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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한·일·중, 한·중·일

  • 강필희 기자 flute@kookje.co.kr
  •  |   입력 : 2024-05-28 19:41:5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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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를 합의했을 때 마지막 남은 쟁점은 어느 나라를 앞세우느냐였다. 영어 알파벳에서 J가 K보다 빠르니 ‘일한월드컵’이어야 한다는 일본,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언어인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표기는 ‘Coree 또는 Corea’이므로 ‘한일월드컵’이 맞다는 한국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대회 명칭은 ‘한일월드컵’으로 하되 결승전을 일본에 양보하는 선에서 협상이 마무리됐다. 다행히 사람들은 한일월드컵을 기억할 뿐 결승전이 어디서 열렸는지는 잘 모른다.

어순은 단순한 순서 이상의 함의를 갖는다. 누구나 자신과 가깝고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를 먼저 놓기 마련이다. 우리나라가 북한과 미국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일부 매체를 제외하면 북한 미국 순으로 언급하는 게 거의 굳어졌다. 북한은 동족이고 미국은 타자라는 인식에서다. 여기엔 일정 부분 자유 진영의 체제 자신감도 깔려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절 야당이었던 보수 정당은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을 ‘미북회담’이라 칭하며 논평했다. 북한이 핵으로 한반도 안정을 위협하는 한 냉전시기 남북관계와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7일 한국 일본 중국간 제9차 정상회의 명칭에 적잖은 사람이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입에 익은 ‘한·중·일’이 아니라 왜 ‘한·일·중’이냐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공식 호칭이 ‘한·일·중’임에도 매체나 진영에 따라 ‘한·중·일’이 혼용됐다. ‘한·일·중’이라는 표기가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열린 제3차와 제6차 회의도 ‘한·일·중’이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유독 이 표현이 관심받는 덴 이유가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3국 협력 메커니즘 복원 필요성을 강조하며 일본을 중국 앞에 놓았다. 한국 대통령이 공식 외교무대에서 국가 호명 관례를 깬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미국보다 한국의 자주적 입장이 중요하다는 ‘자주파’가 한미동맹을 최우선으로 하는 ‘동맹파’를 눌렀다. 하지만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서는 양쪽의 위상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중국을 끌어당기고 일본에 척을 졌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 가깝고 중국과는 소원하다. 정부마다 외교 전략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개인과 달리 국가의 최고선은 국익이다. 국익이 가치이고 가치가 국익인 것이다. 미국 공화당의 트럼프와 민주당의 바이든이 양 극단에 서 있는 듯해도 결국엔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지 않는가.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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