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위험지수라는 개념이 있다. 한 지역의 고령인구와 출산 가능한 인구의 비율을 계산해 거주 인구의 재생산 가능성을 측정한 지표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몇 년째 전 세계 최하점을 기록하고 있고, 그 때문에 서울특별시를 제외한 다수의 도시가 소멸위기지역, 빨간색으로 덧칠된다.
‘소멸위기’라는 진단은 우리가 곧 절멸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기에 충분했다. 두려움에 압도되면 조급해지고, 조급해지면 단기적 성과, 가시적으로 측정 가능한 성과에만 매몰될 위험이 있다. 설익은 정책은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채 표면적인 현상에만 대응하는 오류만을 반복한다. 소멸위기 지역일수록 아래에서부터 다져진 경제·문화가 튼튼하지 않아 도시 정책 변화에 민감하다. 도시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이 살아가는 사람이 쌓아가는 목소리와 삶의 양식, 즉 문화가 아니라 정책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정책이 문화를 구축한다.
중앙과 지방정부는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편성했다. 그런데 위기는 곧 기회였던가. 모두가 서울로 떠나며 지역은 무주공산이 됐지만, 사용 가능한 자원은 오히려 증가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빈자리를 선점하는 것은 용기 있는 선발주자들이다.
전국에서 도시를 리브랜딩하는 사업이 진행된다. 속칭 브랜드 전문가가 지역의 개성을 발굴하고 로컬을 상품화한다. 특화 상품이 전국에서 나열되고, 지역은 특색 있는 관광단지로 변모한다. 콘텐츠화, 상품화되기 어려운 지역문화와 풍습은 탈락됐다. 몇 년 사이 내가 알고 있던 도시의 모습이 훨씬 단순해졌다. 분명 다양한 풍경이 있었는데 모든 노포가 베이커리가 됐고, 로스터리 카페가 됐으며, 게스트하우스가 됐다. 이렇게 소멸위기지역은 서로 닮아가고 있다.
차림표가 다른 식당은 저마다 원조이지만, 돼지국밥 거리의 식당은 저마다 자신이 원조임을 자처한다. 돼지국밥집은 살아남기 위해 투쟁을 겪고 있는데, 지역의 특색있는 거리를 기획한 전문가는 박수받으며 지역을 떠나간다. 한 지역에서 성과가 확인된 시도 혹은 콘텐츠는 금세 번져 전국에서 재생산된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콘텐츠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고, 전문가는 유사 사례에 독특함 한 스푼을 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투자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지역, 투자의 개념이 익숙지 않은 문화영역에서는 액셀러레이터가 지방 정부고, 벤처캐피탈이 중앙 정부다. 로컬 기획자의 목표는 자못 분명해 보인다. 몇 차례의 멋진 PT 끝에 장밋빛 지역을 셀링하며 투자금을 확보하고, 지역의 가치를 올린 다음 박수받으며 엑시트하는 것. 투자자인 정부가 요구했던 것처럼 지역의 생산성을 높여 세금이라는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또 다른 투자처를 찾아 지역을 옮기는 것이 전문 투자자, 아니 로컬기획자의 오늘이다.
지역문화는 각자의 삶터에서 오랜 시간 축적되고 계승하며 만들어지는, 사람에 의해 구성되는 일상생활 양식이다. 지역에서 살아가지 않은 채 헐거운 언어로 번역한 로컬은 쉬이 무너진다. 문화의 핵심은 혼종성이다. 상이한 시도가 서로 융합되고 발전하며 독특한 문화 양식을 형성한다. 하지만 장기적 안목을 갖추지 못한 도시 정책은 안전한 성과에만 집중했고, 지역의 특징과 고유성은 단순해진다.
고유성을 잃고 단순해지는 지역은 더 빠른 소멸로 나아가는 중이다. 고유성을 잃은 지역의 미래는 생태계에서 엿볼 수 있다. 기후위기로 수많은 동물이 터전을 잃었고, 살아남기 위해 서식지를 옮겨 다닌다. 이때 수많은 동물의 이종교배 사례가 발견됐다. 불곰과 북금곰의 이종교배, 일각고래와 벨루가의 이종교배 등 생존 위기를 마주했을 때 동물들은 이종교배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종교배 생명체는 유전적인 이유로 종족을 유지할 수 없다. 소멸위기과정에서 시도했던 이종교배가 오히려 더 빠른 소멸을 촉진한다.
모든 도시에서 문화와 산업의 이종교배가 진행 중이다. 도시는 로컬로, 문화는 콘텐츠로, 성과는 창업이라는 단어로 번역돼 결합한다. 단일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 단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자신의 고유한 서식지를 잃은 생명체처럼 소멸은 더 빠르게 이루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