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당시 부산 인구 약 1/3에 해당하는 114만 명의 서명운동에 힘입어 건립이 확정되고, 2015년에 개관한 국립부산과학관이 내년이면 1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개관 당시 과학관을 방문했던 어린이들은 여전히 과학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으며, 일부는 대학에 진학했거나 졸업했을 수도 있다. 지난 주말, 집 근처 중학교 과학동아리 학생들에게 멘토링을 했는데, 그중 한 학생은 초등학교 시절 내내 국립부산과학관을 방문하고 교육프로그램을 들었으며, 지금은 부산시 영재교육원에서 과학자의 역량을 계속 키워가고 있었다. 이러한 기대와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과학관은 내년 10주년 행사를 다채롭게 준비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새로운 10년 동안 질적 도약을 모색하고 있으니 부울경 시민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개관 당시 필자는 대전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여 년 만에 부산으로 돌아와 과학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학창 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나와 달리 아내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사투리도 알아듣기 힘들지만 무엇보다 운전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좌회전이면 좌회전이지, 10시, 9시, 7시 세 방향으로 길이 있어서 어느 길인지 헷갈리고, 직진 차로로 가고 있었는데 어느새 좌회전 차선에서 좌회전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사실 초행길 운전이 어려운 건 나도 마찬가지라, 사고를 줄일 수 있도록 쉬운 길 안내 방법이 있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하던 그 무렵, 고속도로 나들목에 초록색과 분홍색의 유도선이 생기고, 내비게이션에서도 어느 색깔 선을 따라가라고 안내가 나오면서, 나와 아내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빈도가 많이 줄었고, 사고 위험과 시간 낭비도 줄게 됐다. 단순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방법이라고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인 만큼 이제까지 못 한 이유가 궁금했다. 이 노면 색깔 유도선이 도입된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과거에는 도로에 초록색과 분홍색으로 색칠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전국의 도로가 규격화되지 않은 색깔을 사용한다면 운전자에게 혼란을 주고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시도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유도선을 발명한 분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표현은 ‘편법’, 다르게 표현하면 ‘적극행정’의 일환이다. 즉, 교통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이므로 관할 경찰청에서 규정을 폭넓게 해석하고 적용해 최초의 시도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 다음은 데이터가 말할 차례이다. 조치 전후에 바람직한 변화, 즉 사고가 줄어들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시행 전 연 20여 건에 달하던 분기점 사고가 3건으로 줄어들었고, 효과가 확인되면서 다른 곳으로 확대시행하는 한편, 관련 법을 개정해 제도적 뒷받침을 하게 된다. 지금은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개정돼 불법이 아니며,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지방도로에도 적용돼 안전운전에 도움을 주고 있다.
요약해 놓고 보면 순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연속된 난관을 극복한 결과이다. 조직 안에서 개인이 무언가를 추진하려면 상급자의 승인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공동책임이 따른다. 협력기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는 유연한 법 해석을 어렵게 한다. 데이터가 바람직한 변화를 나타내도 이를 읽지 못하거나 수용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바야흐로 과학인증의 시대다. 과학적이라고 인증되면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이과를 넘어 사회학에도 과학이 접목되고, 정치인들도 자신의 주장을 과학으로 포장하는 시대다. 하지만 과학은 내용과 결과만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은 내용이 틀릴 가능성도 인정한다. 내용보다는 과학적 과정이 더 중요하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찾아내고, 그 방법을 공개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검증할 수 있게 하며,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누구든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주장의 내용, 활동의 결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이 과학적이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필자는 아예 기관명에 과학이 들어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새로운 10년의 발전계획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업무의 과학화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