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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소리] 기꺼이 가난을 사겠다

허태준 작가

  • 허태준 작가
  •  |   입력 : 2024-05-19 19:31:0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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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성공’에 대한 이야기가 급격하게 늘었다. 자수성가했다는 사업가들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서점에서는 1000억 원대 순자산을 보유했다는 익명의 저자가 쓴 책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도 SNS를 조금만 둘러보면 누구나 ‘월 1000만 원’이나 ‘경제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는 광고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마치 나만 빼고 모두가 성공하는 법을 알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든다.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성공을 상품으로 파는 이들은 자신이 자영업 주식 부동산 등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실상은 대부분 모호하기 그지없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뒤로 감춘 채 비싼 외제 차나 고급 아파트를 내보이며 당장의 화려함만을 강조하기 바쁘다. 의뭉스러움을 남겨둔 채 판매하는 고가의 강의나 책에 담겨 있다는 ‘비법’마저 어딘지 비어 보일 때, 자연스레 사람들은 그들에게 ‘진짜 부자’가 맞느냐고 묻는다. 검증이 시작된다. 수익을 인증하라거나 홈택스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실제로 몇몇 이들은 그 과정에서 각종 거짓말과 사기 행각이 드러나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반면 검증을 무사히 마친 ‘진짜 부자’는 철옹성 같은 발언의 정당성을 얻는다. 설령 그들이 하는 말의 내용이 부자 행세를 하던 ‘성공팔이’의 그것과 거의 유사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진짜’라는 사실 자체니까 말이다.

이는 ‘성공’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때로는 ‘가난’이 성공보다 더욱 가혹한 검증을 요구받기도 한다. 20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던 시절을 담아낸 안온 작가의 ‘일인칭 가난’에서도 유독 ‘진짜 가난’이 자주 언급된다. 의료급여 1종 수급자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약을 탈 때, 눈이 안 보이는 아버지를 부축해 행정복지센터에 갈 때, 어머니가 어렵게 벌어온 돈으로 학원에 다닐 때, 저자는 몇 번이고 자신의 가난이 진짜인지 묻는 질문들과 마주한다.

그렇다면 그는 책에서 가난을 증명하기 위해 힘쓰고 있을까? 자신의 철옹성을 견고히 하며 발언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을까? 그게 쉬운 길임에도, 저자는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 대신 책의 주어를 조심스럽게 ‘가난’에서 ‘나’로 옮겨 놓는다. 그의 경험은 모든 가난을 대표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성공 비법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는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노력할 뿐이다.

제목처럼 ‘일인칭’으로 서술되는 글이지만 책 속에서 저자의 시점은 미세하게 변화한다. 멸균우유를 지원받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른이 된 이후까지 자신을 둘러싼 가난이라는 문제를 직접 겪는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기도 하며, 가족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일인칭 관찰자 시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불행이 가난이 아니라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으로 인한 결과임을 밝혀내는 ‘일인칭 전지적 시점’까지 나아간다.

타인의 삶을 일인칭으로 보는 경험은 지금껏 외면해 왔던 우리 안의 당사자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일인칭으로 시작된 가난은 ‘일인분’으로 끝나지 않고 멀게만 느껴지던 삶을 연결하고 뻗어나가게 하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저자가 자신의 불행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확장한 것처럼, 쉬이 꺼내 보이지 못했던 각자의 아픔과 고통이 다른 이의 시점을 통해 조금씩 고개를 든다. 가난이 ‘더 쓰이고 더 팔려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난의 이야기가 두꺼워질수록, 겹겹이 쌓이고 뭉칠수록,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언어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만을 바라고, 성공에만 귀를 기울이고, 성공이야말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된 시대는 미세먼지로 가득한 도시처럼 삭막하다. 마주치는 이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검증하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서로를 비춰줄 선명하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그 뿌리가 내릴 한 줌 흙을 보태기 위해서라면 나는 고민 없이 대가를 지불하겠다. 기꺼이 가난을 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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