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우표 8종을 남겼다. 그중 하나가 80·81세 생일에 발행된 ‘리승만 대통령 각하 탄신’ 기념 우표다. 최고 권력자를 왕처럼 받들던 사회 분위기가 느껴진다. 전두환 대통령의 경호실장 장세동은 맹목적인 충(忠)의 대명사다. ‘신변보호를 넘어 심기를 편안케 해야 한다’는 어록은 유명하다. 유신정권 말기 경호실장 차지철은 “각하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는 글귀를 집무실에 걸었다. 정권의 정치 생명까지 지켜야 한다는 ‘보위 경호’가 탄생한 배경이다. 그가 부마민주항쟁이 발발하자 “탱크를 동원해 깔아뭉개자”고 한 것도 ‘박정희=국가’라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권력자 곁에는 늘 충성심을 과시하려는 무리가 넘친다. 지난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초선 의원들이 나경원 전 의원 출마를 제지하려 연판장을 돌렸다.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김기현 의원을 당대표로 당선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때 “바람이 불기도 전에 풀이 먼저 누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2022년 7월에는 윤 대통령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가 화제였다. 윤 대통령이 “내부 총질이나 하던 (이준석) 당대표”라고 하자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다. 카이스트 졸업생 ‘입틀막 경호’는 제2의 심기 경호에 비유됐다.
윤 대통령이 ‘장세동형 참모’를 선호한다는 설도 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시민사회수석실 비서관에 임명하면서 이런 해석에 힘이 실렸다. 정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이다. 당시 수사팀장이던 윤 대통령이 정 비서관의 충성심을 높게 봤다는 것이다.
부산시설공단이 최근 ‘과잉 충성’ 논란에 휘말렸다. 대연터널 입구 위에 꾀·끼·깡·꼴·끈이 적힌 입간판을 설치한 게 화근이다. 꾀·끼·깡·꼴·끈은 각각 지혜·탤런트·용기·디자인·네트워킹을 의미한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올해 1월 시무식에서 공직자의 5가지 덕목으로 제시했다. 누리꾼들은 “기괴한 글자 뜻까지 알아야 하느냐” “박 시장 용비어천가”라고 조롱했다.
입간판 설치가 ‘도시 미관 개선’ 차원이라면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야당 주장대로 박 시장을 향한 충성심 과시가 목적이었다면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참모들의 충성 경쟁이 리더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원인 중 하나도 윤 대통령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지 않나. 박 시장은 “불필요한 일로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공직사회가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
이노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