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따듯함과 단호함이 어우러지는 판결문

한영표 법무법인 우람 대표변호사·전 부산가정법원장

  • 한영표 법무법인 우람 대표변호사
  •  |   입력 : 2024-09-03 19:44:43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부산에 벚꽃 명소가 여러 곳 있지만 학장천 벚꽃도 많은 사람이 추천하는 곳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학장천 맑은 물이 무심히 흐르고, 투명한 물 속에 비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벚꽃 그림자는 세상 근심을 잊게 한다.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こもれび·고모레비) 속에서 싱그런 풀 내음을 맡을 수도 있고, 푸르른 하늘을 나는 새의 비상을 감상할 수도 있다.

그런 학장천 옆으로 누구도 눈길조차 주고 싶어 하지 않는 건물이 있다. 자유를 반납당하는 대신 나라로부터 먹고 자는 것을 제공받는 곳, 재판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는 무죄추정을 받지만 대부분 실형 선고를 받으므로 사실상 감옥으로 인식되는 곳, 바로 주례구치소이다. 누구인들 구치소에 가고 싶을까마는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빌린 돈을 못 갚아서,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어서, 관련 규정을 잘 몰라서, 규정은 아는데 지킬 수 없어서, 잘못한 것 없는데 억울하게(?) 가기도 한다.

구치소로 면회를 가는 많은 사람을 보면서, 판사로서 법원에서 재판을 할 때 보지 못했던 이들의 모습이 변호사인 지금은 가슴 깊이 전해지기도 한다. 누구를 만나러 오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가슴에 안긴 채 잠든 얼굴로 오는 아기도, 양손을 잡은 어른 사이에서 즐겁게 깡총거리며 오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도, 세월의 풍상을 겪은 얼굴 가득 남에게 말 못할 사연을 안고 오는 한숨 짓는 노인네들도, 모두 다양한 얼굴로 이곳을 찾는다. 하루 면회 시간 5분, 10분을 위해 하루를 모두 보내는 것이 안쓰러워 너무 힘들게 다니지 말라고 당부하면 “이렇게라도 와야지 집에서 도저히 있지 못하겠다”는 대답을 듣고는 한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남편이 수감되자 면회가 가능한 날에는 빠지지 않고 면회를 하고, 면회를 할 수 없는 날에도 구치소 담장 옆을 거닐며 자신이 찾아 왔음이 남편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하곤 했다. 피해자가 있거나 고의적인 잘못이 아니라 절차적 위반으로 인한 것임을 잘 알기에, 과연 처벌 대상이 되는지, 필요성이 있는지 하는 의문이 변호사인 나도 확신할 수 없는 사안이어서, 여러모로 안타까웠는데 그 애절함이 내게도 느껴졌다.

물론 개개인의 안타까운 사정을 맞추어서 형을 정할 수는 없지만, 이런 사정들이 차가운 판결문에도 어느 정도는 반영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생긴다. 예전 형사 재판 사건 하나가 생각난다. 마약 투약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사건으로, 몇 달 후 어선 선원으로 출항해야 하는 피고인이 1심 판결 선고대로라면 출항 예정일 이후에 석방이 되니 징역형을 2달만 줄여주면 만기 출소 후 출항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출항 시기를 놓치면 1년 뒤에야 나갈 수 있는데 그 동안 일자리도 없어 막막하다는 이야기였다. 급여 체계 등에 대해 물어보니 선원인 점은 맞는 것 같았고, 출항 시기도 맞는 것 같았다. 1심 판결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항소심에서는 1심 판결을 변경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정된 날 출항할 수 있도록 두 달을 감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형을 줄이려고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앞으로 배 타서 돈을 벌고 가정 이루고 신산한 삶이 조금은 따뜻해지기를 마음으로 바랐다.

이후 그 사건은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멀리 해외 외항선에서 팩스로 보냈다는 편지가 대법원을 통해서 내 책상에 도착했다. 사건 번호를 통해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2개월 감형 덕분에 무사히 출항해서 멀리 외국에 나와 있다고, 몇년 지나면 한국에 돌아가는데 앞으로는 잘못 저지르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며 2달의 감형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법원 판결이 개개인의 사정을 모두 들어주어 들쭉날쭉 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기계적이고 일률적으로 차가워서도 안된다는 점을 깨닫게 해 주었다.

추운 겨울날에는 동료의 따뜻함이 고마울 수 있지만, 더운 여름날에는 바로 옆 동료를 증오하게 하는 까닭에 여름이 죄수들에게는 더 힘든 시절이라는 신영복 씨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여름 날, 판사님들의 판결문에 따뜻함과 단호함이 마술처럼 어우러지기를 기도해 본다. 재판을 하는 판사님도,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에게도 지혜와 신뢰가 머무르기를 바란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추석 연휴 70대 노모 살해한 50대 딸 검거
  2. 2음주로 목숨 잃은 여성 10년새 증가…50대 유독 늘어
  3. 3트럼프, 이란 ‘7일 계획’ 제안 거부…선거 후 폭격 가능성
  4. 4부울경 오후까지 흐리고 비…낮 최고 22∼24도
  5. 5비 와도 ‘부캉이’ 보러 북항 북적…추석 연휴 23만명 몰려
  6. 6추석 연휴 셋째날 부산→서울 7시간…귀성길 정체 풀려
  7. 7부하 직원 상습 성추행한 60대 임원 징역형 집유
  8. 8[날씨칼럼] 가을 태풍, ‘설마’하는 안일함보다 ‘미리’ 대비해야
  9. 9[속보] 靑, 우크라 北포로 송환 공개 논란에 “원칙 따라 대응”
  10. 10빠르게 느는 '10대 마약밀수범'…올해 적발인원, 작년 넘어서
  1. 1[속보] 靑, 우크라 北포로 송환 공개 논란에 “원칙 따라 대응”
  2. 2李대통령 “한·멕시코 무역협정 논의 조속 재개해야”
  3. 3국힘, DMZ 지뢰사고 공세 지속…“증거유실 기다리나”
  4. 4“개인통관고유부호 도용 의심 신고 3년 새 46배 증가”
  5. 5[속보] 이 대통령, 유시민 겨냥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하다 독소조항 삭제 못해"
  6. 6[속보] 靑, DMZ 지뢰 사고 조사 “철저히 규명할 것”
  7. 7우크라 “북한군 포로 한국행, 韓과 직접 대화…비밀이송은 이상했을 것”
  8. 8조국 "조희대, 이 대통령 인정 안해" 장동혁 "조희대 탄핵하면 李 탄핵"
  9. 9[속보] 이 대통령, 임기 관련 "2030년 6월 2일 넘기는 일 절대 없어"
  10. 10靑 "우크라 '北포로 송환' 발표 전 한국에 알려와" (종합)
  1. 1음주로 목숨 잃은 여성 10년새 증가…50대 유독 늘어
  2. 2빠르게 느는 '10대 마약밀수범'…올해 적발인원, 작년 넘어서
  3. 3집세 받는 미성년 집주인?…올해 20세 미만이 산 주택 115건
  4. 4세금 안 낸 '억대 유튜버' 작년만 총 17명…당국, 239억원 추징
  5. 5[차호중의 재테크 칼럼] 통화량과 물가
  6. 6다대소각장 개발 다시 원점…부산시, 부지매각 해지 결정
  7. 7HJ重 올해 8척 ‘릴레이 수주’…대형선 경쟁력 입증
  8. 8가덕신공항 부지공사 기본설계 정부심의 통과
  9. 9북항 핫플만든 인싸 상어 '부캉이', "인기 덕 좀 봅시다" 마케팅 열풍
  10. 10[한 손 뉴스] 국산 전투기로 영공 수호…KF-21 공군 1호기 배치
  1. 1추석 연휴 70대 노모 살해한 50대 딸 검거
  2. 2부울경 오후까지 흐리고 비…낮 최고 22∼24도
  3. 3비 와도 ‘부캉이’ 보러 북항 북적…추석 연휴 23만명 몰려
  4. 4추석 연휴 셋째날 부산→서울 7시간…귀성길 정체 풀려
  5. 5부하 직원 상습 성추행한 60대 임원 징역형 집유
  6. 6[날씨칼럼] 가을 태풍, ‘설마’하는 안일함보다 ‘미리’ 대비해야
  7. 7남양주서 70대 여성 흉기 피습…50대 운전기사 체포
  8. 8부산 울산 경남 흐리고 밤부터 가끔 비
  9. 9귀성·귀경 행렬로 고속도로 정체…서울→부산 8시간 40분
  10. 10귀성·귀경길 정체 지속…부산→서울 8시간10분
  1. 1한국 남자핸드볼, 중국 꺾고 8년 만에 아시안게임 4강
  2. 2[속보] ‘평균대 유망주’ 황서현,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금메달
  3. 3한국 여자 축구, 우즈벡에 6-3 승리로 준결승행
  4. 4류지현호, 일본에 0-5 영봉패
  5. 5이민성호, 베트남 4-0 완파하고 준결승 진출
  6. 6[속보] 한국 3대3 남자 농구, 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
  7. 73경기 1실점 철벽 마운드 韓, 조1위 슈퍼라운드행
  8. 8父 여홍철과 어깨 나란히…여서정, 8년 만에 도마 금메달
  9. 9여서정·안세영·우상혁…‘금빛낭보’ 기대
  10. 102전 전승 한국축구, 조 선두로 8강 진출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인간만의 영역 ‘관광과 과학’의 결합
국제칼럼 [전체보기]
추석 밥상에 오를 이재명 정부의 성적표
그때 부끄러움을 알았더라면
기고 [전체보기]
존엄 보장하는 부산형 청년보장제 되기를
복합재난에 강한 도시의 조건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영산회상, 불교음악에서 풍류음악으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작자 미상
범숙학교의 기적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직업병에 대한 자세, 무지와 고의 사이
아이의 근시, 안경만 쓰면 끝?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부산대·부산교대 통합, 구체적 로드맵부터 마련하라
동남권 건강지표 ‘빨간불’…촘촘한 의료 안전망 구축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지방시대위’ 부산 이전, 다시 뛰는 대한민국
니트 세대와 한국 노동시장의 불편한 현실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6·3 부산시장 선거, 부동산 정책의 길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공정함이 만드는 브랜드 가치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청년·노인 예산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