’이라는 편액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인데, 큰 종이 4장에 한 글자씩 쓴 원본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서원의 수장고에는 오래된 ‘삼국사기’가 보물로 지정돼 보관되어 오다가 2018년에 국보로 승격됐다.

이 서원의 주인공이신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선생께서 만년에 은거했던 독락당(獨樂堂)은 서원에서 시냇가를 따라 700m 정도 올라간 곳에 있다. 이 건물도 보물이다. 이렇게 국보와 보물을 다수 간직한 옥산서원 일대는 또한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서원 앞 계곡에는 늘 맑은 물이 흐르고 작은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소리는 마음을 맑게 해준다.

그런데 역락문을 들어가 바로 앞에 있는 무변루(無邊樓)의 좁은 문을 통과해서 마당에 서면 그 2층 누각 건물이 서원 앞으로 탁 트인 전망을 가로막는다. 일반적으로 누각의 위층에는 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기둥만 있는데 여기서는 서원 밖으로 향하는 쪽이 모두 막혀있다. 마당 좌우에 서로 마주하고 있는 동재와 서재도 옆으로 흩어지는 시선을 막는다. 계단을 올라 공부하는 중심 공간인 구인당(求仁堂) 마루에 앉으면 주로 건물과 마당만 보일 뿐 밖의 아름다운 풍광은 차단돼 있다.

독락당 옆에는 시냇물에 접한 크고 평평한 바위에 기둥을 올린 간결하고 멋진 건물이 있는데 인지헌(仁智軒)이다. 안과 밖의 구분을 느낄 수 없는 그 마루에 앉으면 자신의 몸이 자연과 하나가 된 느낌을 갖게 된다. 바로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아늑하게 둘러싼 숲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이렇게 주변 경치와 전망이 좋은데 하필 어려운 철학적인 개념으로 건물 이름을 지었는가?

‘논어’에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는 문장이 있다. 왜 그렇다는 것인지 이유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다. 다만 사람들은 이 문장에서 나왔다는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사자성어를 기억할 뿐이다. 학생들에게 이 문장을 설명할 때는 산과 물이 상징하는 의미보다는 한자 공부를 위해 ‘즐거울 낙(樂)’자는 ‘좋아한다’는 뜻으로 쓸 때 ‘요’라고 읽는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수업을 진행하곤 한다.

지인이 경치가 좋은 곳에 집을 지었다고 해서 방문했더니 과연 바로 앞에 물이 있고 멀리 산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산도 좋고 물도 좋은 터에 자리 잡았다는 뜻으로 요산요수를 ‘이요(二樂)’라고 두 글자로 줄이고 ‘집 당(堂)’ 자를 붙여서 이요당(二樂堂)이라고 작명해 주었다. 산 좋고 물 좋은 그 터를 찬탄하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또한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니 앞으로도 더욱더 어질고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는 요산요수의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요당이란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 된다. 최고로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독락당에 속한 부속 건물에 ‘어질 인(仁)’자와 ‘지혜 지(智)’자를 넣어서 이름을 지은 것 역시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전남 강진군청 바로 옆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를 쓴 영랑 김윤식(金允植 1903~1950) 선생의 생가가 있다. 초가로 된 생가 옆에 동쪽으로 사랑채가 있고 그 기둥에 한시를 써서 붙인 5개의 주련이 걸려있다. 그중에 2개의 주련에 특히 심오한 뜻이 있다. 1940년에 찍은 시인의 사진에도 이것이 배경으로 나오는데, 이런 글이다. “이 마음은 원대한 도(道)를 기대하는 것이지 단지 눈에 보이는 멋진 전망을 탐하는 것이 아니다.”(直以心期遠 非貪眼界寬).

누구나 경치 좋은 곳에 살기를 원한다. 강변이나 바닷가는 전망이 좋은 곳일수록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그렇지만 정작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는 옥산서원에서는 오히려 밖을 볼 수 없게 건물을 배치했다. 주변 경치가 너무나 좋은 독락당의 그 부속 건물 이름은 지혜와 어진 마음을 강조하는 뜻으로 지었다. 영랑생가 주련에서도 역시 멀리 내다보이는 경치를 대하는 본래 목적이 무엇인가를 철학적인 차원에서 설명했다.

누구나 물 좋고 산 좋은 곳을 좋아한다. 그런 자연적인 경관이 주는 감각적인 즐거움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런 곳에 처해서 또한 어질고 지혜롭게 처신하기를 다짐하게 하는 건물의 이름과 그런 뜻을 강조한 시를 보면서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의미를 더욱 무겁게 새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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