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거쉬윈(1898~1937)과 아놀드 쇤베르크(1874~1951)는 서로 전혀 다른 음악 풍을 가진 작곡가임에도 그 두 사람은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먼저 조지 거쉬윈은 러시아 이민자 집안 출신으로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면서도 음악적 재능을 키워냈고, 그 덕분인지 그의 음악은 재즈풍의 독특한 음색으로 유명하다. 반면 아놀드 쇤베르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작곡가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20세기 초반 유럽 현대음악의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음악적 철학이나 작품의 형태가 서로 전혀 달랐다. 거쉬윈이 재즈풍 음악의 대중성을 강조한 반면, 쇤베르크는 극단적 표현을 강조하고 복잡하며 난해한 음악을 많이 작곡했다. 쇤베르크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대인에 대한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LA 서부지역에서 거주했었는데, 그 때부터 거쉬윈과 우정을 키워갔던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이웃에 살며 틈날 때마다 함께 테니스를 쳤으며, 그러면서 음악에 관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음악적 철학과 기풍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의 입장을 존중했고, 긴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했다.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던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에도 많은 영감과 영향을 주었으며, 거쉬윈이 뇌종양으로 먼저 사망할 때까지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거쉬윈이 사망한 다음 날 쇤베르크는 거쉬윈에 대한 그리움과 찬양의 애도문을 직접 녹음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 대법관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와 안토닌 스칼리아 간 우정도 오늘날 많은 귀감이 된다. 긴즈버그는 여성으로 아주 진보적인 성향의 대법관이었으며, 이에 반해 스칼리아는 보수 성향을 대변하는 대법관이었다. 두 사람은 1980년대에 미국 워싱턴 DC 순회 항소 법원에서 처음 함께 근무했는데, 많은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견해를 가졌고 서로 공개적으로 다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 보다는 서로의 논리와 아이디어를 분석하고 토론했으며, 그러한 토론과 대화를 통해 각자의 논리에서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이를 보완했다. 이를 통해 더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법리를 이끌어 내었다.
두 일화를 떠올려 보면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심각한 갈등과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분쟁이 많아 안타깝게 다가온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헐뜯으려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특히, SNS 등 온라인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이 직접 대면하지 않고 소통하는 경우가 많아져 일방적인 의사전달은 많아지는 반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진정한 소통을 위한 대화는 부족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직설적이고 즉각적이며 자극적인 표현은 많아지지만 대화의 깊이는 얕아지고 통찰과 공감은 부족해 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온라인 상에서는 더 많은 갈등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 지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한 유튜버가 온라인 상에서 다툼이 있던 상대방 유튜버를 법원 앞 도로에서 살해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인터넷과 온라인이라는 훌륭한 소통의 도구를 발명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진정한 소통은 부족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 해결 방안을 함께 강구해야 할 것이다. 온라인 소통에 필요한 에티켓을 확립하고, 서로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하며, 입법을 통한 지원책도 세워야 할 것이다.
지난달 15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작곡가 조지 거쉬윈과 아놀드 쇤베르크의 우정을 기리기 위한 음악회가 개최됐다. 거의 100년 전 그 두 사람이 서로 소통하며 나누었던 우정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는데 나침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