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는 막걸리로 유명한 경기도 지평이다. 술이 좋아서 그런지 유난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집안에 많았고, 술 때문에 탈도 많았다. 특히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작은 외삼촌은 친지들에게 숱하게 폐를 끼치고 가정불화를 겪었고 본인의 삶도 순탄하지 않았다. 결국 술로 인해 세상을 일찍 등지고 말았다. 술이 빚은 서글픈 인생은 외할머니의 말마따나 술이 원수였다.
술은 비단 한 집안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2019년 우리나라에서 음주로 인해 발생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대략 연간 15조 원으로 추산했다. 음주로 인한 범죄도 무서울 정도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음주운전 사고는 2004년 2만5150건이 발생했고 사망자는 875명, 부상자는 4만4522명이다. 이 수치는 2015년까지 다소 증가하는 추세로 꾸준히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2016년에 이르러서야 2만 건 아래로 내려간다. 그래도 여전히 2023년 음주운전 사고는 1만3042건이 발생했고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망신과 고통의 근원으로 지목됐고, 명예로운 평온을 추구하는 모두에게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철학자 세네카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댄다. 술은 온갖 악행을 촉발한다. 악행을 막아주던 염치를 술이 걷어내기 때문이다. 과도한 술이 영혼을 장악하면 숨겨져 있던 온갖 악행이 고개를 든다. 술에 취한 사람은 욕정에 휩싸여 침실에 도착할 때까지 참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추구한다. 술에 취해 염치를 잃은 사람은 자신의 탐욕을 세상에 떠벌려 꺼내놓는다. 술에 취해 음탕해진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혀를 휘둘러 지껄이고 손으로 쉴 새 없이 더듬는다.
세네카는 과도한 음주로 신세를 망친 대표적인 인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꼽는다. 술은 더없이 강인하고 용감한 사내를 몰락시켰고, 고분고분하지 않고 굴종을 모르던 사내를 굴복시켰으며, 아시아를 넘어 인도까지 정복한 불굴의 용사를 정복해 버렸다. 그는 엄청난 행군을, 엄청난 전투를, 엄청난 추위를, 미지의 수원에서 발원한 엄청난 강과 엄청난 바다를 무사히 돌파해 세계의 끝에 이르렀지만, 엄청난 크기의 헤라클레스 술잔에 담아 마시던 포도주 앞에 무너져 일찍 숨지고 말았다. 그는 심각한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고열로 인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술을 마시고 쓰러졌다가 깨어나지 못했다.
세네카를 비롯해 고대의 기록에 따르면, 카이사르의 후계자가 될 뻔한 안토니우스도 술에 취해 추하고 잔인한 모습을 보였고 끝내 신세를 망친 인물이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술에 절어 있었고 씀씀이가 헤펐으며 여자들에게 치근거렸다. 대낮에 잠을 자거나 미친 사람처럼 어슬렁거리고 밤이면 잔치로 흥청거리거나 가무를 즐기거나 광대와 배우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는 희극 배우 히피아스의 결혼식에 참석해 밤새도록 마신 이튿날 이른 아침에 로마 시민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연단에 올라 그의 외투에 음식물과 포도주를 토했다고 한다. 또한, 안토니우스는 술의 부추김을 받아 잔인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정적이었던 국가 지도자들의 머리를 잘라 술자리에 구경거리로 가져오게 했고, 재산이 몰수되고 처형된 자들의 얼굴과 손을 더없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잔치에서 확인하고자 했다. 술에 만취한 그는 피의 갈증을 느꼈던 것이다. 폭음은 잔인함을 낳고 맑은 정신은 손상되고 거칠어진다. 자제력은 사라지고 광기의 습관은 굳어지고 술로 시작된 과오는 술이 없을 때도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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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술에 빠진 안토니우스를 무너뜨린 치명적인 결정타는 클레오파트라였다. 그 때문에 가슴속 정열이 미쳐 날뛰게 되었고, 유혹에 저항할 수 있었던 그나마 알량한 자질도 모조리 파괴돼 사라져 버렸다. 클레오파트라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시간을 허송하며 매일 엄청난 비용을 들여 술잔치를 벌였다. 심지어 아우구스투스와 마지막 대결이 된 악티움 해전을 앞두고도 안토니우스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때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이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싸우러 간다고 선전할 정도였다. 악티움을 향해 전함으로 이동하면서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대동해 연일 잔치를 벌였다. 그가 사모스섬에 도착했을 때 사모스섬은 피리와 현악기 소리로 하루가 지고 날이 밝았고 극장은 관객들로 넘쳤고 합창단은 서로 재주를 견주었다. 주변의 섬에서 마치 전승 축제의 제물인 양 황소 한 마리씩을 보내왔고 안토니우스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여흥과 선물을 앞다투어 마련했다. 이런 일은 다음 기착지였던 아테나이에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패배는 안토니우스에게 정해진 운명이었고 실제로 그는 악티움 해전에서 패해 몰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